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 Leviathan, 2014 Flims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잇는 현존하는 러시아 영화계의 후계라는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영화 <리바이어던>은, 칸느에서 각본상을 받을때에도 영화의 그 급진적 메시지에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다고 한다. 그리고 감독이 공공연하게 밝혔듯, 영화의 배경은 러시아의 어느 외딴 마을이지만 그는 미국의 실화 사건을 듣고 영감을 얻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로 2004년 콜로라도에서 발생한 킬도저 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사건은 충격적으로 개조된 불도저로 주목받았지만 즈비아긴체프는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해야만했는가에 주목했다. 국가와 법에 대한 어떠한 항명이 제도적으로, 물리적으로 가로막힌 한 개인의 마지막 처절한 몸부림으로서 그는 이 사건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리고 무대를 러시아로 옮겨와 영화 <리바이어던>을 만들었다.

영화 <리바이어던>은, 국내 개봉시에도 부당한 국가 권력 앞에서 무력한 개인의 불가항력적 싸움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주로 홍보되어왔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사회 고발성 영화'중 하나인것처럼 말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무기력한 주인공 콜랴(알렉세이 세레브리아코프)의 불행함과 그의 집과 사유지를 집어삼키려는 시장 바딤(로먼 마디아노브)의 탐욕스러움에 분노하게 되는 것이 물론 일차적으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러나 영화 중반이 넘어가며 벌어지는 콜랴를 향한 불행의 화살촉은 국가 권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목도하면서부터, 영화는 한 개인의 삶이 영화 포스터의 거대한 고래 뼈처럼 마치 살 한 점 남지않고 발가벗겨지는 것에 대한 충격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파괴되어가는 한 가정, 하나의 삶이 거기 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마치 저항할 생각조차 들지 않게 만드는 완전한 무력감이다.

콜랴가 겪는 불행은 단순히 불합리한 법이 전부가 아니다. 그의 항소와 소송을 돕기 위해 모스크바로부터 온 변호사 친구 드미트리는 시장 바딤의 약점을 조사하여 그를 협박하는데에 성공하지만, 바딤은 협박받은 권력자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선호하는 방법으로 드미트리에게 되돌려준다. 바로 그를 납치하여 부하들과 함께 생명을 위협하는 것. 이렇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이 하나씩 차단당하는 콜랴에게 닥쳐온 불행은 아내 릴랴(옐레나 랴도바)가 드미트리와 불륜을 겪고 도망치려고 시도한 점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 콜랴의 어린 아들은 생모가 아닌 릴랴에게 증오심을 갖고 있고, 릴랴 역시 그런 아들을 품어주기가 더 이상 힘든 와중에도 콜랴는 아들과 아내를 모두 사랑으로 안으려 한다. 이런 남자에게, 자신을 도우러 온 친구와 아내의 불륜과 도주는 국가와 싸우고 있는 와중에 더 큰 불행으로 다가왔고, 엇나가고 있는 사춘기 아들의 반항과 맞물려 결국 아내를 잃고 마는 비극까지 겪게 한다. 단순히 보면, 이런 개인의 가정사는 부패한 사회제도와 별개의 불행, 그저 불운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만약 사회가 부당하게 이 가족을 집에서 몰아내려하지 않았다면 아내의 불륜도, 그리고 아들로 하여금 그것을 목격하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아들이 아내에게 상처를 주어 릴랴가 새벽에 집을 나가게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몹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처음엔 외부에서부터 다가온 불안과 압력이 이 가족을 불도저에 무너지는 집처럼 스러지게끔 했다.

영화에는 콜랴가 법정에 서 판결문을 듣는 인상적인 장면이 두 번 반복된다. 영화 초반부, 친구 드미트리와 함께 콜랴 부부는 법정에서 자신들의 항소가 기각되는 판결문을 듣는다. 이 장면에서 판결문을 낭독하는 여자는 마치 아무런 감정없는 기계가 말하듯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장문의 판결문을 읽어내려가는데, 이 장면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문장 하나하나에서 콜랴의 모든 항소와 부당하다는 고발이 하나씩 부정당하며 법은 듣고있는 자로 하여금 일말의 희망마저 다 거두어가듯 고압적이다. 그리고 결국 콜랴는 정부로부터 충분치못한 보조금을 받고 사유지를 시장(또는 국가)에게 빼앗기는 판결을 받는다. 하지만 두번째 장면에서 콜랴는 똑같은 목소리와 어조의 여자로부터 다른 판결문을 들어야 했다. 그는 실종되었다가 주검으로 발견된 아내 릴랴의 살해범으로 체포되었고, 이 강인했던 남자도 결국 아내를 살해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누명에 어린애처럼 엉엉 울어야할 정도의 무력감을 느꼈다. 그리고 징역을 선고받는 그 자리에서, 법은 여전히 똑같은 목소리로, 이번엔 사유지뿐만 아니라 이 남자의 남은 모든 것을 가져가려한다. 처음엔 집과 땅이, 그리고는 친한 친구와 사랑하던 아내가 눈이 맞아 떠나려고하더니, 아내와 사별한 것도 모자라 그 아내를 죽인 살인범으로 몰리고, 혼자 남은 아들을 국가가 보육원에 집어 넣으려하니, 그는 어떤 항소도 먹히지않는, 전부 다 썩어 어디서부터가 정상인지 모를 이 사회 구조에 저항할 힘도 용기도 잃은채 투항하고 만다. 필립 글래스의 건조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외딴 해안 마을의 싸늘한 풍경 씬은, 영화의 분위기처럼 처음과 마지막을 각각 장식하고 있다.

욥기의 '리바이어던'과 그 괴물의 이름을 빌려와 거대한 국가와 종교의 지배적인 힘을 상징으로 저서에 사용했던 홉스의 저작, '리바이어던'이 이 영화의 제목에서 발휘하는 힘은 유사한 의미를 갖고있다. 홉스는 군주가 지상을 지배하는데 있어 군주론뿐만 아니라 종교 역시 마땅히 통제하고 다루어야할 영역이라고 묘사했다. 영화에서 콜랴의 거주지와 땅을 빼앗으려는 시장 바딤은, 콜랴의 생각(자신의 궁궐을 지으려고한다는 생각)과 달리 주교(종교)에게 굽실거리며 결국 영화 말미에 묘사되듯 교회를 짓고 종교에 의지하여 더 높은 권력을 얻고자 함이었다. 영화 중반 주교와 바딤이 대화하는 짧은 씬은, 바딤 역시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를 망설이며 일말의 불안함을 느끼며 권력에 집착하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조차 바딤의 고백은 주교에 의해 가로막힌다. 주교는 정치권력(시장)을 향해 그저 맹목적으로 종교를 믿고 따라오라며, 시장의 그런 행동을 종용한다. 결국 탐욕스러운 정치 권력과 부패한 종교가 결탁한 결과가 이런 개인으로 하여금 괴물같은 힘, 항명과 항소가 불가능한 억압과 부조리에 의해 집어삼켜지게 만들고만 것이다.








덧글

  • 평행선사이에서 2016/01/06 12:41 # 삭제 답글

    영화 별로 안 보는데 이건 한 번 봐야겠군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 레비 2016/01/06 14:47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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