Commitment and Love Lifelog





하는줄도 몰랐던 커뮤니티 실드 경기가 맨시티의 승리로 돌아갔다는 기사를 보고 흠칫 놀랬다. 월드컵 직후 열리는 새 시즌은 여름 휴식기가 너무나 짧게 느껴져서 벌써 새 시즌이 개막하나싶어 매번 놀란다. 프리미어 리그의 실질적인 개막전과도 같은 커뮤니티 실드가 벌써 열렸다니, 어느덧 EPL 개막일이 나흘앞으로 다가왔다. 벌써 EPL을 매시즌 즐기기 시작한지 대강 떠올려봐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기억에 남는 시즌도, 상대적으로 좀 관심이 덜 간 시즌도 있었지만 마치 시즌 개막과 윈터브레이크, 다음해 초여름까지 벌어지는 각종 컵 대회들의 결승전들이 하나의 시즌으로 묶여서 내게 매년 어떤 정신적인 루틴을 만든다. 나 뿐만 아니라 해외축구팬들이라면 누구나 그럴터.

하지만 이번 18-19시즌을 기대하는 내 느낌은 여지껏 그 어떤 때보다도 특별하다. 아니, 사실은 지난 시즌이 내가 평생 봐온 프리미어 리그 시즌들 중 가장 특별했다. 98년 월드컵때 베르캄프의 플레이를 보고 반해 찾아보기 시작한 아스날, 그 팀을 응원한 이래로 아스날 팬이라면 사실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감독 아르센 벵거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사실 요즘 같은 유럽 축구 리그에서 감독의 교체 주기는 점점 짧으면 짧아 졌지 절대 한 팀에서 오래 집권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런 생태계에서 22년이나 리그 상위권 팀을 이끌던 감독, 적어도 내가 응원하던 그 팀에서 처음으로 감독이 교체되었는데, 이번 시즌이 시작되는 느낌은 정말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좋아하고 특히 더 애정하던 몇몇 선수들이 은퇴나 이적같은 방법으로 팀을 떠나도 오직 그 긴 시간동안 유일하게 바뀌지 않던 사람, 아르센 벵거 감독의 교체는 그래서 다른 그 어떤 선수의 충격적인 이적 소식보다도 더 크게 느껴진다. 그가 없는 아스날이 더이상 이전과 같은 아스날이 아니게 될 것 같다는 걱정마저 들었고, 새로운 감독 선임 소식에 매일같이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난 에메리 감독 선임에 크게 불만은 없다.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다고 믿고싶다.) 오랜 시간동안 팀에 자신의 색을 입혀둔 감독이 교체되면 팀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경우도 많고 또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수순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차기 시즌 팀의 성적이 걱정되기보다는 내가 수년간 좋아하던, 그런 팀의 색깔이 영영 뒤바뀌게 될까하는 걱정, 두려움이 사실 더 컸다. 향수는 어쩔 수 없이 분명 느끼게 되겠지만 이왕이면 내년에도 가능한 내가 알던 그 팀이길 바라는 욕심이랄까.

지난 시즌이 끝나기 전에 이미 벵거 감독이 아스날 감독직 사임을 선언하고나서, 매경기 만감이 교차한 심정으로 소중하게 지켜보고 즐겼다. 어느 팀 스포츠에서든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애정을 갖고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이 팀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팀의 오랜 핵심이자 기둥이 마치 시간에 등떠밀려 교체되고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는 사실을 받아들이는게 쉽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도 마음 한구석에 있었지만, 그간 나 스스로가 쏟아부었던 순수한 애정과 응원의 마음을 누가 알아봐주진 않아도 나 자신에게 소중한 기억과 추억으로 보호받고 싶다면, 이런 걱정도 사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직관'한번 가기 힘든 지구 반대편에 사는 팬이라도 말이다. 벵거는 첫 등장부터 전술적으로 혁신가였고, 확고한 자신만의 스타일과 개성이 있었다. 그런 감독을 둔 덕분에 그의 팀인 아스날은 아스날 고유의 축구를 지켜온 데에 자부심이 있었고, 행여 우승컵이나 승리와 거리가 멀더라도, 오랜 아스날 팬들이라면 누구든 이건 아스날식 축구라고 느껴지는 순간을 팬들에게 선사해주려고 해왔다. 게다가 그는 돈의 논리가 점점 지배하는, 세계에서 제일 비싼 리그에서도 낡았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철학대로 마지막 시즌까지 팀을 운영해보려 애쓴 이상주의자이자 나름의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그런 벵거 감독이 자신의 아스날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한 인터뷰에서 아스날에서의 22년의 시간을 "total commitment and total love" 라고 말하는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존경받을만한 성취를 이룬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열정과 사랑을 품고 있겠지만 자신의 입으로 담담하게 그렇게 긴 시간을 회고하는 인터뷰를 보니 문득 울컥하고 가슴 한구석이 찡했다. 나는 아직 어떤 분야에서 그정도로 긴 시간과 에너지를, 열정과 노력을 쏟아본 적이 아직 없지만, 내게도 인생의 그런 하나의 챕터가 끝났을 때, 후회와 미련없이 total commitment and total love 였다고 말할 수 있게되면 그건 얼마나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일까. 벵감독님의 다음 커리어도 아스날에서 만큼이나 빛나길 바란다. 내 20대를 통째로 바쳐 응원한 나의 우상, 나의 아이돌. 








덧글

  • 2018/08/08 05: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8/10 05:1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375

통계 위젯 (화이트)

2731
268
916015

웹폰트 (나눔고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