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Drive, 2011 Flims



영화를 보다보면 무엇이든 과잉되거나 남용된 포인트들을 발견하고 실망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감정의 과잉, 어울리지 않는 음악의 남용, 혹은 극중 캐릭터의 무분별한 소비 등이 그렇다. 무엇이든 부족해선 안되겠지만 또 자칫하면 금방 넘쳐버릴 수 있는 수많은 요소들을 정량씩 영화에 녹여놓는 것이야말로 좋은 연출, 좋은 감독의 몫이고 또 우리는 그것을 역량이라느니 작품성이라느니 하는 여러가지 수식어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물론 여기엔 보는 관객들의 개인적인 불호가 어떤 합의된 절대기준을 갖고있지 않으므로 단순히 이점만으로 좋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가르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도 내가 타란티노의 영화들 속 폭력을 보면서 느끼는 불편함을, 그 점이 유쾌하다고 받아들이는 전세계의 많은 영화팬들에게 쉽게 설득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이 영화 <드라이브>속의 폭력적인 장면들은 타란티노처럼 희화적이지도 않다. 쿠엔틴 타란티노보다 오히려 기타노 다케시 스타일에 가깝다. 영화는 피를 흩뿌리기보다 오히려 그 장면 앞에서 카메라를 구태여 돌리지 않는다. 영화란 감독과 관객들의 끝없는 대화다. 그리고 감독은 일단 이런 영화를 만들어 내놓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질문을 갖는건 정당하다. 이 영화에선 과연 이런 표현이 충분히 필요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이 영화에 대한 우리 각자의 평가는 크게 달라질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덴마크 영화 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2011년 영화 <드라이브>는 과소평가되어 있는 것이 몹시 아쉬운, 정말 좋은 영화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연기하는 라이언 고슬링은 이 영화 이후에도 윈딩 레픈 감독의 영화 <온리 갓 포기브드>에도 출연했다. 라이언 고슬링 특유의 무표정은 오히려 실없이 웃는 연기를 보여줄 때의 그보다 훨씬 유리한 장점을 안겨주는 것 같다. 극중 이름도 부여받지 못한 이 주인공 캐릭터 "드라이버"는 이 영화 <드라이브>에서 시종일관 감정을 극적으로 통제하고 드러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주인공 '드라이버'는(이름이 없으므로 그를 이하 드라이버라고 칭하겠다) 낮에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차량 액션 스턴트맨으로 일하거나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한다. 하지만 밤에는 범죄 현장으로부터 범죄자들을 탈출시키는, 그러니까 범죄 자체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으면서 범행 직후 경찰로부터의 확실한 도주를 보장해주는 그들만을 위한 드라이버가 되어준다. 밤이든 낮이든 그가 돈을 버는 일에는 자동차가 관여되어 있다. 어느 일을 하든지간에 프로페셔널한 모습과 실력을 모두 보여주는 그는 반드시 필요한 말과 행동만을 추구하고 불필요한 말은 극단적으로 꺼리는듯한, 사적인 면을 전혀 찾아보기 어려운 남자다. 하지만 동네 마트에서, 그리고 자신의 아파트 같은 층에 살고있는 여자 아이린(캐리 멀리건)과 그녀의 어린 아들 베니치오를 만나면서 이런 얼음장 같은 남자의 마음이 서서히 열려간다. 그는 남편 없이 살고있는 이 가정의 마치 대체된 퍼즐 조각처럼, 이 모자와 교감을 나누고 스스로의 호감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조직 범죄로 교도소에 있던 아이린의 남편 스탠다드(오스카 아이삭)가 출소하게 되고, 그는 아이린을 향한 마음과 동시에 이 가정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평소 자신답지 않은 감정변화들 속에서 언뜻 혼란을 겪는다.

영화는 여기까지 보기엔 앞선 세대에서 수 없이 반복되어온 느와르의 상투적 공식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 보인다. 가족도, 과거도, 이름도, 표정도, 감정 표현도 없는 시크하고 과묵한 남자 주인공이 어느 여자와 사랑에 빠져 닫혀있던 마음을 열어가는 이야기. 게다가 그 여자에겐 이미 다른 남자가 있거나, 혹은 복잡한 암흑가의 위협과 긴장으로부터 노출되어 있기에 우리의 주인공이 멋지게 한 몸 희생하여 사랑하는 여인을 구해내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물론 만약 정말 이게 전부라면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은 거의 대부분 날아가고 말 것이다. (놀랍게도) 드라이버는 스탠다드로부터 아이린을 빼앗으려고 하지도 않으며, 스탠다드도 이 이웃의 남자를 특별히 경계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영화는 지리멸렬해질 수도 있었을 사랑의 삼각관계로부터 현명하게 비껴간다. 아이린에 대한 그의 거리는, 이제 더 가까워지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는다. 사랑이라는 인력과 드라이버 자기 자신의 캐릭터성이 갖는 척력이 오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그의 자리는 과거의 범죄 조직으로부터 위협받는 스탠다드와 그의 가족, 아이린과 베니치오를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위치에서 보호하는 한명의 수호자가 된다. 그리고 사적인 어떤 모습이나 감정의 드러냄이 없었던 그가 처음으로 이 가정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이야기가 영화의 후반부에 준비되어 있다.


마치 <분노의 질주>식의 자동차 액션을 기대한다면, 혹은 <올드보이>식의 피 튀기는 복수극을 기대한다면 이 영화는 둘 중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쯤에서 이 글을 시작하며 던진 질문을 다시 가져오고 싶다. 그래서 이 영화의 폭력성은 영화안에서 과연 정당한가. 주인공 드라이버와 그의 은인들 주위에 있는 위험하고 잔인한 세계가 그들을 조여오지만, 가장 폭력적인 장면을 보여주는것은 오히려 드라이버 그 자신이다. 인상적인 엘레베이터 씬에서, (감독은 이 장면 직전의 아이린과의 키스씬만을 슬로우 모션으로 찍었다. 키스 직후 벌어지는 싸움은 그래서 갑자기 아름다웠던 환상에서 잔인한 일상으로 끌어내려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자신의 분노 뿐만 아니라 모든 응축되어있던 에너지를 폭발시키듯이 움직인다. 단순히 자신들을 해하려는 사람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행동이라기엔 그의 살인 방식은 분명 과하다. 엘레베이터가 마침내 문이 열리고, 아이린은 드라이버의 끓어오르는 듯한 에너지에 떠밀려나가듯 엘레베이터 문 밖으로 나가며 둘은 서로를 응시하지만, 닫히는 문에는 둘 중 아무도 손대지 않는다. 그것으로 마지막이라는 것을, 드라이버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몇번의 응축과 폭발 이전에도 드라이버에게 이런 속성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짧고 분명한 씬이 있었다. 아이린과 베니치오의 "대리 아빠이자 남편"의 역할로 행복해하던 그가, 스탠다드의 출소 후 자신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왔을 때. 바에서 우연히 만나고 아는 척을 해 온 어느 남자의 과도한 친근함에 한참을 무반응이던 그는 갑자기 당장이라도 죽일듯한 표정과 짧은 대사로 그를 위협해 쫓아낸다. 그것은 단지 그자리에 있던 상대방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아이린에게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잠시나마 행복을 느끼고 흔들렸던 자기 자신에 대한 괴리감이 뒤섞인 나머지 뿜어져나온 첫번째 본심의 순간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이 "Driver"가 아니라 "Drive"인 이유는 그래서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drive라는 단어에는 자동차나 기계등을 운전하거나 작동시킨다는 뜻이 있지만, 이는 꼭 사물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 단어는 사람을 감정적으로 몰아가거나 촉발시키거나 어떤 방향으로 추진시킬때도 적절히 쓰일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이 지목하는 것이, 뛰어난 운전 실력을 가진 주인공의 '운전' 그 자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주인공 드라이버가 영화 내내 보여주는 감정의 응축과 폭발을 은근히 지칭하고 있는건 아닐까. 또한 그것은 사랑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와 그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더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는 주인공이 가진 설득력있는 캐릭터성이 있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 자칫 많은 클리세들의 나열이 될 수도 있었던 장르와 영화적 문법들을 가져와 자신만의 방식과 이야기로 새롭게 만들어낸 좋은 영화,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다.







덧글

  • 뉴런티어 2016/03/02 09:31 # 답글

    제가 본 드라이브 리뷰중에 가장 명쾌했습니다
  • 레비 2016/03/03 09:26 #

    감사합니다 :)
  • yyy 2017/01/03 10:56 # 삭제 답글

    글을 되게 잘 쓰시네요..영화 공부하시나요?
  • 레비 2017/01/03 11:25 #

    졸필에 과찬이세요 :)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공부하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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