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트 바이어런트, A Most Violent Year, 2014 Flims





신념을 가진 사람이 그 신념을 지키는 것에 개인의 의지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들 한다. 사실이 그렇다. 자기 신념이 장애에 부딪힐때 그것을 극복하거나 견뎌낼 수 있는 힘은 그 누구도 아닌 본인에게로부터 나올 것이다. 개인 내면의 신념을 다루는 많은 영화들이 초점을 주변보다 개인에 더 초점을 맞추는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매번 늘 그토록 쉽게 신념을 지키게 놓아주는건 아니다. 개인의 힘을 초라하게 보일 정도로, 종종 세상은, 환경은, 운명은, 상황은, 여러가지로 불릴만한 그 원인은 매우 자주 내면이 아닌 외부로부터 닥쳐오곤 한다.

J.C 챈더 감독의 세번째 영화인 <모스트 바이어런트>를 보기 한참 전에, 나는 그의 데뷔작인 <마진 콜 : 조작된 진실>을 본적이 있다. 놀라울 정도로 화려한 배우들을 한데 모았으나 과도한 야심없이 풀어나간 이 100분여의 짧은 드라마는 실제했던 월가의 2008년 금융위기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붙여 단 하룻밤 사이에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극이었다. 피라미드처럼 뚜렷한 상하로 위치해있는 캐릭터들이 각자의 생태계에서 보이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던 이 영화는, 비록 주제의식의 부족 등으로 완성도가 높은 영화가 되진 못했으나 내가 인상적이었던 점은, 극의 가장 큰 갈등이 실체하지 않는 위험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속도감있게 표현하는 감독의 연출 방식이었다. 내가 종종 반복해서 보길 즐기는 영화중 하나인 <마진 콜>을 보고있으면, 뚜렷한 강약의 조절보다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서사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모스트 바이어런트> 역시 그렇다. 이 영화에서 개인의 신념을 위협하는 존재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은근하게 다가와서 어느새 목을 조르고 있다. 그 천천히 다가오는 변화에 위협받는 한 남자의 가치관과 신념의 흔들림의 훌륭한 완급조절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속도감보다는 긴장감을, 뜨거운 흥분보다는 차가운 균열을 목도하는 영화다.

주인공 아벨(오스카 아이작)은 '위험한 시대'의 뉴욕에서 이제 막 석유사업에 뛰어들려는 젊은 사업가이다. 그가 뛰어들려는 시장은 진입장벽이 높다. 그래서 그가 사업 기반을 다지고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선 당장 가장 필요한 땅을 살 수 있을 큰 돈이 필요하다. 계약을 끝낸 그는 기한날짜까지 돈을 마련하고자한다. 영화는 그가 계약을 체결하면서, 그러니까 이제 돈을 마련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그의 직원들은 경쟁사로부터 도로위에서, 영업을 위해 방문한 가정에서 무차별적 공격을 받고 목숨을 위협받는다. 기름탱크트럭은 도난되기 일쑤고, 아벨의 회사는 크고 작은 손실들이 발생한다. 당장 돈을 긁어모아야하는 그에게 오히려 불필요한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 위협은 아벨 본인의 가정에게도 미친다. 어린 딸과 살고있는 집에 누군가가 침입하고, 장전된 총을 문앞에 두기도 한다. 은근한 위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방검사는 아벨을 물고 늘어진다. 그에게 혐의를 씌우고 싶어하며 그를 잠정적 범죄자 취급을 하며 그의 회사를 밖에서부터 공격해들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벨은 옳은 길을 걷고자한다. 그는 어떠한 검은 돈도 쓰지 않고, 경쟁사처럼 부당한 방법을 쓰려하지도 않는다. 외부로부터 닥쳐오는 위협에 직원들을 불법적으로 무장시키려하지 않다가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그는 불법이 만연한 이 세상(이 영화의 원제는 'Most Violent Year' 이다)속에서 끝까지 합법으로 맞서보려고 한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그의 신념은 오직 '바른 길'로 원하는 목적(계약을 성사시킬 돈)을 달성하는 것이다. 목적은 정해져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이 적법하느냐의 문제다. 그런데 상황이 그의 신념과 끝없이 충돌한다. 과연 이럴때 개인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환경과 타협을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말로 변명이 충분할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고집을 지켜야할까. 신념을 지키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목적을 달성하려면 신념을 버려야한다. 영화는 아벨을 끝없이 시험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조연일수 밖에 없는 아벨의 아내인 안나(제시카 차스테인)는 그래서 여느 갱스터 느와르에서 등장한 주인공의 안방 마님처럼 무력하지 않다. 급기야 그녀는 늘 바른 길만을 고집하는 남편을 답답해한다. 그녀는 차에 치여 죽어가는 사슴을 삽으로 내리쳐 보내주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아벨의 등 뒤에서 일말의 경고도 없이 핸드백에서 권총을 꺼내 쏴버리는 여자다. 영화에서 여러번 대사로만 언급되는 그녀의 성장배경은, 아마도 지금의 남편보다 훨씬 강하고 영향력있는 집안과 남자의 딸이었을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사위인 남편에게 어떤 물질적 권리등이 옮겨가는 것을 그저 아내로서만 지켜봐야했던 그녀는, 이 영화속에서 자주, 아벨에게 불만을 표하기도하고 그를 가장 전폭적으로 지지하기도 한다. 여기서 안나는 굉장히 흥미로운 위치를 차지하는데, 이 영화 <모스트 바이어런트>에서 안나는 아벨의 조력자이기도하지만 동시에 위협이기도하다. 그녀는 실제로 그의 사업을 도우며,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남편과 함께 싸워주는 역할도 하지만, 그가 고집하는 '옳은 길'을 함께 걸어주려는 아내는 아니다. 그녀는 마피아 집안 출신답게 강경책을 권한다. 그리고 급기야 최후에는 아벨의 신념을 위협할 가장 유혹적인 카드를 꺼내는 것도 그녀다.

나는 이 영화 <모스트 바이어런트>를 보면서 굉장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서글프기도 했다. 단순한 갱스터 느와르가 아닌 이 영화는, 개인 내면 심리의 변화를 따라가는데 그 변화의 속도를 쉽게 눈치채기가 어렵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면 그 변화의 방향만큼은 나도 모르게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느껴지는 순간이 바로 내가 서글퍼지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어떤 굴복이나 무기력이기도 했다. 비슷한 장면을 감독의 전작 <마진 콜>에서 본적이 있다. 캐릭터간 상하관계가 극명한 영화 <마진 콜>에서 거의 정중간에 위치해있는 샘(케빈 스페이시)이 회사에 닥친 위기를 부도덕적인 방법으로 돌파하려는 위로부터의 지시를 자신의 주관에 맞서 거부하려했지만 결국엔 어쩔수없이 수행하고만다. 자신의 신념에게 부끄러워진 그는 회사를 떠나려하지만 그마저도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진 콜>의 마지막 장면은 샘의 가장 무력하고 슬픈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모스트 바이어런트>에서의 아벨도 그와 같다. 그는 옳은 길을 고집하고, 그러고 싶었지만 주변 환경이 그를 그렇게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개인의 의지가 부족했다고 질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럴수 있겠지만 만약 그가 굽히지 않았다면 그는 땅을 사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과정'을 위해 '목적'을 포기하는 것은 과정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는가. '목적'을 위해 '과정'을 바꾼 그는 그렇게 어느새 바뀌어 있다. 그것을 본인도 아주 조금씩, 몸에 퍼져나가는 독기처럼 체감하는 순간순간이 이 영화의 백미다.

그리고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 자신의 눈 앞에서 자살한, 가족같이 대했던 직원의 총알이 머리를 뚫고 뒤의 자신이 방금 사들인 거대한 기름 탱크와 부딪혀 구멍을 내자. 아벨은 천천히 시체의 옆을 지나가 줄줄 새고있는 기름 구멍부터 막는다. 이 놀라운 변화는 어느샌가 그에게 도착해있었다. 그가 마지막에 지방 검사에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평은, 그래서 더 공허하고 안타깝게 들린다. 결과엔 의심을 품어본적이 없었다. 어떤 길을 택하느냐가 중요했으며, 그중엔 언제나 옳은 길이 하나 있었고 자신은 그것을 선택하며 살아왔다며 말한다. 그는 여전히, 지금도 옳은 사람일까. 그것은 '앞으로는' 다시 옳은 길만을 택하리라는 다짐이기보단, 이게 '그나마' 가장 옳은 길이었다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다독이려는 서글픈 자기 위안이 아닐까.















덧글

  • 2015/10/14 23:3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10/15 15:5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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