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요한슨 크로니클 : <그녀>, <언더 더 스킨>, <루시> Flims






94년 데뷔한 스칼렛 요한슨은 꽤 오랜시간동안, 마를린 먼로 이래 줄곧 미국이 기대하고있는 '금발 미녀 배우'에 대한 어떤 견고한 이미지의 모범적인 계승자처럼 보였다. 전대의 배우에서 그 다음의 더 어리고 젊은 배우로 승계되어 온 이 소비성 이미지는, 대중이 기대하는 틀안에 해당하는 배우를 밀어넣으며 그 배우가 가지고 있는 다른 가능성들을 제한시켰다. 스칼렛 요한슨은 금발 머리 뿐만 아니라, 그녀가 동년배의 다른 백인 여배우들에 비해 고전적인 미인형의 얼굴을 가지고있었던 점도 그런 편견에 한몫했다. 그러나 몇몇 인상적인 연기와 호평을 누린 스칼렛 요한슨은 이제 자신을 가둘뻔한 이미지들 속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났다. <호스 위스퍼러>,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그리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등의 영화들과 저예산 인디영화들은 그녀를 단순히 외모만 예쁜 배우에서 머무르지 못하게 해주었다. (물론 그녀와 비슷한 조건에 묻혀 이미지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 배우들도 많이 있다. 이를테면 제시카 알바가 그렇다.) <천일의 스캔들>에서 오히려 손쉬웠을지 모를 팜므파탈 역을 나탈리 포트먼에게 내주고 자신은 더 깊은 내면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한 것도 이미지 변신의 단적인 예다. 물론 여전히 그녀에게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이라는 수식어를 완전히 떼어내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녀는 그런 세간의 시선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만의 필모를 채워나가고있다. 그중에는 우디 앨런, 크리스토퍼 놀란과 같은 감독들의 이름도 있고, 블랙 위도우라는 총을 든 여전사의 모습도 있었다.


지난 2014년 한해동안, 국내 개봉한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영화는 무려 다섯편이나 되었다. 물론 그 영화들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거나, 해외 개봉시기가 이처럼 한해에 몰려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어떤 영화는 북미개봉과 거의 비슷하게, 또 어떤 영화들은 영화제들을 거쳐서 거의 일년씩 늦게 국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우리는 거의 두달에 한편씩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하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 순서대로 <돈 존>,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 <그녀>, <언더 더 스킨>, <루시>였다. 따라서 2014년은 어느때보다, 그런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 스팩트럼이 넓고 깊어짐을 체감할 수 있었던 해였다. 나는 그 중에서도, 세 편의 영화, <그녀>, <언더 더 스킨>, <루시>에서의 그녀가 흥미로웠다.


세 편의 영화는 모두 합의라도 한듯, 상이한 외면과 내면을 동시에 가진 캐릭터를 스칼렛 요한슨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이런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 덕분에, 각각 다른 세 가지의 캐릭터를 그녀는 한 몸으로 연기하면서 그녀의 연기의 원천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증명해보였다. <그녀>에서의 스칼렛 요한슨의 모습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공지능OS '사만다'로서, 육체 없이 오직 목소리로만 영화에 나타나는데, 이것은 시대의 섹시아이콘을 육체없이 목소리만 캐스팅한 스파이크 리 감독의 기발한 묘수였다. 외모에서 장점을 갖고있는 배우가 목소리로만 연기한다는 것은 꽤 위험부담이 있는 일이었음에도, 스칼렛 요한슨 특유의 단단한 저음의 목소리는 오히려 필요한 순간순간마다 고혹적이거나 관능적, 그리고 호기심 넘치는 쾌활한 목소리로 분했다. <그녀>에서의 스칼렛 요한슨이 육체 없는 자의식, 그리하여 육체를 욕망하는 자의식이 되어보았다면, 보다 규모가 작은 실험영화 <언더 더 스킨>에서의 그녀는 <그녀>때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그녀는 미인 여성의 육체라는 껍질을 그저 뒤집어쓴채 영혼없는 기계처럼 인간 남성을 사냥하는 외계인의 역할을 맡았다. (원작 소설에서 그녀의 설정은 외계인이지만 영화에선 분명히 제시되지 않는다. 아무렴 상관없다.) <그녀>에서의 사만다의 자의식이 자신에게 결핍된 육체를 원하면서 이야기가 고조된다면, <언더 더 스킨>에서는 반대로, 육체만 있던 그녀가 '감정'을 가지면서 찾아오는 혼란이 극을 고조시킨다.


<그녀>와 <언더 더 스킨>을 비교하는 것은 그래서 재미있다. 전자에서, 인간이 될 수 없는 OS가 사랑을 매개로 인간에 한층 더 가까워지기 위해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 바로 육체이다. 주인공 테오도어와의 사랑의 감정도 그렇지만, 자의식만 있는 존재가 스스로를 'The One'으로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해, 동시간대에 단 한 명과의 특별한 관계를 원하기에 바라는 것이 육체라는 점은, 우리의 몸이 단순히 뇌를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운송수단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육체가 없이 네트워크의 상에서 존재하는 사만다의 '멀티 테스킹'은 결국 특별한 단 한명이라는 의미부여가 어렵게 만든다. <언더 더 스킨>이 육식에 대한 영화라고 말하는 평자도 있지만, 이 영화를 <그녀>와 이어 본다면 (평면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를 다시금 보여준다. 그녀는 인간 남자를 사냥하여 잠식시키고 집어 삼켜왔지만, 그녀가 손쉽게 삼켜버리지 못하는 남자는 그녀의 육체보다는 정신적 교감을 원했던 한 명의 남자였다. 영혼없는 육체간의 합을 먹고 먹히는 동물적인 관계에 머물게 했다면, 그보다 고차원적인 감정과 감정의 주고받음은 그런 동물적인 본능을 억제시킨다. <언더 더 스킨>에서의 스칼렛 요한슨은 껍질뿐인 'skin'을 그제서야 인식한다.


뤽베송 감독의 <루시>는 마치 <그녀>와 <언더 더 스킨>에서의 스칼렛 요한슨의 모습을 미리 보고 그녀를 캐스팅하기라도 한듯, 그녀는 육체와 자의식을 모두 갖고있지만 우연한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이 두가지를 (과도하게) 업그레이드한다. 물론 <루시>는 앞선 두 영화들과 노선이 조금 다른다. 뤽베송 감독의 야심이 조금 지나치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 <루시>에서, 오직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루시'라는 캐릭터만을 본다면 그녀는 짧은 시간안에 자의식과 육체적 능력의 큰 변화를 감지하고 제어하며, 그 변화를 무기삼아 인간의 한계를 넘어 공간이 아닌 시간이라는 차원을 인지한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리 길지 않은 영화인 <루시>에서의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방식의 변화다. 모든 사건이 시작되기전의 평범하던 인간에서의 그녀의 표정은 오히려 무지와 두려움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뇌를 사용하는 %가 증가하면서, 그녀는 '인간적인' 표정을 점차 얼굴에서 지워나간다. 단순히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녀>에서의 사만다가 <언더 더 스킨>의 외계인의 껍질 속으로 들어가듯이, 그녀는 낙차 큰 변화를 이번엔 단 한편의 영화속에서 보여주고 연기한다.


사실 세 편의 영화를 모두 보고도 들지 않던 이런 생각이, 몇주전 오시이 마모루 원작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공각기동대>의 헐리우드 판 실사 영화 주인공으로 스칼렛 요한슨이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나서야 떠올랐다. 인간과 같은 외형의 육체을 가지고, 사유하는 인공적 의식을 가진 공각기동대의 여주인공 마토코의 정체성이라면, 아마도 위에 언급한 세 영화중 아마 <그녀>에서의 스칼렛 요한슨 캐릭터와 가장 가까울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이처럼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미녀 여배우상으로부터 무심하게 탈피한 스칼렛 요한슨이 이제는 점차 고민하고 고뇌하는 자의식에 대한 연기의 독특한 표본으로서 우리에게 기억되고자하는것인지, 그녀의 앞으로의 영화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덧글

  • sf 2015/02/19 20:07 # 삭제 답글

    SF로 치자면 아서 클라크 유년기의 끝 같은 테마에만 집즁적으로 나오고 있죠 재밌는 배우에요
  • 전뇌조 2015/02/19 22:15 # 답글

    공각기동대도 물론 매우 기대됩니다마는, 이렇게 되면 총몽에 캐스팅될 확률이 어떻게 될지...
    개인적으로는 총몽의 갈리에 스칼렛 요한슨이 가장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왔었거든요.
  • 레그나 2015/02/21 00:44 # 답글

    <그녀>를 통해서 스칼렛요한슨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숨소리가 많이 섞인 듯한 탁한 목소리가, 목소리만으르도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더라고요. 어쩌면 이미 머리 속에 스칼렛 요한슨의 이미지가 있었기에, 목소리만으로도 그려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 권레이 2015/02/24 17:45 # 답글

    <그녀>의 스칼렛 요한슨은 <쿵푸팬더>의 잭블랙 같달까요.... ㅋㅋ 목소리만 들어도 눈에 아른거리는 막강 비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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