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라이닝 플레이북, Silver Linings Playbook, 2012 Flims











가려진 구름 뒤의 한줄기 빛을 보고자하는 따듯하고 유쾌한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진부한 표현으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가깝다. 동화라는 것은 원래 어린이를 타겟으로 한 동심을 자극할만해야한다. 이 영화는 이미 어른이 되었다고 믿고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겉으론 유치하다고 비웃더라도 쉽게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만든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매년, 매시즌 수요가 있고 일정 수준의 인기를 확보할 수 있는 이유는 비슷한 레퍼토리를 매년 보게되더라도 그 남녀 주인공에 우리 각자를 대입하고 보기에 가장 (적어도 서사극이나 히어로물, 스릴러보다는) 쉬우면서도 큰 만족감을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팻(브래들리 쿠퍼)와 티파니(제니퍼 로렌스)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감정조절장애를 겪고있는 남자와 남편과의 사별이후 우울함 혹은 자기 통제를 잃어버린 여자와의 사랑에는 쉽게 우리 스스로를 대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믿기 쉽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상하리만큼 우리의 이야기같다. 심지어 두 남녀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에 등장하는 조연들마저 모두 어딘가 이상한데도 말이다. 팻의 아버지(로버트 드 니로)는 강박증이 거의 확실하고, 팻의 정신병원 친구 대니 (크리스 터커) 역시 문제가 있어보인다. 그런데 이 영화에 출연하는 자들의 병은 단순히 진단 가능한 데에 국한되지 않는다. 동생을 이상하게 대하는 팻의 형이나 겉으론 평범해보이지만 직장 스트레스와 아내와의 관계에서 숨이 막히는 이웃집의 로니(존 오티스), 그리고 겉치장에 급급한 로니의 아내이자 티파니의 언니인 베로니카(줄리아 스타일스) 등은 지금 현대사회가 '병명'을 붙이진 않았지만 어디서든 흔히 맞딱드릴수 있는 마음의 병들을 갖고있다. 그러니까 환자들이 잔뜩 등장하는 이 괴상한 로맨스 혹은 가족 영화에 우리가 빠져들기 쉽다는 점을 인정하기 꺼려지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도 그네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히어로물만큼 외면하곤했던 미국 아카데미마저도 이 작품을 '인정'한 이유는, 이 영화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수비범위였던 공감대의 스펙트럼을 훨씬 넓게 갖고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것은 한 쌍 남녀의 상처 보듬기가 아니라, 사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가족, 친구, 이웃들도 함께 아우르고 있다.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받으며 데뷔한 감독 데이빗 O.러셀은 꽤 오랜시간 침묵했다. 그는 1999년, 코믹하고도 독특한 전쟁 영화였던 <쓰리 킹즈>를 끝으로 거의 10년간 '사라졌었다'. 21세기 이후 연출한 첫 작품은 혹평받았고 그는 반짝하고 사라질 수많은 유망주중 한명이 되어버리는가 싶었다. 그랬던 그가 <쓰리 킹즈>에서부터 세 편 연속 캐스팅한 마크 윌버그를 다시 불러내 2010년 <파이터>로 재기했다. 데이빗 O.러셀이 배우들을 다루는 법은 다소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조지 클루니와의 일화라거나) 어쨌든 이후 그의 영화에서 배우들은 잠재된 연기력을 끌어낸다는 것을 매번 증명하곤했다. <파이터>에서의 크리스찬 베일과 멜리사 레오가 그랬듯이, 그 차기작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역시 두 남녀 주인공이었던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를 각종 영화제의 남녀 주연상 후보로 올려놓았고, 작년 개봉작이었던 <아메리칸 허슬>에서는 아예 자신의 전작들인 <파이터>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의 주연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 (비록 아카데미에서는 빈손으로 돌아갔지만, <아메리칸 허슬>에서 가장 빛나는 점은 이번에도 역시 배우들의 연기다.) 제니퍼 로렌스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받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역대 최연소 기록었고, 브래들리 쿠퍼 역시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를 해냈다.



사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나서 시작하는 사랑은 가능하긴 하겠는가. 우리는 주위에서 연애를 할 때가 아니다-라거나 누군가를 사랑할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말을 종종 듣거나 말한다. 썩 괜찮은 핑계다. 모든 것을 다 갖춘 후 시작하는 연애는 보다 더 완벽에 가깝거나 더 만족도가 높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마련이다. 나의 연애는 해피엔딩이길 우리 모두는 바란다. 선물을 사 돌아오던 남편이 갑자기 차에 치어 죽거나, 결혼식 노래를 틀어놓고 아내가 우리 집 욕실에서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을 무방비하게 목격하는 일도 없이 말이다. 팻이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의 엔딩에 화가 난 것도, 세상이 마냥 해피엔딩으로 채워져있지 않다는 점을 문학에서마저 마주하기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실버라이닝은 구름의 가장자리, 저 뒤편을 통해 언뜻 보일 뿐이다. 애초에 불완전한 두 사람이 서로의 불완전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두 사람이 만나서하는 불완전한 짓이 사랑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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