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 스레드, Phantom Thread, 2017 Flims



무너뜨리면서 쌓아 올리는 기묘한 사랑. 하지만 단언컨대, 나는 이 사랑에 감명받을 순 있었지만 동의할 수는 없었다. 두 세계가 만나 함께 쌓아 올리는 사랑이 아닌, 서로를 파괴할 때 단단해지고 견고해지는 감정이라니.

<데어 윌 비 블러드>에 이어, 폴 토마스 앤더슨과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두 번째로 만난 이 영화 <팬텀 스레드>가 막 시작되었을 때, 나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미국이 아닌 곳을 배경으로 찍은 영화가 있었나를 머릿속으로 돌이켜봤다. 이전 <리노의 도박사>를 쓰면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나는 그의 영화 세계가 잔인하고 폭력적이지만 아들에겐 한없이 자비로운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들로부터 도망치고픈 아들들의 이야기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평면적으로 사랑 이야기인 이 영화 <팬텀 스레드>에는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다. 평소에 미국 사회에 냉소적인 시선을 담았던 그가 배경을 영국으로 옮겨오면서, 아버지도 두고 온 걸까. 그 대신 이 영화에는 '어머니'의 유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들이 등장한다.

얼핏 보면 천재이자 괴짜인 예술가와 그가 사랑에 빠진 뮤즈와의 사랑과 갈등 이야기일 것으로 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PTA가 '고작' 그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자신을 떠난 어머니의 재혼식 드레스를 만든 이후로, 그 일을 업으로 평생을 쌓아 올려 온 레이놀즈(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어머니의 유령 아래 사는 남자다. 어머니는 그의 곁에 실존하진 않지만, 여전히 그는 어머니 품에 살고 있다. 자신처럼 결혼하지 않고 마치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누나 세실(레슬리 맨빌), 그리고 그와 세실이 살고 있는 저택에 있는 하얀 옷을 입고 그가 디자인한 옷들을 재단하는 모든 여자가 곧 자신의 그 '어머니의 유령'들이다. 이 저택에서 유일한 남자인 그는 그 여자들의 행동 규범, 그 저택의 룰을 정하고 군림하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성공시킨 강인한 제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머니의 유령 품에서 안겨있는 유약하고 늙은 남자아이일 뿐이다. 영화 도입 부분에는 이런 저택의 공기에 순응하지 못하고 레이놀즈의 관심과 사랑을 조금 더 원했다가 쫓겨난 어느 '전례'가 작은 프롤로그처럼 붙어있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알마(비키 크리엡스)도 언제든 그런 처지가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다소곳한 뮤즈로, 집 안의 장식으로 치부되려는 것을 온몸으로 저항했다.

세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레이놀즈를 향한 깜짝 저녁을 준비하고, 자신이 다른 여성 직원들과 같은 취급을 받자 당당하게 공주에게 걸어가 이 집의 안주인인 것처럼 자신을 소개하고, 그리고 내진한 의사 앞에서 세실과 기싸움을 펼치는 등, 그녀는 자신이 레이놀즈의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것은 레이놀즈를 향한 집착과 갈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둘의 첫 만남 때 레이놀즈만이 일방적으로 호감을 표했던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녀 역시 그를 보고 비슷한 감정을 분명히 느꼈다. 알마는 레이놀즈의 예쁜 액세서리로 남을 생각이 그래서 없었다. 그래서 이 사랑을 계속하고 싶다면, 알마는 이 남자를 둘러싼 유령들을 걷어내야 했다.

그녀가 독버섯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레이놀즈를 아프게 만드는 장면에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나 역시 처음엔 그러했다. 하지만 내가 갖지 못할 바에 파괴하겠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아니라, 그녀는 이 남자 스스로 자신의 약한 모습을 마주하고 인정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레이놀즈의 인생에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처음 바쳐진, 그의 웨딩드레스는 알마가 준 독을 마시고 그렇게 자신의 손에 의해 훼손된다. 그리고 사경을 헤매던 그는 죽은 어머니의 유령을 보고, 동시에 살아있는 알마를 함께 본다. 알마는 옷감에 숨겨놓은 레이놀즈의 비밀을 과감하게 뜯어내고, 레이놀즈가 원치 않는 여자에게 입혀진 그의 드레스를 자신의 손으로 벗겨 그에게 돌려준다. 알마는 레이놀즈 입장에서는 그의 견고하고 단단하게 쌓아 올린 세계를 깨부술 수 있는, 그를 위해 부셔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 번의 죽을 고비로는 그들을 결혼에 도달하게는 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을 영원하게 만들기엔 부족했을 것이다. 여전히 레이놀즈는 식탁에서 시끄러운 알마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연말 파티에서 춤추고 싶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 그러고도 아직 그들을 완전하지 않을까? 앞서 공주에게 선물 될 훼손된 웨딩드레스는, 비록 독을 마신 레이놀즈에 의해 훼손되었지만, 여전히 집안에 남아있던 어머니의 유령들 -세실과 하얀 옷을 입은 여자들-에 의해 복원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음 날 아침 완성되어 도도하게 서 있는 드레스를 바로 곁에 두고, 소파에서 결혼을 결심하는 레이놀즈와 알마의 모습은, 그래서 사라질뻔했던 어머니의 유령이 여전히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이 섬뜩하다. 

비록 첫 번째 독버섯 차를 마시고 나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도 레이놀즈는 아마 알마의 계획이었음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알마는 이미 그때부터 이 강한 척하는 남자를, 자기방어로 똘똘 뭉쳐있는 이 남자를 강제적으로 약하게, 그리하여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을 영민하게도 눈치챘다. 그리고 두 번째 독버섯 요리를 대놓고 눈앞에서 만드는 알마를 바라보면서, 레이놀즈는 질 게 뻔한 눈싸움을 하면서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보란 듯이 삼킨다. 레이놀즈도 그들의 사랑이, 그들의 결혼생활을 어떻게 해야 이어나갈 수 있는지, 이 죽일듯한 사랑을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는지 그녀가 제시한 어떤 합의점에 함께 이른 것이다. 어머니의 유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레이놀즈가 받아들인 룰은 이렇게 알마가 건네는 독을 삼키고 다시 한없이 약해진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다. '알마'는 스페인어로 '영혼'이다.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함께 사랑을 하면서, 우리는 많건 적건 좋은 싫든 변화를 마주한다. 그리고 같은 연인 간에도 그 변화의 폭이 크고 작음이 차이가 날 수 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더 많이 혹은 덜 물든다. 하지만 전혀 좁혀지지도 않고 평행선을 달리는 두 사람의 관계는 절대로 영원할 수 없을 것이다.







덧글

  • 2018/03/11 19:3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3/23 23:4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3/17 06: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3/23 23:5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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