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2017 Flims



이 영화의 원제가 뭘까를 궁금해하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sense of an ending 이라니. 뭔가 한국어 제목에 그만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고 봐야겠다며 정신을 바싹 차리게되었다. 음악을 막스 리히터가 담당했다는 사실도 영화 오프닝에서 알게되었는데, 이건 정말 예상치못한 깜짝 선물 같았다. 맨부커상을 받았다는 줄리언 반스의 원작 소설과 이 영화 사이에는 다른 부분이 제법 많다고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원작보다 영화가 더 간결하고 캐주얼하게 만들어진 모양이다. 나는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영화만 보고서도 책이 얼마나 흡입력이 좋을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매튜 구드가 (그인지 조차 제대로 눈치못챌 정도로) 잠깐식 등장하는 역사 수업 시간 씬에서, 아드리안의 대사들이 영화의 주제를 반영하고 있었다. 역사는 불완전한 기억과 불완전한 문서들의 합이라는. 우리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어딘가에 기록된 주관적인 활자들과 우리의 명멸하는 기억들이 합쳐져 이루어진 것일지니 이 얼마나 불안하고 부정확한것일지. 수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한 인간의 역사조차 그러한데 일개 개인의 역사는 오죽할까. 게다가 사람이란 본디 본능적으로 자신의 행적과 과거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고 변호하고 나아가 미화하려는 성질이 있지 않은가. 특히나 그 대상이 십수년이나 오래된 곳에 두고온 것이라면 더욱 손쉽게,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각조차 없이 말이다. 하지만 한발자국만 나로부터 객관화하여, 내가 아닌 남의 눈으로 나의 개인사를, 나의 역사를 남의 입으로 청해듣자면 그게 어디까지나 마냥 아름답고 깨끗할 수 있을까.

이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보다보면 토니(짐 브로드벤트)라는 주인공 캐릭터에 대해 객관화하기 힘든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의 화자이기 때문이라서 냉정히 바라보기 힘들다는 변명을 하더라도, 그가 어떤 캐릭터인지 영화 중반까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우연히 기억 저편에서 꺼내어진 첫사랑에 설레는 모습이 마냥 순박해보이지만은 않는 이유는, 그가 이혼한 아내 마가렛(해리엇 월터)에게 사연을 털어놓는 방식과 자세, 그리고 임신한 딸을 곁에 두고도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자기 앞으로 남겨진 유언의 일기를 보고싶어하는 그 집착적인 행동 방식은 어딘가 음험한 인상까지 준다. 자기 기억속의 어린 베로니카(프레야 메이버)에 대한 기억과 지금 다짜고짜 일기를 내어주지 않는 현재의 베로니카(샬롯 램플링)의 태도 모두 토니의 시점에서 주관적으로 덧칠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슬슬 고개를 들때 즈음 영화가 내놓는 진짜 이야기는, 스스로 기억하며 살아온 삶이 진실로부터, 그리고 다른 누군가들로부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있어왔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토니는 학창시절 친구 아드리안(조 알윈)에 대해 단순한 친밀한 감정을 넘어 약간의 존경이나 경외감이 있었던것 같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수업시간과 그 시절의 기억속에서 그는 늘 동경의 영역에 있는 친구로 그려진다. 그에 대한 마지막 기억도, 토니가 기억하는 아드리안의 자살은, 비록 갑작스럽고 슬픈 비극이었지만 마지막까지 마음속을 알 수 없었던 그런 친구의 결단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아드리안의 자살도 그 학창 시절에 여자친구의 임신으로 자살한 다른 급우와 다를 바 없는 이유에서였다는 걸 수십년이 지난 뒤에서야 깨닫는 것도, 자신이 그저 지극히 주관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과거가 실제로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는걸 다시 일깨워준다. 토니는 수십년이 지난 뒤에서야 자기 앞으로 도착한 한 통의 편지에 과거로 제 발로 끌려들어가 색안경을 벗고 제대로 과거의 과오를 마주할 수 있게되었다. 영화는 여기서 끝까지 베로니카에게 토니의 사과가 닿게하지 않지만, 대신 그 반성을 마가렛과 딸에게 향하게 하면서, 그리고 그녀의 출산을 도우면서 토니가 하는 사죄의 수신자를 모호하게나마 현재 곁에 있는 가족의 울타리 안에 밀어넣으려하는 것 같지만, 글쎄.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달려온 것에 비해서 굉장히 미온적인 마무리가 아닌가 싶다.

브로드벤트는 워낙에 조연으로 많이 만나보던 배우라 이렇게 주연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처음이었다. 샬롯 램플링은 그 특유의 표정 연기를 볼때마다 그녀의 과거 작품들을 매번 찾아보고싶게 만든다. 내게 그녀는 젊은 시절 연기를 보지 못해 아쉬운 노배우들 중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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