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The Martian, 2015 Flims




맷 데이먼이 연기한 주인공 이름 "마크 Mark"는 라틴어 Marcus의 영어식 이름이다. Marcus라는 이름은 언어권마다 Marc, Marco 등으로 조금씩 다르긴하지만 그 어원은 "of Mars", '화성의' 라는 뜻이다. 리들리 스콧의 2015년 영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이름부터 그럴 운명이었던 것이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마션>은 '스페이스 디스코'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아닌, 삽입곡들이 갖는 역할은 꽤 크다. 특히 리들리 스콧이 만든 과거의 우주, 혹은 SF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이 영화에서 음악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리들리 스콧의 전작들과 이 <마션>을 비교해보면 이 영화가 '일부러' 무겁고 진지한 우주 영화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애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모든 영화를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 두 부문으로 구별하여 따로 수상하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마션>이 "뮤지컬&코미디" 부문에 속했을까. 그래서 이 영화엔 사실과 논리를 따지고들려는 사람들에게 공격당할 헛점들이 유난히 많다. 그렇지만 원작 소설부터 이미 앤디 워어가 제법 코믹한 요소들을 듬뿍 넣어 썼던만큼, 영화도 구태여 무거운 의미를 담으려 애썼다면 영화가 몹시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을것 같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스케일큰 SF영화도 충분히 유치하지 않는 선에서 코믹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성과로 나는 <마션>이 몹시 매력적인 영화로 느낀다. 그래서 주인공 마크 와트니를 맡은 맷 데이먼은 마치 <그래비티>에 등장했던, 우주공간에서도 유머를 잃지않던 조지 클루니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미 많은 관객들이 동의하듯이, 사실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도 동일선상에서 비교가 힘든 마당에 이 세 영화를 단지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묶어버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렇다고해서 리들리 스콧의 전작 우주 SF, <에일리언>과 <프로메테우스>와 이 <마션>을 묶는 것도 어려워보인다. 마치 전혀 다른 감독이 만든 것 마냥, 리들리 스콧이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결국 영화 <마션>에서 더 큰 비중을 싣고있는 것은 감독의 철학보다 원작과 각본의 분위기라는 소리다. 

<마션>에서 맷 데이먼은 그가 평생동안 쌓아온 배우로서의 어떤 이미지를 완벽하게 활용하여, 즉 어딘가 신뢰할만하지만 동시에 허당스러운 면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완벽하진않아도 늘 낙천적일 수 있는 이 영화의 마크 와트니의 이름을 "맷 데이먼스러운 캐릭터"의 계보의 마지막 줄에 성공적으로 추가시켰다. 꽤 이른나이에 받은 오스카 덕분에(비록 연기를 대상으로 하는 상은 아니었지만) 그는 수상경력이나 흥행성적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일까.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는 정말 자신의 취향대로 가능한 내키는대로 영화를 골라 출연하는것 같다. 그의 영화는 질보다는 양적으로 충만한 편인데, 그중에는 코미디부터 액션배우까지 소화할 수 있는 범위가 무척 넓다. <인사이드 잡>같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도 그는 얼굴 한번 비추지않는 나레이션을 기꺼이 맡던 것은, <인터스텔라>같은 영화에서도 까메오 수준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을것이다. 원작에서도 워낙 쾌활하고 낙천적인 마크 와트니가 맷 데이먼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마크 위트니를 보고있자면 <본 얼티메이텀>에선 단 일 초도 웃지않았던 맷 데이먼이 정말 어떻게 그랬을수있었을까 싶을 정도.



영화 <마션>이 내게 주는 카타르시스중 가장 큰 부분은, 끝없이 요구되는 문제 해결의 서사를 긍정과 협동이라는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솔직한 방법으로 착실하게 돌파해나가는 정공법이 안겨 주는 쾌감들이다. 마크는 우발적인 사고로 자신이 다져놓은 생존의 기반들이 한순간에 날아가도, 지구에서 그에게 요구하는 살기위한 미션들이 점점 더 비현실적이고 절망적일지라도, 분노할지언정 그 속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붙잡고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는 인간이다. 한편으로 마크는 인간의, 아니 생물이라면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생존 욕구에 응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행동할 뿐, 그에게 어떤 영웅적인 면모를 드러내진 않는다. 전 지구가 그의 귀환을 응원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후에도, 그리고 화성에 혼자 1년 넘게 생활한 유일무이한 인간이라는 타이틀에도, 그저 동료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자신이 죽게된 이후의 부모를 생각하는 평범한 한 개인이자 인간일 뿐으로 남는다. 영화 전체 또한 미국이 혼자만의 힘이 아닌 중국의 힘을 빌려 문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돌파해나가는 등 헐리우드에서 만든 우주 SF 영화치곤 미국 영웅주의를 상당부분 포기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만 하다. (헐리우드를 잠식하고 있는 중국 자본의 입김의 결과라곤 해도 말이다) 이런 부류의 영화들 속에서 대부분 미국과 적대적인 분위기로 등장했던 러시아와는 다르게 중국이 협조적인 미국의 우방으로 극 후반부에 갑자기 등장하는 점도 새삼스럽다.

SF 영화의 형식과 재난 영화의 서사를 취하곤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한편의 휴먼 드라마라는 걸 부정할 순 없다. 영화에 등장하는 과학적 소재들, 심지어 생물, 물리, 화학이 모두 일정 파트 등장하는 이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스러운 극적 장치나 지적당할 허점들을 몹시 그럴법하게 포장하고 잘 꾸며놓은 요소들도,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건 '화성에서 홀로 살아남는 법'이 아니라 화성같이 척박한 상황속에서도 마크 와트니가 아닌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강력한 긍정의 힘을 설파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삼을 생각을 못하게 만든다. 마크는 애초에 지구를 떠날 일이 없었어도 잘 살아 남았을법한 사람이지만 화성에서조차 살아남았다. SF 우주 영화들에서 쓰일법한 전자 음악들보다 80-90년대 디스코 음악들이 (그 이질감을 무릅쓰고) 줄곧 쓰이는 것도 화성이라는 행성을 통째로 빌려와서 결국 우리 지구에서도 통용될 보편적 논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Gloria Gaynor의 I will survive 의 가사처럼 우리가 살아남아야할 순간들은 꼭 화성에 홀로 남겨졌을 때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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