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Flims





상징과 은유로 가득찬 영화를 보는건 내가 내 눈을 속이고있는 기분이 들어서 늘 기분이 좋다. 비상식적인 장면이나 설정들이 얼마든지 튀어나와도 모두 용인하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현실적 화면들이 선사하는 본능적 괴리감이 기분 좋은 시각적 쾌감을 준다. 숲속에서 낙타가 어기적어기적 걸어 지나간다든지.

그리스의 영화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 <더 랍스터>는 사랑에 대해 풍자하고 은유하는 영화로 얼핏 읽힐 수 있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굳이 이를 사랑에 한정 지을 필요도 없다. 영화엔 두 가지 세력, 두 프로파간다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리고 주인공 데이빗(콜린 퍼렐)은 영화를 대강 절반으로 뚝 쪼개어 이 두 세력에 모두 몸을 담근다. 첫번째 세력은 정해진 기한안에 짝을 찾지 못한 투숙객을 동물로 바꾸어버리고 마는 호텔이다. 동물의 종류는 직접 고를 수 있고 정해진 기한이라는 것도 본인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이 호텔을 나서 다시 사회, 영화에서 도시라고 칭하는 사회로 되돌아가는 방법은 두가지 형태를 통할 뿐이다. 커플이 되거나 동물이 되거나. 즉 둘이 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게되는 수 밖에 없다. 이에 반하는 두번째 세력 '외톨이들'은 호텔과 이 호텔의 시스템을 지지하는 모든 사회로부터 일종의 레지스탕스처럼 저항하는 세력이다. 이들은 시쳇말로 "솔로 부대"다. 즉 한쌍으로서가 아닌 철저히 혼자로서의 삶을 살 되, 호텔의 억압된 규칙들을 자유롭게 어길 수 있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자유를 누리면서 동시에 숲속에 숨어 호텔과 사회로부터 사냥 당하거나 배척당하는 삶을 감수해야 한다. 데이빗은 영화의 전반부에는 호텔에서, 그리고 후반부엔 숲속에서 보낸다. 그런데 이 남자, 이 두 세력을 모두 경험하고도 어디에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한다. 그 이유는 호텔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규범화 된 룰들을 갖추어놓고 짝 만들기를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숲속의 외톨이들도 그에 못지않은 통제적인 룰로 싱글 상태로 남아있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호텔에서 철저하게 금지된 자위행위에 대해서 숲의 세력은 자유롭게 허락하지만, 반대로 이성간의 연인으로 발전할만한 일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금한다.

영화 전반부에 보여주는 호텔 안에서의 군상들은,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는 짝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나마 맺어지기 위해 스스로를 속여가며 상대와 맞추려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한다. 코피가 자주 나는 여자에게 접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자해하며 코피를 내 접근하여 결국 사랑과 결혼에 골인한 절름발이 남자(벤 위쇼)가 가장 대표적인 일례로 등장한다. 그는 호텔을 졸업하여 한 쌍으로서 사회로 나가기 위한 단계의 거의 마지막까지 나아간다. 코피가 잘 나는 남자임을 연기하며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를 맘껏 비웃을 수 있을까. 세상이 짝을 찾는 것을 그토록 종용하며 반대로 나이를 먹을 수록 짝이 없는 사람들을 일종의 패배자처럼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와 조금 맞지않는 사람인것 같지만 체념하듯 내가 좀 더 맞추면 된다는 식으로 조금 참아가며 시작된 관계에 오랜시간 동안 고통 받는 사람들이 이미 현실에도 많지 않은가. 일부 긍정적인 면에 혹하여 부정적인 면들은 "파워 오브 러브"로 극복해나가겠다며 시작된 관계들을 자기 자신 또는 상대 그 어느쪽이든 갉아 먹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런 진심어리지 못한 관계가 다소 주춤해질 때, 호텔이 배정한 아이를- 이는 분명 결혼과 육아의 은유이다- 커플이 키우기 시작하면 다시 관계가 호전된다는 설정은, 관계의 균열이나 금이 간 부분을 자식에 대한 정으로 메꾸고 버티게 만든다는 점에서 굉장히 씁쓸하게 느껴졌다. 주인공 데이빗 역시 다가오는 기한에 쫓기듯 한 여자에게 접근하지만 자신을 속여가며 "나는 당신과 어울리는 사람"임을 연기한 그의 관계는 결국 금방 들통나고 파국으로 이어진다. 호텔에서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짝짓기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여, 스스로를 속이고 상대방을 속여가며 그저 어떻게든 한 쌍의 관계를 만들고자하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몸짓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을 만들어가는 이 사회에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나는 좋아하는 남자에게 쉽게 접근하고 마음을 얻기 위해, 사전에 알게 된 상대방에 대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자신을 그가 원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연기하며 속여 호감을 이끌어낸 뒤 연인 관계에 기어코 도달한 한 여자를 알고 있었는데, 사귀기 시작한 이후에도 그 모습을 유지하는데에 (당연하게도) 실패하여 연인이었던 사람의 온갖 실망을 받고 이별 당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주변에 이 영화 <더 랍스터>를 권하고 싶은 이들이 많다.

하지만 데이빗이 호텔을 탈출하여 외톨이들에게 합류한 이후에, 이 영화가 단순히 '커플지옥 솔로천국'을 말하고 있지 않음이 금방 드러난다. 외톨이들의 리더(레아 세이두)는 사냥당하는 외톨이들을 인솔하여 밤에 호텔을 급습한다. 그들이 쓰는 마취총을 똑같이 구해 들고 쳐들어가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은 역시 커플들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의심과 불신, 이별의 수순을 심어두고 나오는 일이 전부다. 특히 호텔의 총 지배인과 그녀의 남자의 방에 들어가 목숨을 위협해가며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지 않음을 유도심문하는 장면은, 외톨이들의 논리에도 분명 허점이 있음을 자명하게 보여준다. 리더와 달리 자신의 친구이자 억지로 코피를 내가며 부부관계를 유지하고있던 친구의 보트에 들이닥친 주인공 데이빗 역시, 그들 앞에서 남자의 거짓을 폭로하고 나온다. 이후 영화에서 이 커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혹자는 어린 딸까지 데리고 있는 이들 커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라고도 하지만, 데이빗이 자신이 가지고 간 장총을 굳이 위협 한번 하지 않고 들고 갔다가 대화 이후 그들 부부의 쇼파에 그대로 두고 나온 장면이 암시하는 바는 그와 반대라고 생각한다. 총으로 위협할 것도 없이, 두 사람의 관계를 덮고있는 어떤 거짓과 불신을 마음에 심어두고 나옴으로서 총 자루를 그들에게 직접 넘겨주고 빠져나온 것이다. 결국 호텔이 존속해 올 수 있던 이유, "어떻게하든 제 짝을 찾아야 한다"는 그들의 추구 가치는 이런 조금의 불신에도 크게 흔들릴 수 있는 사상누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외톨이들의 논리, 그들의 규범 역시 호텔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주인공이 느끼면서 호텔과 외톨이들이라는 두 양 극단은 서로 맞닿아 있다는 점이 표면에 드러난다. 숲속에서 자유롭게 사는듯해 보이지만 막상 생필품 등을 구하러 그들이 혐오하는 사회 시스템에 어쩔 수 없이 정기적으로 숨어 다녀왔다 와야하는 모순과, 반대 진영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나머지 리더가 요구하는 그들의 룰은 호텔이 요구하던 강압과 형태만 반대일 뿐, 그 부조리함은 다르지 않다. 이쯤 되면 이 영화 <더 랍스터>가 주장하는 바는 점차 명확해진다.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에서의 개인 심리의 변화나 진실된 사랑을 찾기 위한 여정 따위가 아니다. 이 영화는 중도가 없는 양 극단의 모순을 두루 보여주면서 사람의 수만가지 감정과 상황들을 '모 아니면 도'로 단순화 시키고 규정해버리는 세태를 풍자하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암시는 영화 초반부 부터 일찌감치 언급된다. 데이빗이 호텔에 처음 도착하였을 때, 자신의 성적 취향을 묻자 "이성애자"이지만 아주 오래전에 동성애 경험도 있다며 "양성애자"로 기재하면 안되냐는 질문에 선택지는 "이성애" 아니면 "동성애" 둘 중 하나뿐이라며 '지금 정하면 나중에 바꿀 수 없다'고 까지 못박는다. 마지못해 "이성애자"로 스스로를 규정해버린 데이빗이 호텔로부터 신발을 지급받는 씬에서도 이는 한번 더 반복된다. 신발 사이즈를 묻는 직원에게 44 1/2이라고 하자, 직원은 half 사이즈는 없다면서 44 아니면 45 사이즈 중 고르라고 말한다. (265를 신는 나에게도 무척 공감가는 씬이었다. 입대 직후 훈련소에서 260 아니면 270중에 고르라고 했던 7년전 그 날이 떠올랐다..) 영화는 이처럼 중간은 없다는 식의 논리를 계속 들이민다. 호텔과 외톨이들로 양분되는 체제도 마찬가지다. 커플이 되거나 아니면 독신주의자가 되거나. 여기에 감정의 변화, 가치관의 다양성이 끼어들 여지는 점점 없어진다. 자신과 같은 근시라는 이유로 근시인 외톨이 여자(레이첼 와이즈)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이 여자가 눈을 멀자 데이빗이 여자를 대하는 태도는 미지근해진다. 그녀를 사랑은 하지만 그녀와 똑같이 눈이 멀기란 쉽지 않다. 이제 호텔로도 숲속에서도 있을 수 없는 데이빗은 그녀를 데리고 '중간계'를 찾아 두번째 탈출을 시도한다. 그렇게 사회로 내려온 그는 여자를 카페에 앉혀두고 나이프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자신도 사랑하는 여자와 같아 지려고 시도한다.

영화의 첫 프롤로그 씬은, 영화의 나머지 그 어느 씬과도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여자가 차를 타고 찾아가 말을 쏴죽이는 이 장면이 이 영화 속 세계에서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더 랍스터>를 다 보고나면 알 수 있다. 그 여자와 말 사이에는 우리가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고 또 함부로 단정짓기 힘든 그들만의 이야기가 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영화를 다 보고나서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영화는 우리에게 데이빗의 결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눈을 찌르고 사랑하는 여자와 조금 더 같아진 데이빗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또 (나를 포함한) 누군가에겐 마지막 찰나의 망설임이 보여주었듯이 끝내 눈을 찌르지 못하고 여자를 두고 도망가버린 데이빗이 있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양 극단을 보여주고 나서야 이 영화 <더 랍스터>는 첫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대한 해답을 원하는 우리의 욕망을 잠재운다. 반드시 사랑하거나, 절대 사랑하지 말거나 - 세상의 사랑은 이 두 가지만으로 이루어져있진 않다.






덧글

  • 호원 2016/01/14 09:24 # 답글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중간에 뜬금없이 터지는 장면도 많았고.. 끝나고 인상에 오래 남더라구요.
    다시 보고 싶어서 cgv에서 TOD를 계속 신청하는데 무산되네요 ㅠㅠ
  • 레비 2016/01/15 12:28 #

    앗 그러시군요.. 개봉한지 그리 오래지나지 않아서 아닐까요 ㅎㅎ
    여운이 꽤 긴 영화였습니다 :)
  • 2016/01/14 18:2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1/15 12:2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02/16 00: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2/23 01:5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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