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 2007 Flims



<인히어런트 바이스>까지 본 현재, 내가 생각하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최고의 작품은 여전히 <매그놀리아>라고 나는 말한다.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개인의 취향에 따른 문제다. 누군가에겐 <마스터>가, 혹은 <부기 나이트>가 최고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최고로 꼽지 않았다는 말이, 내가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걸작이라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나의 취향과 전혀 무관하게도,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여전히 엄청난 영화다.

피로 물드리라. <데어 윌 비 블러드>가 2008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경쟁에서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만난건 그야말로 불운이었다. 정말이지, 따로 각각 작품상을 주어도 응당했을 두 영화가 같은 해에 공개된 것은 폴 토마스 앤더슨에겐 아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한편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 영화로 생애 두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가져갔다. 그는 훗날 <링컨>으로 전대미문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3회 수상을 한다. 연기에 수식이 불필요한 그이지만, 이 영화에서의 연기는 정말로 특별하다. 나는 그가 상을 받은 세 편의 영화중, 이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의 연기가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았는데, 그럴때마다 내가 <나의 왼발>을 너무 어렸을때 보아서 적극 동의하진 못했지만 상당부분 납득이 간다.

이 무시무시한 배우의 상대역인 선데이역의 폴 다노는 자기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불과 스물다섯살의 나이의 젊은 배우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열연 앞에서 자기의 연기를 제대로 펼쳐보이기란 굉장히 어려운 임무였을 것이다. 흡사 메릴 스트립 앞에 선 스물네살의 앤 해서웨이와 비슷한 입장이 아니었을까.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주변, 혹은 상대 배우들의 연기 마저 '잡아먹는' 경향이 있는데 (<갱스 오브 뉴욕>을 떠올려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 다노는 맞은편에 선 젊은 목사 역할을 썩 괜찮게 해냈다. 나는 아마도 이것이 이 영화보다 불과 2년 앞섰던 영화 <발라드 오브 잭 앤 로즈>가 그에게 도움이 되었지않았나 혼자 재미난 상상을 해보곤 한다. 왜냐하면 그 영화에서 폴 다노는 이미 다니엘 데이 루이스 앞에 서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영화에서의 두 배우의 관계는 어쩌면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보다 더 사연깊은 관계였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길.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가 맡은 사운드트랙도 훌륭한데, 그의 기괴하면서도 긴장감을 조성하는 음색은 영화의 분위기를 시종일관 통제한다. 그런데 정작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마무리짓는 영화라니. 영화의 (어쩌면 충격적일수있는) 엔딩과 주인공 플레인뷰의 마지막 대사. 그 순간 경쾌하다못해 엉뚱하게까지 들려오는 바이올린 협주곡은 영화 내내 밝은 분위기의 음색이 만무한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조니 그린우드의 영화음악적으로도 탁월한 센스는 훗날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도 재현되었다.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초반 10분여간 한마디의 대사도 없이 단지 음악과 비주얼로만 당시의 미국 서부의 시대상과 플레인뷰(다니엘 데이 루이스)라는 남자의 인생과 성격을 한꺼번에 요약한다. 다이너마이트 작업을 하다가 사고로 다리가 부러졌지만 금맥을 발견하고는 처절하게 기어서 산을 내려간다. 금광을 찾던 사람이었던 이 남자는, 또다른 금광, 석유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그렇게 석유 시추업자가 되었다. 석유는 지금까지도 자본의 상징이기도하지만, 동시에 이미 매몰되어있는, 그러니까 '줍는자가 임자'라는 독특한 성격을 가진 자본이었을 것이다. 그 시기의 석유 시추업자들은 그래서 남이 눈돌리지 않은 땅에 누구보다 먼저 선점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플레인뷰에게 다가온 선데이 가문의 한 청년은 자기 집 주변에 석유가 묻혀있다고 제보하고 사례비를 요구해 가져간다. 그의 말을 믿고 찾아간 황무지 마을에서 그는 정말로 석유 시추를 경쟁자들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하게된다. 그런데 그 마을엔 플레인뷰 일생일대 숙적의 라이벌이 있다. 기름만이, 오직 돈에 대한 열망으로 밀어붙여온 그였지만 마을 사람들의 민심을 지배하고 있는 목사 선데이(폴 다노)가 버티고 있는 것이다. 선데이는 라이벌 석유 시추업자들처럼 플레인뷰와 석유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다. 그가 요구하는 것들은 플레인뷰의 기준, 그가 지금의 그를 만들어온 원리원칙에 반하는 것들이다. 교회에 대한 헌금, 공개적인 회개, 믿음에 대한 강요, 신에 대한 복종. 그런데 그를 적으로 돌리면 자기가 파야할 땅의 주인들을 적으로 돌리는게 된다. 땅 속에 파묻힌 석유를 꺼내놓으려는 자와 그런 그를 개종시키려는 목사. 사업가는 종교를 그저 민심을 얻기위한 수단으로 여기며 종교는 그런 사업가를 마을의 교회 확장을 위한 돈벌이로 삼는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굴복시키려하면서 두 세력은 손을 맞잡은것도, 싸우는것도 아닌 이상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선과 악이 경계를 잃는다. 아니, 애초에 선과 악을 나누려는 시도는 거기 없었다.

영화에는 두가지의 주목할만한 층위가 있다. 표면적인 첫번째는 석유로 대표되는 자본과 개신교로 대표되는 종교의 대립이다. 이 층위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엎치락뒤치락하며 흥미롭게 다투던 전자가 마지막에 후자를 강하게 찍어누르고 있다. 그것도 아주 통쾌한 방식과 모습으로 말이다. 믿음이라는 스스로 부여한 당위로 쌓아올린 힘으로 자본을 무릎 꿇리려했던 선데이 목사와 교회는 결국 최후엔 돈이 궁하다며 플레인뷰에게 고개를 숙이고 찾아와 급기야 플레인뷰의 농간에 놀아나 스스로 신을 부정하는 상징적인 대사를 외친다. 그리곤 당연한 수순처럼 응징당한다. 이렇게만 보면 단순히 피로 물든 자본이 보다 더 타락한 종교에게 신벌을 내린것처럼 보이나, 플레인뷰 역시 모든 것을 잃었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 두가지, 기름과 종교는 21세기 현재 세계의 가장 주요한 두가지 분쟁 원인이기도하잖는가. 하지만 이는 내가 이 영화를 볼때마다 즐겨보는 시선이 아니다. 나는 <데어 윌 비 블러드>가 플레인뷰라는 이 주인공, 오롯이 이 남자만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두번째 층위는 그래서 플레인뷰 개인사에 있다. 그것은 욕망이 한 인간을 집어삼켜갈 때 벌어지는 '인간성'의 안위다. 이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 또한 유난히 강조되는 플레인뷰의 병적으로 보이는 가족에 대한 집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흔히들 이 영화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언급되는데, 나는 아들이나 동생으로 이 영화에 등장했던 그의 가족들은 표면적인 상징일 뿐, 그들은 모두 플레인뷰가 붙잡고 있는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내내 그에게 작용하는 석유를 향한 욕망은 성공과 돈에 대한 집념이다. 그런데 그것을 더욱 강하게 갈망하고 추구할수록 그는 스스로 인간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본인도 그것을 인지하는듯 하다. 물론 그는 잃어가는 자신의 인간성을 특별히 걱정하거나 후회하진 않으나, 적어도 더 잃지는 않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마지노선이 바로 가족이라는 관계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두번에 걸쳐 각각 아들과 친동생을 얻었고 그들을 노끈 삼아 자신의 인간성을 붙들어보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손으로 그 둘을 떠나보내면서 영화 내내 향하던 일정한 방향의 키를 뒤바꾸지는 못한다. 그는 아들 H.W.를 데리고 다니며 자신이 하는 석유 시추사업이 일종의 가족 사업이라고 말한다. 이 작은 아이은 말그대로 선전용 장식품이다. 게다가 엄밀히 그는 정식 아들조차 아니다. 플레인뷰는 자신이 노리는 새로운 지역의 민심을 확보하기위해 아들을 옆에 늘 두고 보이면서, 가족적 유대를 강조한다. 내가 이렇게 가정적인 남자이므로 이 마을을 단순히 석유가 나오는 땅이 아니라 내 가족의 땅처럼 여러분과 교감하며 다루겠다는 의도다. 이 방법은 제법 먹혀든다. 그에게 가족의 가치는, 이렇게 영화 초반부엔 마을 주민들에게 "내가 이만큼 가족적인 사람이다"를 보여줄 사업수완중 하나였으나, 아들이 청력을 잃으며 '가치'가 훼손되자 냉정히 아들을 혼자 기차에 태워 기숙학교로 떠나보낸다. 게다가 친동생이라며 찾아온 남자를 사업 파트너로서 함께하려하기까지 했으나, 그 이유는 가족애로부터 나온 정이라기보단 가족이어야 사기를 덜 당할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런 플레인뷰라는 캐릭터이다. 악인이 갖출만한 이 모든 성격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를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 속의 악당'의 범주에 밀어넣는 것은 성급한 시도일 것이다. 그는 물론 냉혹하고 때론 잔인하지만, 이상하게도 섣불리 악인이라고 규정하기가 쉽지않다. 성공과 물질에 대한 대단한 집념과 욕망이 언제나 반드시 불법이나 범죄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플레인뷰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우리가 그에게 정을 주기란 정말 힘들지만, 흥미로운 점은 섣불리 그가 악당 말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그가 자기 사업의 성공과 부를 위해 행하는 모든 광기어린 행동들은 무서울 정도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딱 집어 크나큰 죄를 저질렀다고 말하긴 힘들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선 무엇이든지 할 기세의 극단적인 남자이지만 그의 얼굴에 문득문득 보이던 악마의 얼굴은, 최후엔 욕망에 삼켜져 인간성을 소진해버린, 처절하고 비참하고 어딘가 병든 남자의 모습으로 변해있다. 과연 이 남자를 선과 악으로 손쉽게 재단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영화의 매력이 이런 플레인뷰라는 남자의 변화하는 개인사에 모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한명에 불과한 인간의 역사를 장대하게 그린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그래서 여전히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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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영화광 2015/12/23 14:06 # 삭제 답글

    날카로운 감상평 잘 봤습니다.. 생각보다 방문하시는 분들이 적은것같아 놀랐습니다.. 글솜씨가 부럽네요 ^^
  • 레비 2015/12/24 18:42 #

    과찬 감사합니다 :) 요즘 이글루스를 생각해보면 그래도 예전보단 많은것 같아요 ㅎㅎ
  • 다데루 2016/05/26 08:32 # 삭제 답글

    글정말잘쓰세요... 잘보고가요~~~
  • 레비 2016/06/16 22:46 #

    칭찬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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