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 모터스, Holy Motors, 2012 Flims




이것을 영화의 역사에 바치는 영화라고 말하는 평들을 심심치 않게 읽었다. 주인공 오스카(드니 라방)를 밤새 태우고 다니는 리무진들이 서로 대화하는 마지막 씬에서 그들이 말하는 위기 의식과 불안감의 주체들이 오래된 카메라를 비롯한, 대체되어가는 옛 것들이라는 것, 그리고 회한에 젖은 그들의 대화가 이미 다시 돌아오기 힘든 지나간 옛 영화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이라는 것은 그나마 선명하다. 그 외에도 폐허가 된 백화점과 그곳에서 노래부르는 옛 연인. 또는 오스카가 리무진 안에서 셀린(에띠드 스콥), 또는 영화 감독으로 보이는 얼굴에 점 있는 남자와의 대화에서 카메라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 등 영화 곳곳에는 지나간 과거 세대의 영화들에 대한 추억과 헌사들이 군데군데 스며있다. 게다가 레오 까락스 감독 본인이 등장하여 직접 영화를 '여는' 프롤로그까지. 감독의 사적인 다짐과 각오가 서려있는 영화이기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를 보고도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했던 내가 정확히 같은 이유로 <홀리 모터스>에서 레오 까락스의 향수에 거리낌없이 동참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그저 늘 그래오던대로 내가 영화로부터 볼 수 있는 딱 그만큼만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영화 <홀리 모터스>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부분은 영화의 옛 자취가 아니다.


오스카는 셀린이 운전하는 리무진을 타고, 하룻밤동안 총 아홉개의 각기 다른 인간, 혹은 인격을 연기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공통분모를 찾기 힘들정도로 천차만별이다. 모션캡쳐 배우, 모델을 납치한 광인, 거리에서 구걸하는 노파, 죽어가는 노인, 딸의 아버지 등등. 그런데 이중에는 오스카와 똑같이 생긴 타인을 죽이는 살인자도 들어있다. 이 챕터에선 살아돌아온 것이 오스카가 연기하던 살인자인지, 아니면 원래 죽이려던 상대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얼굴이 같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이후에 우리가 보는 오스카가, 영화 시작부터 봐온 오스카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게되고 영화가 끝날때까지 이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런데 가면 갈 수록 그 남자가 오스카가 맞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게된다. 왜냐하면 그가 하룻밤동안 연기하기로 예정된 아홉개의 배역조차, 우연인지 아니면 그조차도 각본과 계획의 일부인지 모를 에피소드들을 거치면서 나는 어느덧 셈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반쯤 포기하게 된다. 오스카는 이제 더이상 그 오스카가 아니거나 그럴 필요도 없으며, <홀리 모터스> 속에서의 연기와 실제는 경계를 잃는다. 기막힌 반전은 영화의 후반부에 있다. 영화 초반부, 레오 까락스의 프롤로그가 끝난 뒤 번듯한 저택에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리무진을 타며 연기를 시작했다고 믿었던 오스카의 집과 그의 '배경'이, 그 조차도 거짓이고 연기의 연장선이었다는 것이 마지막에 밝혀진다. 셀린이 마지막 스케쥴이라며 알려준 오스카의 퇴근 후 일정은, 침팬지들이 가족으로 기다리는 집으로 '퇴근'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우리가 단지 '하룻밤동안의 일'이라고 믿었던 오스카의 아홉 여정은 순식간에 무한으로 확장되어 버린다. 나는 그 오스카의 마지막 장면에서 거의 공포심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영화속 어느 '연기자'라고 믿으며 영화를 보고있던 나의 가정을 완전히 뒤엎고, 존재자체가 쉼없는 연기와 가면들로 끝없이 채워나가고 있는 사람으로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기괴한 연기를 하더라도, 언젠가 그 밤이 끝나면 그는 오스카라는 캐릭터의 본질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어디까지나 연기일뿐 이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 '근본'이 사라지는 순간 이 영화속 오스카라는 캐릭터를 전혀 규정할 수 없게되어버린 지점에서 나는 이상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지나치게 현실 같은 영화는 재미가 없다고 폄하 당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영화는 말도 안된다며 그 나름대로 비난받는다. 영화는 현실적이어야 하면서도 '보통의' 삶을 보여주어서도 안되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늘 위치해온 모양이다. 그런데 요즈음의 나는 자주, 지켜보는 카메라가 없이 사는 우리 개개인도 늘 연기를 하며 살고있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의 나는 가족들이 생각하는 나,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있는 학교에서의 나,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놀며 어울릴때의 나, 애인과 함께 있을때의 내가 교묘하게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살고있는게 아닌가하는 자기반성에 빠지고 사실 꽤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내가 이상한 것인가, 나는 몇겹의 인격에 빠져있는 것인가 하는 걱정에서, 과연 진짜 나는 이 중에 누구인가하는 번민에까지 미친적이 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조금 편하게 만들어준 계기는 다른데서 찾아왔다. 어느날 문득 생각해보니 나만 이렇게 살고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나만 이렇게 사는거 아니잖아?"하는 자기 위안이 어차피 그 모든 모습이 전부 다 나라는 포용력과 일시적인 안심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이런 위안이 어디까지나 근본적인 답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 중에서 나의 진짜 모습이라고 콕집어 규정하고 내세울 만한 본질은 어쩌면 이 중에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그저 그렇게 서로 다른 모습들이 뒤섞인 나를, 모두 나라고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는걸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내가 이 영화 <홀리 모터스>의 오스카를 보고 두려움까지 느낀 것은 그것을 이제 그만 받아들여야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중간에 인터미션이 있다. 세시간이 넘는 옛 영화들에게서 종종 찾아볼 수 있던 막간의 휴식이 갑자기 이 영화에 등장하는데, 이 짧은 씬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오스카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걸어오면 카메라는 뒷걸음질치며 그를 끝까지 중심에 두고, 그의 연주가 계속되며 다른 연주자들이 합류하며 커다란 합주를 완성해간다. 게다가 연주자들의 연주는 굉장히 자유롭고 신나며 경쾌하고 역동적이다. 음악의 완성도와 우리 개인들의 취향을 떠나서, 이 장면이 인상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영화 내용과 완전히 동떨어진 씬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인터미션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남자가 이 인터미션의 앞뒤로 놓여 있는 영화 <홀리모터스>에서 연기를 연기하고 있는 그 오스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시퀀스는 <홀리 모터스>라는 영화 안에 분명히 포함되어있지만, 그 '서사'는 완전히 독립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그가 오스카가 아니라 그냥 배우 드니 라방, 혹은 오스카라고 알고 있는 그 남자가 아닌 제 3자로 봐도 전혀 상관이 없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분명히 조금전까지 오스카라는 극중 이름으로 봐오던 그의 얼굴이 그 장면에서는 그냥 배우로서 알고있던 드니 라방으로 보였다. 같은 얼굴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시퀀스가 유일하게 이 영화에서 드니 라방이 오스카로서 존재하지 않았던 장면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 완전히 개별적인 캐릭터들을 한 사람이 연속적으로 연기하며 혼재되고 뒤섞인 이 영화에서, 완전히 분리된 시퀀스에 찾아온 동일한 그 얼굴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속 다른 아홉개(혹은 그 이상의)의 오스카의 얼굴들보다 가장 진짜 감정에 충실해보였다. 어쩌면 감독 레오 까락스가 단지 이 짧은 인터미션 속 진짜 얼굴을 잠시나마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 앞뒤에 가짜 얼굴들로 가득찬 영화를 채워놓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어일으킬 정도로 말이다.













덧글

  • 리퍼 2016/05/12 16:12 # 답글

    갑자기 생각난 것인데, 3번째 문단의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퍼펙트 블루"였을 거에요.
  • 레비 2016/05/12 23:24 #

    제가 본 적 없는 애니메이션이네요. 첨언 감사합니다 !
  • 2016/05/12 23: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5/13 00: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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