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The Fortress, 2017 Flims



김훈 작가의 그 소설을 비록 난 읽지 않았지만, 영화를 같이 보러갔던 아버지의 브리핑으로 영화의 분위기나 ‘작가’의 시선을 가늠한채 상영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이병헌의 영화는 모두 챙겨보시는 아버지께선 이번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같이 보러가자고 제안하셨고, 아마 아버지의 제안이 없었더라면 보지 않았(못했)을 영화를 추석 연휴 같은 좋은 기회에 부모님과 함께 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가서 였는지, 혹은 최근 만연하는 ‘국뽕’ 영화는 아닐런지 스스로 선입견을 가지고 들어가서였는지, 2시간 30분의 긴 상영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만큼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황동혁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은 이번이 (놀랍게도)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기대가 되었던것 같다. 뭐든지 처음으로 그 감독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그 감독의 데뷔작을 뒤늦게 보았을때보다 더 기대되기 마련이다. 캐스팅이 이병헌과 김윤석, 그리고 박해일이라니,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걱정은 애초에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고수의 얼굴을 잘 몰라서 영화 거의 끝날때까지 이시백 역의 박희순이 고수인줄 알았다.. 제일 잘 생긴사람이 고수일거라던 영화 시작 직전 어머니의 말에 ‘내 기준에서’ 제일 잘 생긴 캐릭터를 찾았더니 그게 이시백…)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흠잡을데 없었고, 유독 인조 역이었던 박해일의 연기가 두드러진것 같다. 사실 자칫하면 두 주연 배우 사이에서 제대로 감정을 살리지 못하고 그저 끌려가는 역에 그쳤을 인조 역을 맡아 그 유약함과 불안함, 그러면서도 인조가 극의 최전선에 드러나서는 안되는 아주 어려운 역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역할을 박해일이라는 배우는 늘 훌륭히 해내왔던 것 같다.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에선 크게 그런 느낌을 못받았지만 <은교>에서 그랬고, <경주>에서도 그랬던것 같다. 감독은 인조가 감정적으로 흔들릴때마다 카메라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배우의 얼굴 가까이 들이대며 관객에게 그 불안함을 증폭시킨다. 최명길(이병헌)과 김상헌(김윤석)이 말할때는 갓의 가장자리가 얼굴을 절반 정도를 가리는, 다시말해 인조의 시점에서 내려다보며 찍으면서 말이다. 신하들은 왕의 시선에서 찍으면서, 왕은 그보다 더 높은 관찰자의 시점에서 찍으니, 왕의 감정이 가장 강렬하게도 보는 우리에게 표출된다. 그리고 이병헌과 김윤석이라는 두 배우가 ‘힘을 빼고’ 연기한게 오히려 득이 되었던 것 같다. 둘의 의견 충돌이라는 갈등선이 두 배우의 감정 과잉으로 치달았더라면 다들 조연들의 캐릭터들도, 원작이 갖고있다는 역사 인식도 가려지지 않았을까.

김성훈 평론가가 남긴 평이 (영화를 완전히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눈 한번 마주치지 않는 썰전’이라니. 실제로 이병헌과 김윤석이 눈을 마주보고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은 (내 기억이 맞다면) 딱 한번 등장하고 둘이 한 숏 안에 들어오는 장면도 총 네다섯 시퀀스 뿐이다. 그렇지만 화친파 최명길과 옥쇄파 김상헌이 무조건 의견 대립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된 신하가 주위에 거의 없다시피한 상황에서 인조에게 소신 발언을 하는 거의 유일한 두 신하는 서로 색이 다를뿐 충신이 충신을 알아보며 교감 한번 없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미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 관객들이 모두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는 역사 다큐가 되어버릴 위험부담을 언제나 갖고있다. 게다가 그 결말이 <명량> 처럼 이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처참하게 패배하는 이야기라는 것에서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메시지에는 더욱 많은 제약이 걸렸을 것이다. 보통의 많은 역사 영화들은 여기서 선택을 한다. 충실히 역사를 따르되 그 사이사이의 작은 공백들을 상상으로 채우면서 <작전명 발키리>가 되거나, 영화라는 허구가 주는 자유로움을 한껏 만끽하면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처럼 되거나. 그렇지만 영화 <남한산성>은 역사적 사실을 각색한 영화가 아니라,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각색한 소설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면, 이 영화에 드러난 역사 인식은 감독의 각색도, 원작자 김훈의 생각에서 큰 자유를 얻진 못했을 것 같다. 특히 화친파인 최명길을 후대 역사가 평가하는 매국노처럼 묘사하지 않은 점, 그리고 강경론자로 비춰지는 김상헌에게 구태여 자신이 벤 할아버지의 소녀를 붙여 다층적인 캐릭터로 만든 점 등은 역사를 각색한 영화들의 가질 수 있는 대체로 옳은 선택인 ‘관객에게 평가를 강요하지 않는’ 그 자세가 크게 마음에 들었다. 봉화를 기다릴 것인가, 답서를 청에 보낼 것인가를 놓고 최명길과 김상헌이 인조를 앞에 두고 각자의 뜻을 관철시키려 애쓸 때, 이 영화에서 가장 스펙터클하고 클라이맥스일 그 장면에 이르렀을때, 이미 우리 모두 영화의 결말을 알고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명길이 옳았다 혹은 김상헌이 더 이상적이다라고 선뜻 말을 할 수 없는 느낌을 들게 만든 것은, 그만큼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은채 극을 끌고온 감독의 역량이다. 삼전도의 굴욕 이후 청나라에 끌려간 김상헌을, 실제 역사와 달리 자살로 그 캐릭터의 퇴장을 연출한 것도, 보통 삼전도의 굴욕하면 모두가 떠올릴만한 인조 이마에 피가 흘렀다는 묘사도, 영화가 자잘한 고증에 집중하기보단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확실히 취사 선택한, 이 영화를 위한 좋은 예들이 아닐까.

물론 두 신하의 이야기만 있는것이 아니다. 영화에는 고수가 연기한 대장장이, 서날쇠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이는 전형적인 전란시대의 ‘민초’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영화팬들이 꽤 있을것 같은데, 나는 이 캐릭터가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에 등장한 올랜도 블롬의 캐릭터와 아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대장장이라는 직업, 전쟁중에 아내를 잃고 혼자가 된 것과, 대장장이치고 주인공급 재기를 가진 점 등이 두 남자의 공통점인데, 물론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을 것이다.) 이 서날쇠라는 캐릭터는 어쩌면 굉장히 심심하고 재미없는 캐릭터인데, 백성을 등진 정부와 벼슬아치들에 의해 가족을 모두 잃었음에도, 성곽을 지키는 임무에 차출되고도 진언을 올리고, 대장장이로서의 재능을 살려 조총을 개량하고, 그 믿지 않는 다던 벼슬아치가 시키는 목숨을 건 임무에도 분연히 응하는, 세상에 저런 인간이 다 있을까 싶을 정도의 이상적인 캐릭터이다. 이런 전형적이고 진부한 캐릭터가 왜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을 해결하려면 그의 반대편을 바라봐야할 것 같다.

서날쇠의 대척점에는 아마 정명수(조우진)라는 캐릭터가 있을 것이다. 이 정명수 역시 조선의 노비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청나라의 편에 서서 조선 침공을 앞장서 돕고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조선인이라는 말을 듣기조차 싫어할 정도로, 누가봐도 매국노이자 적국의 앞잡이지만 무조건적인 악역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오히려 최명길과 청나라의 중간고리 역할을 사적인 거부 한번 없이 충실히 수행하며, 언뜻 청나라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돕고있는 것 같지만 이 자 역시 조선을 향해 화친을 적극 종용하고 있다. 조선에서 노비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던 이 사람은 소위 ‘탈조선’ 하여 자기 나름의 살길을 찾아 나섰다. 이 얄미울법한 캐릭터가 (충분히 그럴수 있었음에도) 무조건적인 악역인것처럼 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인조 곁에 있는 ‘정치인’ 영의정이 ‘국가의 배신자’ 정명수보다 더 악하게 느껴지는건 왜일까.

그건 아마도 영의정과 달리 서날쇠와 정명수가 모두 조선의 백성을 대변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이 두 명은 영화 프롤로그에 등장해 김상헌의 칼에 죽는 뱃사공 할아버지의 현신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뱃사공 할아버지는 어제는 인조의 피난을 도왔지만 쌀 한 톨 받지 못했고(서날쇠), 내일은 오늘 조선으로부터 받지 못한 쌀을 받아볼까하는 마음에 청나라의 군대를 도울 예정인(정명수) 조선의 백성이다. 즉 당시 백성들이 처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각각 취할 수 있던 선택지들, 그 삶의 다양한 길들을 뱃사공 할아버지를 둘로 나누어 영화 내내 서로 마주치지도 않게 등장시킨게 아닐까 싶다. 영화에서 김상헌과 최명길이 인조앞에 꺼내 놓는 두가지 서로 다른 ‘길’이 주된 테마인만큼, 서날쇠와 정명수의 각각의 ‘길’도 영화에 중첩되어 있다. 전자와 마찬가지로 영화는 후자에 대해서도 어느쪽 답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한국 드라마 영화의 필수요소처럼 자리잡아가는 신파적 요소가 거의 없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끝으로 한가지 아쉬움을 사족처럼 남기자면, 2시간 30분의 긴 영화에 챕터를 굳이 나누어 놓은 것은 다소 불필요한게 아니었을까 싶다. 원작 소설이 있다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그 장의 수가 (영화 시간에 비하더라도) 꽤 적지 않고, 굳이 챕터를 매번 알려주지 않아도 영화의 시퀀스간의 이음새가 어색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 ‘알람’들이 감정적 긴장과 몰입을 뚝뚝 끊어냈던것 같아 아쉽다. 그냥 원작 작가에 대한 감독의 예의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프닝 크레딧에 등장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이름에 적잖이 놀랐지만, <마지막 황제>에서의 그런 음악적 번뜩임을 영화 <남한산성>에서는 마지막까지 거의 느낄수없어서 아쉬웠다. 하긴, 그 영화도 어느덧 30여년전 영화가 아니던가. 최근에 내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최근 음악을 접해본적이 있기나 했던지.

+
사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화친을 반대하고 청과의 싸움을 끝까지 주장했던 김상헌도 엄밀히 말하면 자주 국방을 말한것이 아니라 그저 청나라가 아닌 기존 명나라의 ‘아우 국가’임을 유지하고자 했던, 역시 최명길과 마찬가지의 사대주의자가 아닌가. 그래서 난 이 영화를 보고나서 전작권 환수를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을 도통 이해하기 힘들다. 답을 정해놓고 영화를 거기에 끼워맞추려는 사람들.







덧글

  • 지나가다 2017/10/04 23:25 # 삭제 답글

    원나라가 아니라 청나라입니다....
  • 레비 2017/10/04 23:29 #

    오 제가 원/청/명을 다 헷갈렸군요. 감사합니다 :)
  • 2017/10/04 23:3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10/04 23: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김뿌우 2017/10/05 01:39 # 답글

    국뽕이라는 게 뭔가요? 그냥 자국을 좋게 포장하는 영화는 국뽕영화인가요? 그런 단어에 스스로를 가두고 평론의 폭을 좁히면 시야가 한도끝도 없이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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