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8 Lifelog


우연찮게 새벽의 경기 중계를 보았다. 조금 전에 아스널은 올해 FA 컵에서 탈락했다. 경기 도중에 캐스터 분이 한 말이 너무 의미심장하게 기억에 남았다. 아스널이 FA컵 3라운드에서 조기 탈락한 가장 마지막 시즌이 끝나고 바로 그 다음 해에 아르센 벵거 감독이 부임했다고. 그런데 바로 오늘 밤 벵거 감독 이래 처음으로 아스널이 3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벵거 감독의 마지막 시즌이 될지도 모르는 올해,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왠지 씁쓸하다.

새해가 시작되고도 일주일이나 지났다. 마지막으로 쓴 글을 보니 거의 두 달 넘게 블로그를 방치해두었네. 2017년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았던 해였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많은 면에서 더 잘 살 수 있었던 한 해였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지난겨울에는 그냥 어서 새해가 시작되기를 무기력하게 널브러져 바랐던 것 같다. 어차피 같은 날들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1월 1일이 되면 작년의 모든 불행들이 마치 몇 년 전의 일들처럼 멀디먼 과거 속으로 스르륵 물러나 자연스럽게 밀봉될 것만 같이. 난 언제나 짝수 해가 홀수 해보다 더 행복했다는 말을 최면처럼 중얼거리면서.

등 떠밀려 PhD candidate로 레벨업 되었는데 사실 아직도 너무 멀리 남았다. 이쯤 되면 누군가의 강의와 타인의 저술을 보면서 학습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학습시키는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던, NYU에 머물 때의 지도교수님 말이 떠오른다. 수년간의 연구실, 대학원 생활에 느는 것은 임기 응변과 과대포장해서 발표하는 스킬. 그리고 제발 여기서만큼은 문학적으로 쓰지 말라고 하던 교수님의 입맛에 맞게 과제 계획서 혹은 연차 보고서를 작성하는 기술이다. 박사과정 말년 차에는 자기 연구에 대한 철학이나(그래서 Ph.D라고..) 자기 연구 분야에 대한 어떤 자부심 같은 게 생긴다는데, 아직 요원하다.

나이나 결혼, 그 외 사회가 요구하는 "내 나이"때의 어떤 기대치에 대한 압박은 생각보다 거의 없다. 친동생이 결혼한 이후로 오히려 부모님의 그런 나에 대한 기대나 압박도 더 사라졌다. 오히려 그런 게 더 불편해진 건 나였다. 요즘 들어 (학위과정이 끝난다면)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강하게 든다. 물론 취업이나 그 이후의 내 커리어를 함께 구상해봐야 할 일이겠지.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사실 자주 상상해보지만, 한국이 그리워져서 말년에 돌아오고 싶어 할 것 같진 않다.

내 인생에 들어오는 새로운 사람들이 없었으면, 이 단조로운 일상을 견디기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완전히 새로운 얼굴이 아니더라도, 이미 알던 사람을 새롭게 다시 보게 되는 일이라든가, 더 깊이 알게 되는 경우들이 일상에 큰 자극이나 이벤트가 되어준다. 이런 사람인 줄 알고 있었는데 사실 저런 사람이었다거나. 전혀 몰랐던 속내 등을 허심탄회하게 주고받는 일들이 종종 있으니 반강제적으로 닫힌 내 사회에서 큰 자극이 된다. 사실 한 발만 물러나서 바라보면 별것 아닌 일들인데. 그래도 지금은 즐거우니 되었다.

취미로 영상제작을 홀로 공부해보고 있다. macOS 디바이스를 두 개나 가지고 있는데 한번 해볼까 하며 시작한 것이 의외로 꽤 재밌어서 본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을 잘 지키면서 퇴근후 여가를 유튜브를 뒤섞거리며 실습하는데 보내고 있다. 팟캐스트 생태계에 정이 떨어진지 꽤 되었는데 새로운 쪽으로 관심이 옮겨가니 인생에 쏠쏠한 활력이 된다. 특히 살아오면서 많은 영화를 본 것이 정말 알게모르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게다가 버킷리스트 최상단에 늘 영화만들기를 적은채 살아온 나에게, 이런 활동은 비록 엄청나게 작은 잰걸음이지만 적어도 꿈을 1나노미터만큼이나 현실로 끌어오고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많은 동기부여가 된다. 일단 무엇보다 배우는게 즐겁다. 사람은 역시 배우고 싶은걸 배워야한다. 그러고보니 지난주엔 나의 조악한 기술로 제작한 짧은 동영상이 학과에서 주최한 각 연구실 동영상 컨테스트(?)에서 1등한 덕에 상금을 받았다. 겉으론 태연한척했지만 무척 기뻤다. 내가 만든 영상을 남들에게 부끄럽지않게 보여주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작은 성과까지 낸 첫번째 일이었으니까. 기억해두자고 다짐했다.

이곳저곳을 방황하며 기웃거렸지만 결국 자석처럼 돌아오는 곳은 이글루스다. 여기에 뭐라도 내가 묻어놨는지, 아니면 누가 벗어나질 못하는 저주라도 걸어두었는지, 결국 다시 여기다. 새해에는 영화도 많이보고, 작년에 소원했던 전시도 많이 보러다녀야지. 특히 올해 신년 계획을 쓰면서 적어두었듯이 조금 더 옛 영화들에 호기심이 생겨 찾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매월 1메달. 체중이 늘었지만 2월부터 다시 러닝을 시작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올해는 가을쯤 꼭 하프 마라톤을 완주해보고 싶다. 몇가지 목표를 몇개 더 세워두었지만 부끄러우니까 이쯤에서. 이렇게만 산다면 올해는 작년보다 확실히 나을텐데.

아무튼 행복해지도록 하자.









덧글

  • 2018/02/10 14: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2/16 22:2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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