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맨, Birdman, 2014 Flims






찰리 채플린의 말 - 인생을 가까이에서보면 비극, 멀리서보면 희극이라는 말을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이 영화 <버드맨>을 연출하면서 과연 한번은 떠올렸을것인지 궁금해졌다.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주인공 리건은 한때 '버드맨'이라는 히어로영화의 주인공으로 인기있는 무비 스타였지만 지금은 나이와 한물간 인기에, 헐리우드가 아닌 뉴욕 브로드웨이로 건너와 '연극판'에서 재기를 노리는 퇴물 스타다. 그가 연출하고 주연할 연극의 리허설, 프리뷰 공연, 그리고 초연의 날까지의 며칠을 영화는 뉴욕의 한 유명 극장을 거점으로, 주인공 리건을 비롯하여 이 하나의 연극에 얽힌 다양한 군상들의 뒤를 밟는다. 그들의 며칠안에 벌어지는 해프닝들과 불의의 사고들, 우연들과 행운들은 모두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 당장 연극의 흥행에 인생의 반전을 걸어놓은 리건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이 그 며칠안에 크고 작은 변화를 겪는다.


내가 경험한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는 <버드맨> 이전에 총 4편으로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 <바벨>, 그리고 <비우티풀>이었다. 이 중 <바벨>은 (평단이나 관객들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내가 인생의 단 열 편의 영화를 꼽는데 매번 망설임없이 포함시킬 수 있을만한 '숨겨진 걸작'이었다. 스페인의 마초 하비에르 바르뎀을 기용해 그가 내뿜는 연기에 극을 맡기고 풀어나간 <비우티풀> 역시 대단한 영화였기에, 나는 이냐리투의 수년만의 신작인 <버드맨>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냐리투는 그의 히트작인 <21그램>에서부터 많은 수의 등장인물들을 출연시키고 그들의 옴니버스같은 이야기들을 중첩시키되, 시퀀스와 시퀀스, 컷과 컷 사이에 그 얼개를 촘촘하고 정교하게 배치시켜 전개시켜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듯했다. <21그램>에서의 그 '기술'은 <바벨>에 이르러 '장인'수준이 되었다. (이 영화는 배치된 시퀀스의 개수마저 정확한 방향성과 순서를 갖는다.) 그랬던 이냐리투가 이 모든 '나눔'을 통폐합하여 '원테이크'로 찍으니 이는 이냐리투 개인적으로도 도전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물론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교집합과 여집합속에 배치하고 연결하는 기술은 여전했다. <버드맨>의 서사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이 이야기가 리건 혼자만의 일인극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iMDB에 따르면 이 영화는 불과 단 16컷으로만 이루어져있으며, 그 중 한개의 컷은 수십분을 훌쩍넘는,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환상적인 롱테이크를 구성하고 있다. 미국 아카데미로부터 촬영상을 가져온 이 롱테이크는 이냐리투 감독과 같은 멕시코 출신의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작품이다. 이미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로 촬영상을 받아본적 있는 루베즈키는 쿠아론과 <칠드런 오브 맨>, <위대한 유산>등을 함께 한 전적이 있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의 롱테이크 씬을 기억한다면 <버드맨>의 롱테이크를 구상하면서 그를 촬영감독으로 기용한 이냐리투의 선택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버드맨> 기획 이전 단계에서부터 이미 '하나의 원 테이크로 이루어진 영화'를 목표로 떠올렸다고 한다.) 테렌스 멜렉의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 본듯한 해파리 등을 비롯한 삽입된 대자연의 컷들 역시, 당시 그 영화의 촬영을 담당했었던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종종 어떤 배우의 한 영화속에서의 모습이 그의 실제 삶, 혹은 그가 출연했던 다른 영화들에서의 다른 배역들과 앙상블을 이루는 것을 느끼는 기묘한 체험을는 하게된다. 그리고 실제로 한 배우가 수편의 영화들 속에서 배역으로서 일관되게 갖는 이미지는 그 배우의 실제 삶과 상호 작용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조지 클루니가 그토록 자주, 멋진 독신주의자, 혹은 적어도 여자 앞에서의 늘 미련없고 쿨한 남성의 이미지로 자주 비춰지는 것도 좋은 예가 될것이다. 가장 단적인 사례는 극적인 죽음으로서 더욱 신화적이된 <다크나이트>의 히스레져가 그렇다. 그가 인생의 마지막에 맡았던 조커라는 배역이, 그가 평생 해보지 않았던 악역이었던데다가, 그런 연기 이후의 급작스러운 배우의 죽음이 그 영화속 배역에 조차 후광을 입히는 것이다. <버드맨>의 마이클 키튼은 그 반대의 사례로서 적합할 것이다. 마이클 키튼은 80-90년대, 크리스찬 베일 이전의 '배트맨'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때 인기있는 히어로물의 주인공이였음에도, 배트맨이었던 그의 모습 이후 오랜시간동안 다시금 주목을 받지 못했던것이 사실이다. (사실 <버드맨>이전의 마이클 키튼은 거의 잊혀져가는 중이었다.) '버드맨' 이후 퇴물배우가 되어가던 극중 리건의 이야기는 그래서 실제 마이클 키튼의 이야기와 다름아니다. 92년 <배트맨 리턴즈>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배트맨 영화를 찍지 않은 마이클 키튼과, 극중에서 '92년 이후로 버드맨 시리즈를 찍지 않았다'는 리건의 설정은 절대로 우연일 수 없다. 그래서 사실 이 영화를 말하는데있어서 감독이나 카메라 감독보다 더욱 중요한 사람은 주연배우 마이클 키튼일 것이다.


이 영화가 세간의 히어로물에 대한 비꼼이나 풍자로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은 다분하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을 비롯하여, 제레미 레너(어벤져스), 우디 해럴슨(헝거 게임), 마이클 패스벤더(엑스맨)의 실명을 거론하면서까지 '왕년의' 히어로가 '신세대' 히어로물 배우들에게 질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히어로물이라는 특정 장르는 한 배우가 한때 '영웅의 역할'을 맡던 순간 영화 속에서 히어로가 되어보았던 모습과, 영화밖 현실의 효과적인 대조를 위해 가져온 소재 장르로서 활용되었을 뿐, 히어로물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영화와 연극 사이, 그리고 평단의 인정과 대중의 인기 사이에서에서의 예술에 대한 담론으로도 나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물론 굳이 찾아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것이다. 영화에는 유튜브와 트위터, 그리고 벌거벗은(혹은 벗긴채)대중 앞으로 떠밀려나간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가.) 영화 <버드맨>은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라는 비장한(?) 부제를 안고있다. 예기치않은 무지에의 미덕 정도로 번역이 되는것 같은데, 처음 언급한 찰리 채플린의 말을 상기시켜본다면 인생에서 예기치못한 불운만큼이나 찾아올 수 있는 의도되지 않았던 행운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영화속 리건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주위의 배우들, 가족들, 사람들이 아닌 '한때 잘나갔었지'라며 현재의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고 그 시절에 기대어 추억하기만하는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이다. 영화에서 적잖은 시간동안 리건은 주위의 사람들로부터보다 자신의 이 내면과의 대화에서 가장 큰 충돌을 빚으며, 결국 자신이 이루고자했던 연극을 '예기치않은 무지'와 더불어 끝마쳤을때 그 무지가 가져온 미덕과 함께 자신의 '잘나가던 히어로'를 그저 화장실 변기에 초라하게 앉은 모습으로 흘려보낸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가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수많은 웃픈(!) 일들, 가까이에선 얼마든지 비극일수도, 그리고 한숨 돌리고 바라보면 얼마든지 희극이자 기쁨일 수 있는 일들을 담아낸것이 아닐까. 내가 알고있는 이냐리투 감독이라면 <버드맨>을 통해 왠지 그랬을 것만 같다.

+

극초반부에 등장하는 엠마스톤의 김치 발언 한마디 때문에 일부들로부터 이 영화가 한국 비하 영화라는 소리를 듣고있는 모양인데, 일단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절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리 없으므로 영화를 아예 안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싶은게 있다면 - 'kimchi' 정도되면 이미 지금 시대에 그건 우리 한국의 심볼이거나 상징으로 사용할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김치라는 음식이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김치라는 명사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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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각본의 가치는, 주인공들이 극복하고 이겨내야 하는 대상이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내부적 자성과 성찰에도 있었다는 점이었다. 2014년 역시 작품상을 받았던 이냐리투 감독의 &lt;버드맨&gt;의 주인공으로, 인생의 그야말로 2막을 시작한듯한 배우 마이클 키튼은, 두 해 연속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은 두 영화에서 모두 주연을 맡는 행운을 누렸다. 마이클 키튼이 ... more

덧글

  • 레몬트리 2015/03/16 23:20 # 답글

    아카데미가 이 영화를 왜 선택했는지 이해도 되고 인상적이었지만 제 취향은 아닌 영화더라구요ㅎㅎ 좁은 복도가 너무 답답하고 어지러워서 멀미가 날 거 같았어요ㅠㅠ 원테이크로 보이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는 아주 효과적이었던 셈이죠ㅋㅋ 그리고 김치 얘긴 비하인지 아닌지 논하기보단, 사실 전 어떻게 꽃 향기를 맡고 김치를 연상할 수 있는지 의아하더라구요ㅎㅎ 얼마나 꽃 향기가 지독하면? 이상하면??ㅎㅎㅎㅎ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비하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싶긴 하더라구요ㅎㅎ 영화에서 전혀 중요한 게 아닌데 괜히 논란이 된 건 좀 아쉬운 부분이에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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