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Frank, 2014 Flims






지난 여름, <비긴 어게인>의 달콤하기만 했던 끝맛에 취해 또 다른 음악 영화에게 비슷한 당도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프랭크>의 뒷맛은 떫었을지 모르겠다. <비긴 어게인>에 없었던 것은 <프랭크>의 '존'이었다. 키이라도, 애덤 리바인도, 마크 러팔로도, 심지어 기타 협연 한번으로 숨겨왔던 재능을 발산하는 그의 딸마저. <비긴 어게인>엔 결코 없었던 존의 모습이 <프랭크>에선 전면으로 우리의 마음을 후펴판다.

특별한 능력이나 재능을 가진 천재들을 향해 우리가 그들만의 사연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본능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그렇게나마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납득하고 재인식하고 나아가 그로서 저들은 우리와 태생부터 다르다는 결론에 안도하고 만족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영화속에서 관찰되는 대다수의 천재형 캐릭터들은, 모두 그들만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천재들을 주변에서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천재들의 이야기를 돋보이게 만들어줄 뿐이다.

그렇지만 프랭크의 부모가 찾아온 존에게 건네는 프랭크의 이야기는, 그런 기대를 갖고있는 존과, 동시에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 프랭크의 가면은 그 순간 클리셰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것은 천재의 어깨에 짊어지어진 짐, 혹은 예술적 고뇌라는 진부한 상징을 넘어선다. 클라라는 그런 프랭크를 보호한다. 영화 중반부까지 그녀의 경계심과 완고함은 자칫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프랭크의 그런 본질을 그녀만이 제대로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프랭크의 가면은, 그가 숨어들어간 세계일 수 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우리와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막연한 동경과 추종이 만들어낸 편견, 그 자체가 아닐런지. 존은 우리와 함께 이쪽 세계에 있었지만 프랭크는 마지막까지 저편에 서 있었다.

돌이켜보면 일단 나부터, 다프트 펑크의 헬멧이 멋있다고 생각했던 감정은 그들이 왜 헬멧을 고집하는지 그들의 인터뷰를 듣기 전까지가 오히려 더 컷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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