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Flims





(스포일러 있습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자중 한명인 칼 세이건의 소설을 텍스트삼아 만든 영화, 로버트 저메키스의 1997년 작 <콘택트>는 단순한 SF영화들과는 달리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인류가 지향해야할 표용과 조화를 보여준 영화였다. 훗날 '우주영화'의 클래식이 될거라 믿어의심치 않는 이 영화에서, 조디 포스터가 연기한 주인공 엘리노어 박사와 대칭점에 서있는 캐릭터는 팔머 조스라는 남자다. 우주 너머의 어떤 지성체의 존재를 믿는 엘리노어와는 달리, 팔머는 종교를 갖고 각자 나름의 신을 믿고 사는 지구상 대부분의 인간의 대표자와 다름아니다. 팔머는 엘리노어 박사와 이 영화가 견지하는 자세, 즉 종교와 과학의 균형점을 유지시키는 주효한 역할을 한다. 바로 그 팔머 조스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매튜 맥커너히였다.


<콘택트>로부터 17년이 흘렀다. 매튜 맥커너히는 이제 조디 포스터를 우주로 떠나보내고 지구에서 기다리는 역할이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인터스텔라>에서 그가 연기하는 주인공 쿠퍼는 이제 직접 우주로 날아가, 조디 포스터가 <콘택트>에서 통과했던 시공간의 왜곡, 바로 그 지점을 똑같이 경험한다. 물론 이점까지 염두해둔 캐스팅이었다고는 믿기어렵지만.


아카데미 수상자가 맥커너히를 비롯하여 다섯명이나 포진한 놀란의 새 영화 <인터스텔라>가 개봉 첫 주말을 지난 지금, 이 영화에 대한 수많은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방적인 찬사부터 이유있는 불호까지. 어떤 영화든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은 정말 많겠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 영화의 감독에서부터 시작하고 싶다. <인터스텔라>는 놀란의 아홉번째 장편영화이다. 나는 이전까지의 그의 영화 여덟편중 일곱편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터스텔라>를 보고나서, 자신의 영화를 우주로 확장시키고 싶었던 그의 욕망을 그가 지난 20여년간 어떻게 억제하고 있었을지 존경스러워졌다. 결론처럼 말하자면, <인터스텔라>는 놀란의 필모그래피에서 모두가 공인할만한 최고의 영화도, 앞으로도 최고의 영화로 남아있지도 못할 것이지만, 그의 가장 야심차고 자신있는 영화임에는 거의 분명해보인다. 또한 동시에, 이 영화는 자신보다 앞선 세대의 '우주 영화'들에 대한 놀란의 오마쥬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스필버그의 이름이 필연적으로 끼어들 수 밖에 없다.


당신이 지금 인터넷에 연결되어있다면 스티븐 스필버그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동생) 조나던 놀란의 각본하에 '인터스텔라'라는 제목의 영화를 연출하기로 했다는 오래된 기사를 찾아 볼 수 있을것이다. 말그대로 애초에 이 영화는 스필버그에게 돌아갈 것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를 향한 열망은 제임스 카메룬이 바다를 동경하는 것과 동급의 인력이 아닐까. 구태여 <E.T.>, <미지와의 조우>를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나는 <인터스텔라>에 스필버그가 제작자들 중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하더라도 쉽게 믿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이제는 고인이 된 스탠리 큐브릭의 이름이다. 큐브릭 이후의 모든 우주 영화들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그림자를 떨쳐내기 힘들었을 것이며 놀란도 이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듯 하다. 웜홀을 통과하는 씬은 물론이고, 마치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씬의 '그것'과 닮은 둔탁한 디자인의 로봇들. 블랙홀에 안에서 머피의 방을 들여다보는 쿠퍼의 시각은 스페이스 오디세이 후반부의 방 안을 관찰하는 카메라 숏을 떠올리게 한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 좀 더 영화에 다가가보자. <인터스텔라>는 '스텔라'보다 '인터'에 방점이 찍혀있는 영화다. 그러니까 놀란은 '우주'보단, 관계 사이에서 오가는 상호 미치는 힘. 그중에서도 특히 인력에 관심이 있어보인다. 우리는 그 힘을 보통 '중력'이라고 부른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중력은 이 영화에서도 아주 주효한 요소다. 그리고 떨어진 시공간을 이어주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힘을, 놀란은 물질계의 인력, 즉 중력에 은유하여 말하고 있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모두 다른 곳에 있는 두 사람이 중력을 매개로 서로 interaction한다는 발상이 바로 interstellar의 핵심이다.


<인터스텔라>의 쿠퍼는 <인셉션>의 디카프리오, 코브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아내 없이 홀로 한쌍의 남매를 키우는 아버지. 그리고 그 남매들을 손쉽게 다시 만나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된다는 점이다. 인류를 구하는 히어로,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서 답을 찾으려는 인류는 사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과거의 우주 SF영화들의 클리셰로부터 자유로운 점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있는 '관계'의 상호 주고받음을 우주의 스케일로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물론 대부분의 재난영화에는 가족애가 진부하게 강조되어왔다. 그렇지만 물리적인 거리를 감정적인 거리로 치환하고 이를 보여주기위해 시간과 공간의 간극을 끌어들여 설명한 시도는 분명 이 영화의 큰 가치다. <인터스텔라>의 감정적 동력은 대부분 그 지점에서 나온다. 놀란은 이 스케일의 확장을 위해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도 사용했던 방식, 필요한 씬들에서 사용했던 아이맥스 카메라를 이용했다. (놀란이 자신의 영화에서 아이맥스를 이용한 촬영분량은 매번 증가하고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동생이자, 오랜 파트너쉽을 갖고있는 각본가 조나단 놀란은 이 영화 <인터스텔라>의 각본을 완성시키기 위해 몇년간 영화의 핵심 이론들을 공부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판타지스러운 공상과학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을 놀란은 영화의 군데군데 대사와 캐릭터들의 행동등을 통해서 꼼꼼하게 관객들을 배려하고 있다. 상대성이론의 최소한만을 설명하면서 영화를 이해하는데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라는 장르는 딱 그정도이기만하면 된다. 놀란의 영화를 지적 퍼즐로 만드는 요소는 그가 영화속에 설명과 검증을 곁들여 영화를 보는 이들이 충분히 현실성 있도록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네 편에 걸친 변신로봇 트랜스포머의 원리를 "알고리즘! 수학!" 단 두 단어로 설명해버렸던 마이클 베이를 기억해보라.


<메멘토>부터 <인셉션>까지.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층적인 층위를 겹겹히 쌓고 배열하고 그 속에서 관객들을 이리저리 움직이게 하는 것을 즐겼다. 놀란은 애초에 퍼즐에 능한 감독이다. <인터스텔라>도 그렇지만, 그의 영화들이 상영시간에 비해서 꽤 짧게 느껴지는 이유는, 일단 영화가 시작되고나면 그의 영화는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높은 몰입감이라는 뜻으로 그의 영화를 칭찬해줄 수 있지만 그의 영화는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어있다. 관객들을 쉴틈없이 몰아치는 것. 그러기 위해선 내리막길없는 다층적인 전개가 유리한데 놀란의 영화들은 대부분 그런 구조를 택하고 있다. 하나의 사건이 마무리 되기전에 바로 그 다음 일이 벌어지는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그가 늘 관심있었던 부분은 인간의 다층적 내면 심리였다. <메멘토>와 <인셉션>은 그런 표현에있어서 가장 유리한 각본이었다. 그래서 <인터스텔라>의 제작 소식이 처음 공개되었을때 나는 우주를 배경으로한 놀란의 SF가 잘 상상되질 않았다.


놀란은 지극히 현실적인 감독이다. 놀런의 배트맨이 역대 다른 배트맨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이냐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그것이 배트맨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도시, '고담시'라고 답할 수 있다. 놀런은 의도적으로 배트맨의 배경이 되는 고담시를 세상 어디에도 없을 가상의 무법천지로 애써 강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고담시는 <다크나이트>에선 시카고,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선 더욱 노골적으로 맨해튼이 되었다. 잘 모르겠으면 <인셉션>을 떠올려보라. 꿈을 다루는 영화치고 꿈속의 세상들이 굉장히 디테일하고 현실적으로 묘사되어온 이유도 이와 상통한다. 놀란은 팀 버튼의 세계를 그리지 않는다. 그는 오직 현실에 적용 가능한 말을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나는 <인터스텔라>의 우주가, 외계 행성이 한편으론 걱정되기도 하였다. 놀란이 그리는 우주는 큐브릭이, 스필버그가, 루카스가, 그리고 알폰소 쿠아론이 그리던 우주와는 전혀 다를것이라는. 그리고 역시나, 놀란은 자신만의 <그래비티>를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놀런은 유독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다. <인셉션>이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그 해에도, 감독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아카데미는 전통적으로 SF와 슈퍼히어로물에 냉담하다. 히스레저에게 조연상을 줄 때 조차 그가 감독으로서 개인적인 작품상을 받은 적은 없다. 만약 이번 <인터스텔라> 역시 아카데미가 외면한다면 그는 마치 스콜세지처럼 아카데미와 오랜시간동안 친해지기 힘들것이다. 매튜 맥커너히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전에 이미 캐스팅을 마쳤다고 한다. 작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으로 커리어 절정을 달리고 있는 맥커너히의 연기는 충분하다못해 넘친다. 마이클 케인, 제시카 차스테인, 케이시 애플렉이 이끌어가는 지구에서의 이야기도 긴장감의 측면에서 우주에서의 이야기와 균형을 맞추기 버거운 느낌이지만 배우들 면면의 연기로 그 부족함을 메꾸고 있다. 맷 데이먼의 출연은 의외. 개인적으로는 영화와 전혀 따로노는 느낌이라 아쉬웠다. 앤 해서웨이 역시 내겐 조금 아쉬움이 느껴진 캐스팅.


이 70년생 젊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인터스텔라>가 갖는 의미는, 그의 새로운 챕터의 첫번째 페이지가 될 것같다. 아주 개인적이고 위험한 장담이긴하지만, 나는 그가 <인터스텔라>를 통해 이전까지의 여덟 작품을 하나의 '장'으로 마감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시선을 확장시키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단 그것이 지구를 떠난 우주가 배경이 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개인의 심층 내면의 끝까지 파고들었고 관심있어하던 감독이 이제 그 다음 스텝으로 인간과 인간사이의 간극에 대하여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큐브릭, 스필버그, 저메키스와 같은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까지는 아직 갈길이 멀어보인다. 그렇지만 21세기가 시작한 이래 2년 간격으로 새로운 영화를 꾸준히 내놓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제 막 자신의 영화 세계에 새로운 확장을 시도하려는 것 같다. 그렇게 지금, 우리 세대의 가장 지적인 감독이 돌아왔다.






덧글

  • 2014/11/13 10: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11/15 06:1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11/18 09:3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큼스 2014/11/24 15:06 # 답글

    스포일러 있다고해서 사진만 보고 휙휙 넘겼습니다. 앞에 게시물도 보니 영화를 타락천사,테드(?) 두개나 보셨네요. 영화 좋아하시는 듯^^ 저도 이번 주말에 인터스텔라 보려구요^^
  • 레비 2014/11/27 12:39 #

    재밌게 보고오셨길 바라요 :) 영화를 보고 그걸 쓰는것을 좋아해서 블로그가 그런 글 뿐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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