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인 러브, Shakespeare in Love, 1998 Flims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영화 제작자들에게 가장 많은 시나리오를 제공한 작가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고 한다. 물론, 어느 범주까지를 셰익스피어의 영화라고 두어야 할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두 편의 <로미오와 줄리엣> - 올리비아 핫세와 디카프리오의- 외에도, 그의 극을 그대로 가져와 재구성한 영화들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 나오는 모티브나 은유 등을 현대적으로 각색하거나 변주한 영화들까지 합치면 기네스북에 올라있다는 말이 낭설은 아닐듯 싶다. 굳이 예를 들자면, 히스레져와 조셉 고든 레빗의 풋풋해던 시절을 볼 수 있는 하이틴 무비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변주고, 디즈니의 저 유명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도, '삼촌에게 정당한 왕위를 빼앗긴 조카가 방황하다 '아버지의 영혼을 만나고' 되돌아오는' <햄릿>의 완벽한 오마주였다는 식으로 말이다. 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던 그였지만, 이제 그는 적어도 영화계에선 헐리우드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공유하는 대부가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그 명성만큼이나, 사생활의 많은 부분이 베일에 쌓여있어 후대에 더욱 신비감을 주는 부분이 없지않다고 생각한다. 궁핍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나 문학을 배우다가, 가세가 기울어 그만두고, 18세에 연상의 여인과 결혼했다가 어느날 갑자기 영국 연극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서른 일곱편의 작품을 공연하고, 극장 경영으로 부를 축적한 뒤 은퇴 후 편안한 노년을 보내다 세상을 떳다고 알려져있다. 수많은 역사학자들과 약간의 음모론자들은 이런 그의 극적요소가 부족한 인생사에 무성한 이야기들을 덧붙이고 상상을 하곤 했다. 게다가 셰익스피어가 아내에게 남긴 유언은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어버렸는데, 바로 ‘두번째로 좋은 침대’를 그녀에게 유산으로 남긴 것이다. 침대의 진짜 의미부터, 후대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해석들을 내놓았지만 어쨌든 이 수수깨끼같은 유언은 바로 ‘첫번째로 좋은 침대’는 그럼 누구의 것인가하는 의미심장한 의문을 낳게했다. 셰익스피어에게 아내가 아닌 다른 진정한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던게 아니었는가 하는 추측은 그래서 꽤 오래된 미신같은 이야기다. 존 매든 감독의 1998년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그런 히스토리컬 픽션에 기반하는 영화다. 바로 그에게 진짜 부인 대신 진정 사랑했던 여인이, 그것도 줄리엣을 비롯한 그의 작품세계에 영감을 준 한명의 뮤즈가 있었지 않았을까하는 가정에서 말이다.


성조기와 미군과 전우애가 묻어나오는 영화에게, 미국 아카데미 위원회가 작품상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배우 톰 행크스 콤비가 만든 영화라면 더더욱.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99년 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바로 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누르고 작품상을 가져간다. 사실 그 해 또 다른 후보로는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와 멜렉의 <씬 레드라인>까지 있었음에도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작품상 뿐만이 아니라 총 7개 부문에서 상을 쓸어 담았다. 게다가 골든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에서도 각각 4개 부문에서 수상을 하며 '그해 최고의 영화'로 기록된다. 영화 제목을 <셰익스피어 인 헐리우드>라고 패러디해 부르는 사람까지 있었을 정도. 


조셉 파인즈가 연기한 셰익스피어는 런던의 두 라이벌 극장 사이에서 극을 써 하루하루 계약금을 받아먹고 사는 가난한 극작가이다. 그러나 또 다른 극작가인 크리스토퍼 말로가 대조적으로 잘 나가면서 자신이 겪고있는 창작의 고통에 힘겨워한다. 게다가 마른 체형의 배우인 조셉 파인즈가 연기하는 셰익스피어는 외형적으로부터 이미 그다지 남자다운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극장주들의 독촉에 이리저리 핑계대기에 일쑤고, 경쟁자인 말로 앞에서는 허세를 부려보기도하는 평범 이하의 남자다. 그러다 연회장에서 바이올라라는 이름의 그녀를 만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주인공 바이올라를 연기한 기네스 펠트로는 90년대 말인 그 당시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배우다. 지금이라고 해서 그녀가 퇴색한건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기네스 펠트로의 필모그래피엔 유독 그 무렵에 좋은 영화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의 바이올라는 그런 기네스 펠트로에게 (무려) 메릴 스트립과 케이트 블란쳇을 제치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다.


바이올렛은 앞서 소개한 셰익스피어의 모습과 정 반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귀족가문의 딸이지만 시와 꿈과 낭만이 있는 삶을 꿈꾸는 여자다. 그래서 모험심 있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에, 그녀는 자신의 우상이기도한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극에 오디션을 보러가기 위해 남자 차림도 서슴지 않는다. 당시엔 여자가 무대에 오르는게 금지되어있었고, 그래서 연극 배역중 여자 역은 주로 변성기가 오지 않은 어린 소년 배우들이 여장을 하고 했었고 이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들에서도 그런 장면들은 자주 보인다. '토마스'라는 이름의 남자로 변장한 그녀는 바람대로 셰익스피어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고, 먼발치에서 바이올라에게 반해버린 그의 본심을 듣기까지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 속 셰익스피어는 ‘남자다움’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는 것.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그 발코니 장면을 재현하지만 이마저도 어설프다. 제대로 고백을 하지도 못하고, 바이올라와 결혼하기로 되어있는 사나운 웨섹스 경(콜린 퍼스)에게 협박을 당하기도하고, 글은 글대로 안 써지고. 하지만 그와 정 반대로 바이올라는 여전히 아주 진취적이고 행동력 있는 여자다. 영화 속 셰익스피어는 결국 이런 바이올라를 만나 자신의 잃어버린 남성성을 찾아간다. 여기엔 결정적인 장면이 있는데, 바이올라의 침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셰익스피어가 웨섹스 경에게 들킬뻔하자 그는 여장을 하고 능청스럽게 탈출한다. 하지만 반대로 바이올라는 셰익스피어와 그의 극단에서 연극 연습을 할 때 주변 남자들을 속이기위해 남장을 했었다. 따라서 이 영화를 단순한 멜로영화로 만들지 않은 것은 이 두 명의 뒤바뀐 성역할에 있다.


무미건조한 삶에서 사랑을 얻은 셰익스피어는 다시 글을 쓰는 능력을 되찾고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을 쓰기 시작한다. 게다가 그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웨섹스 경과 칼싸움까지 벌이는 남자다운 남자로 서서히 바뀌어간다. 사랑의 힘으로 그는 창작에 필요한 영감들, 그리고 남성성까지 되찾았던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이렇게 어설픈 남자였다가 바뀌어가는 과정이, 바이올라라는 여자와의 사랑과 겹쳐져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사실 개인적으론 셰익스피어보다 바이올라가 더 매력적으로 비춰지는 영화이기도하다. 주디 덴치의 엘리자베스 여왕 역도 이런 남녀가 바뀌어있는 영화속 성역할에 한몫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이야말로 당시의 ‘남자의 직업’을 여자가 수행하는 경우의 대표적인 예였을 것이다. 하지만 신분의 벽은 둘 사이가 마냥 해피엔딩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을 예고하고, 결국 희극으로 계획되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으로 바뀌어 끝난다. 그 대신 셰익스피어는 다음 작품 <십이야>의 주인공 이름을 바이올라로 정하면서 서로에 대한 마지막 마음을 간직하게 되고, 실제 <십이야>의 여주인공 이름이 바이올라이며 영화는 그렇게 마지막 장치까지 우리를 위한 배려로 남겨둔채 끝난다.


영화에서 셰익스피어를 맡았던 조셉 파인즈는 사실 나에겐 조연 배우의 이미지가 강하다. 되려 놀라게 되는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쟁쟁한 조연들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역의 주디 덴치는 이미 이 영화 이전 90년대부터, 최근 007 스카이폴까지 총 일곱번의 007시리즈에서 한번도 빠지지않고 줄곧 M으로 출연했었다. 사실 주디덴치는 이런 여왕, 귀부인 같은 역으로 다른 영화들에서 자주 출연해왔었고, 그렇다보니 안방마님 스타일에 참 어울리는 배우다. 007에서의 M이 그러하듯이. 바이올라를 아내로 차지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에게 칼을 겨누는 난폭한 인물로 등장하는 웨섹스 경은 콜린 퍼스가 연기했다. 원래 콜린 퍼스는 좀 신경질적이고 무뚝뚝한 역할이 어울리는 만큼 이 영화에서도 어색함 없이 등장한다. 반면 셰익스피어의 극을 지원하고 자신의 극장에서 극을 올리는 다소 코믹한 극장주 핸슬로 역으로는 제프리 러쉬가 등장하는데, 웨섹스 백작 역의 콜린 퍼스와 핸슬로 역의 제프리 러쉬 이 두 배우는 이 영화 이후 13년 뒤에 <킹스 스피치>에서 다시 만나 함께 또 다시 아카데미 작품상을 가져오기도 한다. 제프리 러쉬에게 돈을 독촉하는 후원자이자 역시 코믹한 캐릭터로 연기한 페니쉬 역의 톰 윌킨슨 역시 <이터널 선샤인>, <마이클 클레이튼> 등의 명품 조연배우. 게다가 셰익스피어가 극을 올리는 극단의 에이스 배우인 네드 역할로 벤 애플릭까지 얼굴을 비춘다. 실로 화려한 조연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영화다.


사실 뒤바뀐 성역할에 대한 코드는 이 영화뿐만 아니라 이미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코드였지만, 이 영화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사점은 바로 당시 영국의 극장계의 현실이 지금의 헐리우드 영화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라이벌 극장들 간에 알력다툼, 거대 자본의 필요와 압박, 국가의 보이지 않는 검열와 통제, 이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도 대중의 인기에 사활을 걸어야하는 점이 말이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당시 셰익스피어가 실존했던 영국의 극장계와 지금의 헐리우드 영화계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지적을 영화가 담고있기도하다. 그래서 이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그런 숨 막히는 상황에서도 피어나는 진실된 사랑, 그것도 신분이라는 벽을 넘어서 사랑을 이룬 극작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뿐만 아니라, 바로 진짜 현실의 영화계에게도 어떤 판타지를 선사해주었다는 평을 받기도했다. 옛 상황을 빌려와 현대의 자본주의 시장속 영화계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평가.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셰익스피어가 더 이상 영국만의 것은 아니라는, 그리고 그의 베일에 쌓인 삶을 파고 들어가, 재미와 평단 양면 모두에서 성공적인 영화로 남았다.







덧글

  • 명탐정 호성 2015/07/31 17:04 # 답글

    루카스 인 러브라는 영화도 있죠
  • 레비 2015/08/04 05:19 #

    아 돌아다니던 영상을 본적있는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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