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드 인디고, Mood Indigo, 2013 Flims






미셸 공드리 감독의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그가 시네아스트라기보단 여전히 비주얼 아티스트에 더 가까이 서있다고 본다. '여전히'라는 단어를 쓴 것은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는 그냥 그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았던것 같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 CF 감독이었던 그의 필모그래피를 열었던 첫 시작인 <휴먼 네이처>와 <이터널 선샤인>의 파장이, 다만 워낙 강렬했기에 우린 그를 꽤 재기넘치고 번뜩이는 감독으로 그대로 기억해버렸다. 그리고 그 관성은 제법 오래가고 있다. 난 앞선 두 작품의 가치는, 미셸 공드리의 공이라기보단 각본가 찰리 카프먼의 공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카프먼의 각본과 공드리의 비주얼적 감각이 반반씩 제몫을 했기 때문에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난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다. 카프먼이 다른 감독에게 각본을 제공하여 만든 영화와 공드리가 카프먼없이 만든 영화를 각각 떠올려보라고. 이를테면 <존 말코비치 되기>와 <수면의 과학>을 비교해보라. 둘 다 시각적인 즐거움이 있고 기막힌 상상력이 재료가 된 영화들이지만, 분명 그 깊이의 차이가 있다. 공드리의 환상적인 영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매 장면마다 미소가 지어지지만, 그래서 장난은 그만치고 언제쯤 진짜 이야기를 들려줄것인지 기다리게 된다. 이건 분명한 미셸 공드리의 한계다.


짧은 시간안에 임팩트있는 영상으로 각인시켜야하는 광고나 뮤직비디오와 같은 작품이라면 공드리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영상들은 분명 아주 강력한 장점일 것이다. CG를 극히 싫어하여 모든 비현실적인 장면들조차 철저히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재료'들을 배치하고 그것을 현실에서 선보인뒤 그것을 찍는 방식을 취하는 그의 촬영 방법은, 그 덕분에 마치 환상의 세계를 현실에 가져온듯한 마법같은 느낌을 준다. 공간과 공간을 왜곡해야하는 장면에서는 그는 카메라의 동선들을 교묘하게 움직이고 설계하면서 촬영 후의 기술적인 편집과정 이전에 이미 실제로 배우가 그것을 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들을 담아낸다. 이런 영상들이 우리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시각적 즐거움과 영화적 체험은 미셸 공드리의 장기이자 우리가 공드리의 영화를 보면서 기대하는 요소다. 하지만 그 외에 공드리의 영화들이 갖는 강점이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로하여금 그의 영화를 만나는 행위를, 그저 영화를 '보는' 것에서 멈춰서게 만든다. 그는 영상을 만드는 테크니션이지,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작가, 스토리텔러로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수면의 과학>, <도쿄!> 3부작 중 그가 만든 첫번째 이야기, 그리고 <그린 호넷>까지. 그의 영화는 잔상은 남지만 감흥은 오래가지 않는다.


<무드 인디고>는 프랑스인인 공드리가, 두 프랑스의 대표적인 배우들인 로망 뒤리스와 오드리 토투를 캐스팅하여 만든 100여분 남짓의 소품같은 영화다. 1920년에 태어나 39세의 나이로 사망한 보리스 비앙의 소설 '세월의 거품'을 원작으로 하고있는데, 그는 그의 다른 작품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역시 영화화 된 전례가 있다. (그는 바로 그 영화의 시사회장에서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작가이기도했으나 영화배우, 감독, 재즈 트럼펫 주자이기도 했던 보리스 비앙의 원작을 바탕으로, 공드리는 네명의 남녀, 두 쌍의 연인을 이야기한다. 영화에는 두 쌍 중 콜랭(로망 뒤리스)와 클로에(오드리 토투)에 더 초점이 맞춰져있으나 그들의 친구이기도한 시크(게드 엘마레)와 알리즈(에이사 마이가) 커플의 이야기도 있다. 사랑에 모든것을 헌신적으로 바치려는 콜랭은 알리즈와 닮아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점차 생기를 잃고 죽음에 다가가는 클로에, 그리고 사랑보다 다른 것에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시크는 이 두 쌍의 사랑을 불행하게 만든다.


영화는 콜랭과 클로에 사이의 '무드'의 변화에 맞추어 흘러간다. 그리고 공드리는 이 이야기의 분위기에 발맞추어 영상과 소품들에 적극적으로 변화를 가하며 단순히 캐릭터간의 대사와 행동들 뿐만 아니라 매 화면마다 캐릭터간의 감정을 뿜어낸다. 이 영화 <무드 인디고>가 갖는 가치를 찾을 수 있는 부분이다. 두 남녀 주인공의 관계가 점차 발전되고 사랑스러울땐, 영화의 색채는 원색적이고 화사한 비비드컬러, 그리고 결혼식을 정점으로 그들이 행복한 생활을 함께할땐 파스텔 톤으로 영화가 꾸려진다. 그러나 클로에가 병들고 콜랭의 삶이 점차 힘들어지면서 영상자체가 색을 잃어가는 모노톤에서, 결국 비극으로 향할때쯤은 완전히 한편의 흑백영화가 되어버린다. 화면을 분할하여 한쪽에만 비가 쏟아지고 다른 한쪽은 맑은 등, 공드리는 보이지 않는 인물들 사이의 공기, 감정을 시각화하는데 성공했다. 그 변화무쌍한 시각화는 명징하지만, 언제부터 바뀌었는지 바로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만큼 은근하게 진행된다.


영화를 보고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이야기가 단순히 사랑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그저 나열하기만 한 단순하다못해 지루한 스토리를 가진 영화였다면, 어쩌면 이 영화의 의도는 이야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단순한 이야기 위에 감독이 덧칠한 테크닉에 있을지 모른다. 공드리는 한편의 밋밋한 이야기 속에서 그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mood'를, 자신이 가장 자신있고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관객들에게 체험시켜주려고했던 것이 아닐런지.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공드리는 사랑이라는 무형의 감정을 가시적으로 시각화하는 한가지 방식을 영화 <무드 인디고>를 통해 제안한 것이 아닐까.















덧글

  • 아느 2015/01/08 12:29 # 답글

    이 영화를 보고 들었던 의문들이 글을 읽고 조금 정리된 느낌이에요. 보면서 왜 이렇게 했을까, 하고 아리송했던 지점들이 있어서요. 이터널 선샤인을 너무 재미있게 봐서 그런 재기를 기대했었던게 저의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요. 무드의 시각화가 목표였다면 꽤 잘 만든 영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 레비 2015/01/19 02:50 #

    감사해요. 제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 저도 이터널 선샤인을 참 좋아해요. 그렇지만 공드리가 공드리만의 뚜렷한 컬러는 있지만 그것이 아주 굉장하지는 않다는걸 매번 절감해서 아쉽기도해요. 마치 처음 보았을땐 굉장하던 것도, 두번 이상보게되면 평범해보이는것처럼요 :)
  • 2015/01/09 23:0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1/19 02:5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흐헣 2016/11/06 03:02 # 삭제 답글

    퍄..이터널선샤인을 처음 보고 공드리의 필모그래피를 쫓아가며 느꼈던 것이 첫문단에 고스란히 적혀있네요~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375

통계 위젯 (화이트)

1734
331
914477

웹폰트 (나눔고딕)

mouse bl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