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 The Mist, 2007 Flims













연출작들의 명성에 비해 프랭크 다라본트의 이름은 이상하리만큼 잘 알려져있지 않다. TV와 스크린을 오가던 그의 길지 않은 필모그래피 탓일까. 그렇지만 그는 <쇼생크 탈출>이라는 기념비적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다. 영화에 대한 평가에 만장일치라는 것은 있을수 없겠으나 거의 대부분의 평가 지표로부터 상위권을 보장받는 영화를 만든 경험이 있다는 것은 프랭크 다라본트가 획득한 부정하기 힘든 업적이다. 또한 그는 <그린 마일>의 감독이기도 했으며, TV 드라마에선 최근까지 인기몰이를 하고있는 시리즈, '워킹 데드'의 첫번째 시즌 총 감독이기도 했다. 이것은 마치 <트루먼 쇼>와 <죽은 시인의 사회>의 피터 워어처럼, 그의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지만 그 감독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문 이상한 경우이다.


<미스트>라는 공포 스릴러를 <쇼생크 탈출>과 같은 드라마와, 동일한 감독이라는 공통분모 위에만 두고 본다면 분명 잘 어울리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작가 스티븐 킹의 이름이 더해진다면 어색함은 금방 사라진다. 영화 <미스트>는 프랭크 다라본트가 스티븐 킹의 원작을 영화화한 세번째 작품이다. 첫째는 <쇼생크 탈출>, 그리고 두번째는 <그린 마일>이었다. 프랭크 다라본트는 앞선 두 편의 영화로 짧은 경력안에 금방 세계적 명성과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미스트>는 두 영화보다 더 적나라한 스티븐 킹 스타일의 텍스트일 수 있다.


<미스트>는 괴생물체와 지독한 유혈이 있는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다. 사실 <미스트>가 생각하는 것은 공포라는 대중 또는 인간 심리의 탐구도 아니다. 설명이 한없이 불충분한 상황하에 놓여있는 영화는 관객의 공감이나 빠른 동행을 유도하는 것은 처음부터 포기한듯 하다. 그대신, 영화를 보는 우리로하여금 하나의 관찰자로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게 만든다. 물론 등장인물들에게 만큼이나 관찰자인 우리들에게도 설명이 부족한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미스트>는 의견보다는 현상을 나열하고, 관찰하고, 전개되어나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제 의도를 거의 다 완수해낸다. 유사한 영화들이 여기 있다. 나이트 M. 샤말란의 <싸인>과 <해프닝>.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 전쟁>. 또는 맷 리브스의 <클로버필드>. 이상의 영화들은 공포의 근원이 되는 실체에 대한 당위적 설명에 필름을 할애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공포 그 자체. 주인공을 비롯한 캐릭터들에게 충분한 양의 비정상적인 상황과 불안과 공포만 투여된다면, 영화는 더 이상 '원인'에 관심이 없다. 이 영화들이 관심있는 것은 원인이 주어졌을때 뒤이어 일어나는 현상, 즉 '결과'다.


<미스트>는 한편의 사회학적 사고(思考) 실험이다. 위험을 상징하고 있는 안개는, 인간이 공포적 자극을 가장 빠르고 직관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시각에 통제를 가함으로서 그 속에 숨어있는 괴생물체들 못지 않은 공포를 그 존재 자체만으로 구현해낸다. 외부의 세계를 안개 하나로 통일시켜버리고, 이 이야기는 내부의 세계로 마을의 한 대형 마트를 상정한다. 아침 괴 안개와 돌풍에 휩쌓인 어수선한 분위기의 한낮 마을의 대형마트는, 마을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한 곳에 모이게 만듦으로서 이 사회학적 실험에 적합한 최적화된 샘플을 준비시켰다. 리더십을 갖춘 전형적인 주인공인 데이빗(토마스 제인)뿐만 아니라, 데이빗과 좋지 않은 과거가 있는 변호사 브렌트(안드레 브라우퍼), 평소엔 정신 이상자로 손가락질 받았던 여자 카모디(마샤 게이 하든) 등등 각종 다양한 사람들이 안개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마트안에 갇힌다. 게다가 대형 마트라는 조건은, 식료품과 생활 용품들이 당장은 충분하다는 환경을 제공하며 동시에 안개가 침투하지 않는 표면적 주거의 기능도 대신해준다. 따라서 그들은 최소한 기본적인 욕구인 의식주는 충족받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의 병원에 갇힌 환자들의 작은 사회의 결정적 차이점이다.) <미스트>에서 마트라는 이 작은 계(system)은 왜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암투와 종교적 맹신, 그리고 소수의 지성이 다수의 무지를 계몽하기 힘든지를 보여준다.


브렌트는 이 소규모 사회 안에서도 존재할 인텔리층을 상징하겠으나 한편으로는 '외지인'이라는 꼬리표에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데에 어딘가 벽을 느껴왔을 것이다. 브렌트는 데이빗과의 언쟁 후, 외부인이 가질 수 있는 여론의 불리함을 언변으로 메꾸려 애쓴다. 그는 처음엔 부정하던 괴물의 존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데이빗의 말을 따르도록 바뀌는 마트 사장과 다르게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거부한 채 끝까지 괴물의 존재를 부정한다. 믿기 힘든 괴물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의 부정이기도 하며 동시에 데이빗과의 연합 및 동조를 의미하는데, 이것을 극구 거부하는 것은 진실을 볼 기회가 있음에도 기존의 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보수적인 성질이다. 변화를 수용해낼 여유가 없는 브렌트는 새로운 '세력'을 결성하고 이들은 결국 독단적으로 행동한다. 그렇지만 사고의 유연성을 가진 다른 마트 사장은 데이빗의 말에 직접 괴물의 일부분을 보고 금방 마음을 돌려 지지자가 된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분명하고 흥미로운 은유는 카모디 부인일 것이다. 그녀는 안개가 마을로 몰려오기 전, 가끔 이상한 말을 하는 여자로 사회에서 무시당하거나 멸시당했다. 그런데 그 사회가 평소와는 다른 혼란에 빠지고 구성원들이 과거 경험해보지 못했던 변화에 판단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게되자 그녀의 말은 도리어 힘을 얻게된다. 평소같았으면 손가락질 받았을 그녀의 말들은 이 극한 상황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대중 심리, 그리고 몇몇의 우연과 겹쳐져 '신흥 종교' 집단을 구성하고 그녀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되어 현혹된 대중을 부린다.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그녀의 지지자들은 공포가 번져나가듯 빠르게 퍼져나간다.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정상적인 일상이었다면 판단 가능했을 사람들도 일상적이지 못한 상황하에선 제대로 알아볼 수 없도록 눈 멀고 만다.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던 괴생물체가 하필 카모디의 눈 앞에선 그녀를 '용서하듯' 공격하지 않았던 우연은, 신흥 종교내에서 과장되고 부풀려진 간증과 조작된 기적의 사례에 적용시킬 수 있겠다. 그렇게 신도들이라는 새로운 권력을 손에 쥔 종교지도자는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등 비정상적인 행위에도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은채 자행할 수 있게 된다. 카모디 부인의 경우는 사회가 혼란하고 불안할 때일수록 왜 신흥 종교들이 더 쉽게 힘을 얻고 세력을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명백한 은유다.


마트 직원 올리(토비 존스)는 스스로 옳은 가치 판단을 내려가며 주인공 데이빗을 따르며 신뢰할 수 있을만한 동료가 된다. 또한 그는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그러나 제한적인 무기인 권총을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집행자이기도 하다. 총은 최초로 유리를 뚫고 들어온 괴물을 처치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다른 총알은 데이빗과 올리가 속해있는 소수 세력이 다수의 카모디 부인의 세력과 충돌이 극에 달했을때, 그들의 우두머리인 카모디 부인을 제거하는데에도 사용되었다. 소수가 다수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서 사용된 가장 강력한 철퇴는 그렇게 상황을 일순간에 반전시키고 주인공 일행을 무사히 마트에서 탈출시킨다.


그러나 주인공 데이빗을 비롯하여 그를 따른 소수파는 계몽된 자들이었던가. 영화의 마지막에,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는 원작자 스티븐 킹과 궤를 달리함으로서 자칫 소수 영웅주의로 빠져들 수 있었을 마무리를 냉정할 정도로 철저히 차단한다. 올리가 카모디 부인을 냉철하게 쏴죽이고 다수의 입을 봉한채 소수가 유유히 안개속을 빠져나가는데 공을 세웠지만, 올리는 안개로 나가는데에는 성공했으나 데이빗의 차를 타지 못하고 괴물에게 죽는다. 영화 내내 가장 이성적이었고 옳은 행동만을 해왔던 올리의 갑작스러운 퇴장은, 마지막 데이빗에게 닥쳐올 절망의 예고편이었다. 사실 올리가 카모디 부인을 죽일 수 있었던, 그리하여 소수파의 전복을 꾀할 수 있게했던 권총은, 사회에서 말하자면 암살이나 테러 등의 반체제적인 무력 행동이다. 그런데 올리가 죽으며 남긴 권총을, 데이빗은 탈출 직전에 자신의 일행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모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손에 넣으려 애쓴다. 언뜻 호신용으로 생각 할 수도 있었겠으나, 과연 안개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모한 탈출이 될지 모를 출발을 앞두고 그가 꼭 권총을 갖고 싶었던 이유는, 적들을 해치워왔던 그 총으로 스스로를 쏘는 극단의 선택을 해야할지도 모른다는걸 미리 염두해두었던 것은 아닐까.


충격적인 장면들이 제법 있는 영화이지만, 그 모든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맨 마지막에 있다. 결국 구원받은 사람은 다수파도, 소수파도 아닌, 집에 두고온 자녀을 위해 그리고 결연하게 행동하며 마트라는 그 작은 사회에서 제일 먼저 벗어나 안개속으로 나아갔던 한 여성이었다. 그 많던 사람들이 마트안에서 아둥바둥하며 서로를 죽이고 살아남으려 애쓰던 그들 모두를 뒤로하고 마트 밖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그녀의 표정과 마주할 때, 처음에 그녀가 자신과 함께 가달라고 모두를 둘러보았을 때, 데이빗도, 올리도, 브렌트도, 군인들도,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토록 뒤늦게서야 얻어맞듯 기억해내게 된다.







덧글

  • chocochip 2014/10/09 01:50 # 답글

    처음 나왔던 그 아줌마, 저도 영화 보면서 무모하다, 죽으러 갈 거면 혼자 가지 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도와달라 하나, 투덜거렸습니다;; 마지막에 아이들과 함께 안전하게 구조된 걸 보면서 아... 싶더군요. 저는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게?;; 본 영화라 보고 또 봐도 재미있었습니다만, 의외로 평이 나쁘더군요.
  • 레비 2014/10/10 02:48 #

    처음엔 단순히 극한 상황하에서 사람들의 이중성을 보여주더라도 적어도 용기있는 한명정도는 따라나서고 사라질줄 알았는데 홀로 결연하게 안개속으로 나아간뒤 아무런 이야기가 없어서 이상하던차에 결국 마지막에 활용되더군요. 소설은 안봤지만, 결말이 다르다고해요.

    imdb나 rottentomates 등에선 유사한 장르 영화들에 비해 준수한 평가를 받았던데, 로저 에버트는 별 2개를 줬더라고요 ㅎㅎ
  • chocochip 2014/10/10 15:20 #

    원작소설은 못 봤지만 확실히 결말이 다르더군요. 스티븐 킹을 좋아하지만, 이거 영화가 꽤나 마음에 들어서 원작을 보는 게 망설여질 정도에요. ㅎㅎ
  • 역사관심 2014/10/09 03:15 # 답글

    유혈낭자의 공포물과 이런 공포물은 아예 장르를 다르게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라 (물론 고어물 등 서브장르택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공포영화가 '진짜 공포'라고 생각하는지라 정말 재밌게 본 작품입니다.
  • 레비 2014/10/10 02:57 #

    전 원래 공포영화를 잘 못봐서.. 슬래셔 무비들은 아예 보질 않지만 이런 심리적 공포는 스릴러로서도 참 괜찮은것 같아요 :)
  • 캠비폭발 2014/10/09 12:30 # 답글

    쉽게 잊혀지지 않고 계속 불편함을 느끼게하는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불편하지만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 레비 2014/10/10 02:58 #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게 혹평받거나 평가절하될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인상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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