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La La Land, 2016 Flims





이랬으면 어땠을까-하는 세상의 모든 가정법은 실제론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또 영원히 가정으로만 남아있게될 것이기 때문에 보는 이들을 슬프게하지만, 영화 <라라랜드>의 진짜 마지막 장면은 그 둘의 "헤어지지 않았더라면"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클럽을 나서던 미아(엠마 스톤)와 방금 연주를 마친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 서로를 응시하다 마침내 미소지어 보이는 장면이다. <위플래쉬>의 감독 다미엔 차젤레의 차기작이라면, 바로 그 <위플래쉬>의 마지막 시퀀스를 만든 감독이라면 이 영화에도 마지막 시퀀스에 잔뜩 힘을 주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조용하고 강렬한 마지막 연주가 끝난 뒤, 끝내 그대로 헤어질듯한 두 남녀는 잠깐의 환상에서 이내 현실로 돌아와 서로를 보고 웃는다.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 연인으로 등장한 영화를 본 것이 이번이 세번째였다. 매번 안어울릴것 같으면서도 늘 잘 어울렸던 그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로부터 얻는 행복이 크다. 로맨틱 코미디로 굳이 분류해넣을 수 있는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에서는 워낙 각본이 그랬다하더라도, 액션 느와르였던 <갱스터 스쿼드>에서는 극중 거의 유일한 로맨스를 보여준다. 어느쪽이든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의 소위 연기 케미는 볼때마다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한 쌍이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엠마 스톤 특유의 발랄함과 사랑스러운 매력은, 자주 심각하고 우수에 차있지만 어딘가 허당같은 면을 지닌 듯한 라이언 고슬링의 눈빛과 말투에 어느 영화에서든 잘 어우러진다.


결국 꿈을 좇기 위해 포기한 사랑은, 이루어진 꿈 덕분에 "그럴수도 있었지만, 그러진 않았다"의 가정 중 하나로 남게되었다. 영화에서는 결말에 도달하기 이전부터 이미 더 적나라하게 그러한 암시들이 자주 반복된다. 그들의 꿈은 헐리우드, 혹은 LA, 혹은 LA LA랜드에 있다. 그런데 이 라라랜드는 현실과 환상, 게다가 마법스러운 일들이 공존하는 그야말로 꿈의 세상이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막히자 운전자들이 모두 도로로 나와 춤과 노래를 하는 오프닝에서부터 이미 감독은 선언한다. 여기는 꿈의 랜드지 현실의 세상이 아니라고. 그런 세상에서 현실의 사랑을 희망한 두 남녀는 키스 직전에 영화 필름이 타버리는 등, 끝없는 방해를 받는다. 결국 밤하늘을 날아올라 허공에서의 환상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왈츠를 마치고나서야 사랑을 시작하지만 이 꿈의 세상에서 현실은 발목을 잡는다. 사랑을 택한 그들의 대가는,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남자는 그토록 원치않았던 음악을 하게끔하고, 스크린에서 성공하게 될 여자는 연극 무대위에서 애쓰게 만든다. 그들이 본래 자신들이 있어야했던 곳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 곁에 서로는 이미 없다. 감독의 전작 <위플래쉬>에서도 주인공은 결국 드럼을 좇다, 아니 정확히는 찰리 파커와 같은 드럼의 신기를 좇다 연인과 이별한다. 그 순탄하게 그려지지 않는 이별 장면 역시 이후 재결합의 반전은 없었지만, 결국 주인공은 경지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걸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강박적인 이분법으로 보는건 너무 불편하다. 꿈 또는 사랑중에 반드시 택일하라니.

정녕 서로는 서로에게 꿈과 공존할 수 없는, 선택해야할 대상이었을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서로가 연인이기 이전에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곁에서 누구보다도 응원하고 도와주었던 누구보다도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였다. 미아의 추가 오디션, 1인 연극을 돕고 격려하고 그만의 방식으로 용기를 불어넣어주던게 세바스찬이었다. 그리고 세바스찬이 그리는 미래의 클럽 이름을 지어주고 그가 잘못된 자리에서, 자신의 꿈과는 다른 곳에서 음악을 하고 있을때 그런 그에게 따끔하고 진심어린 충고해줄 수 있던것도 미아였다. 사실 그들의 첫만남부터 그랬다. 영화의 오프닝이 끝나고, 도로가 뚫린줄 모르고 자신의 차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때 바로 뒤에서 바로 그 시끄러운 경적소리를 내주던게 바로 세바스찬이었다. 그의 이 경적소리는 이 첫 장면 이후에도 그녀가 꿈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때 그녀를 깨우듯이 몇번 반복된다. 반대로, 자신이 원하는 연주를 하지 못하고 캐롤이나 연주하고 있던 레스토랑에서도 그만의 음을 연주하는 바람에 방금 해고당한 세바스찬에게 다가가서 좋았다고 말을 건네주는 유일한 리스너가 바로 미아다. 시간적 격차는 있지만, 이 두 장면은 둘이 서로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같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서로가 있었기에 서로는 조금 더 꿈에 다가갈 수 있었다.

따라서 미아와 세바스찬은 연인이기도 하면서 조력자였다. 하지만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을 '라라랜드'가 아닌 현실의 세계로 끌고 내려와서는 꿈도 함께 끌려내려와야 한다. 둘에게 사랑과 꿈을 모두 지키는 선택지는 없었을까? 물론 그럴 수 있었다. 바로 낮 시간에 처음으로 천문대가 있는 언덕에 올랐을때, 즉 그들이 연인으로 등장하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말이다. 하지만 재즈의 즉흥성처럼, 그저 흘러가는대로 둬보자는 세바스찬의 말을 뒤로하고 영화가 5년을 건너 뛰었을때, 정말 흘러간 시간 뒤에 다시 돌아온 그들의 겨울에 더이상 그들은 함께 있지 않는다. 하지만 미아의 곁에는 남편이 있고 가정이 있으며 새로운 사랑이 있다. 다만 그 대상이 세바스찬이 아닐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아와 세바스찬은 꿈을 이뤘다. 나는 이 영화의 결말에서 문득 <500일의 썸머>가 떠올랐다. 그 사랑은 아름다웠지만 단지 마지막 사랑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럴수도 있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였던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렇게 하나의 가정으로 남아 영원히 문이 닫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시간이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아름다웠던 사랑의 결말이, 이제는 이루어진 꿈이라는 형태로, 환상의 나라인 라라랜드에 조금 더 어울리는 모습으로 바뀌어 서로의 마음 한 켠에 영원히 남을 수 있게된게 아닐까. 그들의 마지막 미소가 슬퍼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나 싶다.









덧글

  • 룡일 2017/01/02 11:51 # 답글

    와 정말 제가 라라랜드를 보면서 느꼈던 느낌이네요 동감입니다 ㅎㅎ
  • 레비 2017/01/02 18:55 #

    룡일님보다 뒤늦게 보고와서 나중에 글 읽었습니다 :)
    엠마스톤 욕하는 사람들은 대체 무얼 보신걸까요.. (..) ㅎㅎ
  • 2017/01/03 15: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1/18 01:5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boooookr 2017/01/18 17:48 # 답글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러게요. 꿈 또는 사랑 중에 오직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니. 레비님 말씀처럼 서로가 꿈을 이루기 위한 조력자였고, 또 동시에 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사랑이 아니었을 뿐이구요. 그래도 전 마지막에 둘의 미소가 너무 슬퍼보였습니다. 영화가 끝날때까지 계속 엠마스톤이 다른 사람과 결혼한 게 사실이 아니길 바랐어요. 영화 속 한 장면이기를.. ㅎㅎ
  • 레비 2017/09/17 05:10 #

    전 첫번째 볼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두번째 볼때는 그 마지막 미소부분에서 눈물이 찔끔 나더라고요. 서로 진정한 사랑을 했지만 단지 서로에게 마지막 사랑이 아니었을 뿐이었죠.. 게다가 회상 장면에서 둘이 잘 되어서 결혼까지 했을 경우가 마치 '더 잘 어울리게' 그려져서 더 슬펐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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