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 Locke, 2013 Flims





영화 <로크>는 일종의 밀실 스릴러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설명하기 수월한 방법은 <폰부스>, <베리드>, 그리고 <127시간>등의 유사한 영화들을 데려오는 길이다. 그런데 <로크>가 상술한 영화들에 비해, 상황은 같지만 더 독특한 차별성을 갖는 점은 영화 <로크>의 주인공 '로크'라는 남자에게 있다. 앞선 모든 밀실 스릴러들의 공통점은, 영화가 주인공의 캐릭터성에게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는 물론, 주제의식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을만큼 높은 의존도를 기대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영화의 스타일보다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단 한명의 캐릭터, 로크라는 인물로부터 접근을 시작하는 것이 정공법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로크>의 주인공 아이반 로크(톰 하디)를 한단어로 대신하자면, 그것은 그가 영화에서 자주 뱉을 수 밖에 없는 단어인 '콘크리트'일 것이다. 영화 대사와 대화들에 따르면, 로크는 영국 최고의 콘크리트 시공 설계자이자 전문가이다. 영화의 시작은, 그의 늦은 밤 공사현장에서의 퇴근길로부터 시작한다. 흔한 자동차 광고에서 많이 본 듯한 구도와 카메라 워킹을 이용하여, 톰 하디가 자신의 BMW에 오르고 시동을 걸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 영화의 모든 영상미적인 시도는 종결된다. 이제 90여분간 우리는 차 안 운전석에 앉아 블루투스 기능으로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받고 대화하고 끊고, 그리곤 혼잣말하는 톰 하디를 보게 될 뿐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 영화의 일관된 영상에 불만섞인 표현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BMW X5의 90분짜리 광고라고도 한다.)






<폰 부스>와 <베리드>에서와 마찬가지로, <로크>에서도 주인공을 '외부'과 연결시키는 도구는 전화이다. 그런데 타의에 의해서 밀폐된 장소에 감금당한 콜린 파렐과 라이언 레이놀즈와 다르게, <로크>에서의 톰 하디는 철저히 개인의 의지로 차를 몰고 단 한번도 목적지를 바꾸지 않고 도로위를 달릴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아니면 차를 돌려 아내와 아들들이 축구 경기를 함께 보길 기다리고 있는 따듯한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인가. 왜 그는 다음 날 아침에 그의 9년 경력에서 가장 중요할지 모를 유럽 최대규모의 콘크리트 시공 공사를, 해고를 감수하면서까지 스스로 감독하지 못하고 밤새 런던으로 향하는가. 바로 그것이 이 영화의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관객들을 납득시켜야할 조건일 것이다. 충실한 가장이자 존경받는 상사로 줄곧 살아온 그가 하룻밤 외도의 상대가 지금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을 하였고 그 아이가 하필 오늘 출산예정보다 훨씬 빨리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극중 로크의 철저한 주장대로, '잘 알지도,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할 수도 없는' 여자의 출산 소식에 로크는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한다. 행복한 가정과 충실한 남편, 따듯한 아빠는 하룻밤만에 모든 것을 잃게 되었고 심지어 다음날 공사 책임자로서 이는 그의 경력에 치명적인 오점일 뿐만 아니라 급기야 해고당한다. 그러니까, 영화 후반부 그의 대사대로 그는 불과 하룻밤안에 자신의 자동차에서 한번도 내리지 않은채 가정과 직장을 동시에 잃었다. 그 모든것과 맞바꾸는 것이, 자신도 인정하는 실수로 인해 세상에 나오려고하는 사생아의 출산을 지켜보기 위해서라니. 그러나 오직 이것을 받아들이느냐 못하냐에 따라서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상당부분 뒤바뀔수 있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 영화가 어떤 사건의 고조를 따르지도, 혹은 부가적인 외부로부터의 영향의 추가나 반전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그것을 당신이 눈치채건간에, 그 순간부터 이 영화는 온건히 로크라는 인물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가 된다. 왜 이 남자가 이렇게 무모해보일 짓을 하는가를 추궁할 생각하지말고, 이 남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궁금해하기 시작하면 이 영화가 결코 지루할 수 없을 것이다. 앞서 로크가 '콘크리트'같은 남자라고 표현한 것은, 단순히 그의 직업이 콘크리트 전문가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생각과 철학은 마치 콘크리트처럼 굳건하다. 그리고 절대 허투가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그가 어떤 남자인지 몰랐을 우리는, 오직 그와 그의 주변인들과의 통화 내용을 통해 어떤 캐릭터임을 알게된다. 내일 공사를 지휘하지 못함을 사장에게 설명하면서도 분노와 설득으로 그의 마음을 돌리려는 사장의 시도를 확고하게 물리친다. 해고를 감수한 그는 거칠것이 없지만 동시에 해고를 당하고 나서도 그의 콘크리트같은 프로페셔널함은 공사를 망칠 수 없게 만든다. 그는 사장이 손 떼라는 명령을 무시한채 그를 대신해 내일 공사가 진행되게끔 부하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세세한 사항들을 지시한다. 못 미더운 구석이 많은 부하직원이지만 말이다. 로크는 이 과정에서 행정적인 절차들을 겪지만 그가 자신의 일에 대해 갖는 자부심과 책임감은 그로하여금 그냥 산모를 향해 달려가지 못하게 한다. 그는 사장과 부하 직원의 '자잘한' 말 실수를 끝까지 하나하나 정정하는 등, 작은 오류도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 못할 남자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다음날의 공사현장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외박을 자신의 가정, 아들들과 아내에게 말하면서 동시에 외도 사실과 지금 그 실수로 인한 한 생명이 나오려하고 있으며 지금 자신이 서있는 길을 아내에게 설명해야한다. 앞서 그는 해고를 감수했지만 이번 전화는 이혼을 각오해야한다. 사정을 들은 아내는 당황과 실망과 분노 그리고 체념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다양한 감정상태로 로크를 괴롭게 한다. 그런데 로크가 아내를 달래려는 화법 또한 역시 그답다.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이기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며 좀 더 합리적으로 앞으로의 부부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오랫동안 믿었던 남편의 외도를 전화로, 그것도 그 여자의 출산을 위해 달려가는 남편에게 전화로 통보받은 아내가 납득할만한 방법은 확실히 아니다. 그런데 로크를 기다리고있는, 잘 알지도 못한다는 출산 직전의 산모 역시 다양한 각도로 로크의 심리상태를 공격하긴 마찬가지다. 혼란스러움과 불안속에서, 게다가 조산이라는 내포된 위험성까지 안고있는 여자는 미칠듯한 로크의 심리를 한층 더 어지럽힌다. 아내와 외도한 여자 사이에서의 번갈아 통화하는 장면은 마치 <폰 부스>를 떠올리게 하지만 <로크>에서는 그 도덕과 윤리의 무게감이 온건히 주인공 로크 혼자에게 부과되어있다.








로크가 통화하는 인물들은, 사장과 부하직원, 아내와 출산을 앞두고 있는 여자, 그리고 아들이 전부이지만 그에겐 블루투스가 아닌 실제로 대화를 시도하는 인물이 하나 더 있다. 로크는 종종 뒷좌석을 힐끔거리며 마치 유령에게 말하듯 자신의 아버지에게 독백한다. 절대로 당신처럼 세상에 나오는 자신의 아들에게 무책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게 대한 분노가 그로하여금 운전대를 잡고 모든 것을 포기하게끔 만들었다는 설명이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평생을 단단한 신념위에 살아왔을 이 남자에게 한순간에 직장과 가정을 모두 버린 '이해할 수 없는' 남자로 만든 것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이 남자를 알고본다면 '그럴 수 있을' 일이었던 것이다. 콘크리트같은 이 남자에겐, 자신의 하룻밤 실수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자신이 책임지고 말아야할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잘 모르는 여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있는 그 전날 밤 갑작스럽게 출산한다는 말에 런던까지 달려가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서, 그 아이의 탄생을 곁에서 지켜보기 위해서.


어떠한 액션도, 외부에서 찾아오는 느닷없는 추가적 사건이 없어도, 오직 거칠게 수염을 기르고 코감기에 휴지를 연신 뽑아대는 톰 하디의 목소리와 (로크의 감기 상태는, 실제 이 영화를 찍는 기간에 톰 하디가 감기에 걸려 추가된 설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훌쩍거림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 전화벨이 울릴때 절대 그냥 받지 않고 몇초간을 착잡한 심정으로 전화가 걸려온 사람의 이름을 응시하다 받는 표정 연기만으로도, 이 영화는 로크라는 한 남자에 대한, 일종의 느와르이자 보고서가 될 수 있다. 이런 외골수는 극중 로크만큼이나 감독 스티븐 나이트의 우직함이 돋보이는 연출이다.


<폰 부스>, <베리드>, <127시간>가 모두 캐릭터의 생사에 직결된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면, <로크>는 그들과 다르다. 로크는 생사의 갈림길에 처해있지 않다. 누군가에게 목숨을 구걸하지도, 살기위해 극한의 선택의 기로에 서지도 않는다. 그의 선택은 이미 영화와 시작과 동시에 결정되었고 결코 바뀌지 않는다. 그와 통화하는 모두는 그를 달래보려고도, 설득해보려고도하고, 화를 내보기도하지만 이 콘크리트같은 남자는 우직하게 밀고나간다. 그래서 아들이 전화로 전해주는 그날 저녁 축구 경기의 골장면은 그대로 로크의 이야기가 된다. 평소엔 못한다고 비난하고 애증하던 바로 그 선수가, 그날 저녁 로크가 놓친 바로 그 경기에서 패스도 하지 않은채 홀로 수비수들과 골키퍼까지 제쳐버리고 멋진 골을 넣었다고. 로크는 그 이야기를 아들로부터 들으면서 눈물 짓는다. 미칠듯이 화난 직상 상사가, 너무나도 큰 공사를 믿고 맡기기엔 어리숙한 부하 직원이, 남편의 외도 사실에 제정신이 아닌 아내가 혼란스러운 전화를 해대도 아들은 눈치채고 있던 것일까. 모든 것을 무시한 아버지의 단독 질주가 결국 멋진 골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아들은 그 이야기를 해주면서 끝에는 응원과 비슷한 메시지를 아버지에게 건넨다. 9년동안 직장과 가정에서 흠잡을데 없었을 그 남자가, 처음으로 행했을 신념에 의한 질주는 결국 그렇게 멋진 골을 만들어냈던 것이 아닐까.









덧글

  • Bubbles 2014/09/15 11:22 # 답글

    혼자 집에서 봤으면 재밌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전 어쩌다가 시사회 티켓 6장이 생겨서;; 친구와 지인 4명과 함께 봤는데 옆에 친구가 잠들면서 헉 괜히 오라고 했나 하는 부담감에 약간 불편하게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ㅠㅠ 뭔가 극적인 스릴러랑 반전을 기대했던 것도 있었고, 몇년 후에 보면 느낌이 다를 수도 있겠네요.
  • 레비 2014/09/19 03:17 #

    와 이 영화를 시사회로 보셨다니 전 오히려 부러운걸요 ㅠㅋㅋ 역시 버블님은 시사회 참 많이 다니시는것 같아요 ㅎㅎ 하지만 영화관에서 보면 확실히 계속 어두운 영상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났었을지도 모르겠네요.
  • yucca 2014/09/16 02:01 # 답글

    좋은 리뷰감사합니다. 영화가 꼭 보고 싶어지네요.
  • 레비 2014/09/19 03:17 #

    칭찬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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