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The Past, 2013 Flims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현대 이란 영화의 기수다. 조금 뒤늦게 영화 감독의 길을 시작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예순에 가까운 나이에 칸느 황금종려를 가져갔다면, 아쉬가르 파라디는 마흔이 채 되기전에 베를린에서 황금곰상을 거머쥐었다. 같은 해, 파라디는 이란 영화사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자국으로 가져왔다. 영화 제목은 <a Separation>. 국내 제목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였다.


그런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이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이후 2년여만에 내놓은 차기작은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원제는 "the Past". '별거'에 이어 '과거'라니, 이번에도 그는 한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스릴을 명민하게 파고든다. 파라디 감독의 영화가 갖는 엄청난 흡입력은,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냐는 그의 연출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직접 써내려가는 각본에 기반하고 있다. 그의 영화를 지배하는 각본은 캐릭터들의 아주 작은 행동 하나하나까지 현기증날 정도로 정교하게 짜여져있어서 한 가족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한편의 스펙터클한 스릴러를 보는 느낌을 준다.







영화가 시작되고, 타이틀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오프닝 시퀀스는 아쉬가르 파라디가 얼마나 인간과 인간, 그것도 타인이 아닌 가족간의 감정과 분위기를 얼마나 잘 담아낼 수 있는지를 과시라도 하는듯 대단히 인상적으로 짜여있다. 한 남자가 공항 입국 게이트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벽유리 너머의 여자가 있다. 여자는 남자를 먼저 발견해 반갑게 불러보고 손을 흔들어보지만 남자에게 닿질 않는다. 마치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연인을 반기듯. 하지만 겨우 지나가던 제3자의 도움을 받아 마주본 이 남녀의 언어는 어떤 대사도 단절시켜버리는 유리에 가로막혀 있다. (실제로 이 부분은 배우들의 입만 움직일뿐, 대사가 없다.) 겉으론 반가워보이지만 말은 통하지 않는 한쌍의 남녀. 이들은 이혼 절차의 마지막 과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재회한 별거중인 부부다. 빗속을 지나 겨우 주차되어있는 차를 후진하다 어딘가에 쿵하고 부딪혀버리는 여자. 그리고 남자의 한숨. 과거엔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가 지금은 이혼을 준비하는 별거 부부인 이들처럼, 이 영화에는 지금과는 다른 '과거'를 갖고 있는 캐릭터들이 한 가족안에 여럿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한번도 과거로 되돌아가 보여주는 씬이 없다. 영화는 오직 현재에서 미래로 천천히 나아갈 뿐인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의 사정을 (답답하더라도) 조금 천천히 추리해나가야한다.







법적 이혼에 최종 동의하기 위해 이란에서 프랑스 파리로 날아온 남자 아마드(알리 모사파). 전남편사이에서의 딸을 데리고 살면서도, 현재의 남편과 어서 이혼하고 새로운 남자와 새 가정을 꿈꾸는 여자 마리(베레니스 베조). 우울증에 자살기도로 의식이 없는 아내를 두고 아들과 함께 새로운 여자와 새 가정을 시작하고 싶은 남자 사미르(타하르 라힘). 엄마가 데려온 새 아빠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맏딸 루시(폴린 버렛). 아빠의 결정에 혼수상태의 엄마를 두고 새 엄마와 새 집으로 들어가야하는 어린 아들. 처음에는 누가 누구를 못마땅해하고 누군가를 누구를 불편해하는 문제 였던 이들의 공존은, 자살시도를 한 아내가 왜 그랬는가-하는 화두가 던져지면서 보다 더 심각한 무게감을 가진다. 그러니까, 이들의 재혼이 한 여자를 죽음에 가까운 상태로까지 몰아가는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는가 아닌가에 대한 도덕과 책임론이 부각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감독은 누가 잘못을 저질렀는가, 이 모든 파국이 누구의 책임인가(혹은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큰가)-에 대해서 판단을 위임하기 위해 우리 관객들을 배심원석에 앉히고 싶은 마음에 없어보인다. 영화는 명쾌한 설명을 원하는 우리 시대의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굉장히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영화는 오직 그들의 '과거'가 이미 벌어진 이후의 후일담을 우리로 하여금 관찰하게끔 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중 누구든 붙잡아세워 과거사를 캐묻고 싶은 충동을 영화 중후반부까지 스스로 억제해야한다. 마치 한편의 추리극처럼 시작된 이 이야기는 '범인'이 묘연해지면서 도저히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세명의 어른과 세명의 아이들이 한 지붕아래 있다. 그런데 세명의 어른들은 모두 서로에게 불편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혼을 코앞에 둔 부부와 재혼을 눈앞에 둔 새로운 남녀가 며칠을 함께 지내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마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전남편의 귀국을 알고도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지난번에도 온다하고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핑계로 여러번 설명하지만, 그렇다면 왜 임신 사실을 법정에 들어가기 직전에서야 귀띔하듯 알려주는 것일까.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그녀가 아마드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새 출발을 하겠다는 그녀의 가장 확고한 결심의 실체화일텐데, 그럼에도 마치 그녀는 여전히 출산을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마리는 사미르라는 미래를 보는 척하면서도 어쩌면 아마드라는 과거로부터 제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드 역시 그렇다. 겉으로는 쿨하게 이혼에 동의하러 파리까지 온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그는 흔들리고 위태로운 마리의 모습, 그리고 (친 딸은 아니지만) 루시의 설득에 '어른스럽게' 대처하려할뿐, 용서를 구하고 다시 용기내지 못한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전처의 새출발을 마냥 축하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미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루시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는 철저히 이제 이 가정의 제3자라는 태도만을 견지할 뿐, 적극적으로 나서려하지 않는다. 이렇게 마리와 아마드는 서로가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어설프다. 겉으로는 이미 파국을 맞이한 과거의 부부처럼 굴지만, 또 아이들앞에선, 사미르 앞에서는 그래도 다정했던 부부였던 척을 하고 혹시 모를 '여지'에 대해서 아주 조금의 기대를 포기하지 못한다. 마리가 새로 칠한 페인트는 분명 새출발을 위한 은유겠지만 그것은 영화가 끝날때까지도 안전하게 마르고 굳질 못한다.






이런 어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이들은 솔직하다. 루시는 엄마가 또 다시 재혼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또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을뻔 했을 부도덕이 스며있다는 사실이 싫다. 그래서 루시는 가장 극렬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또 가장 솔직하게 어른들에게 반대한다. 물론 그녀의 생각, 그녀의 판단이 옳았거나 오해였음은 영화에서 (밝혀지기는 하나) 최종적으로 중요하지는 않다. 또한, 사미르의 아들인 어린 남자 아이 역시, 지하철 씬에서 보여주듯이 자신의 아빠인 사미르를 비롯하여 마리, 아마드에게 감정 표출을 서슴치 않는다. 이 개구쟁이 아들은 아마드가 가져온 선물을 몰래 엿보다 사미르와 마리에게 들켜 크게 꾸중을 받는 씬이 있다. 그런데 이 씬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세워놓고 철저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할 것을 강요한다. (조금 과하다싶을 정도로 말이다.) 프랑스 여자인 마리와, 아랍 남자인 사미르, 그리고 이란 남자인 아마드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차이는 곧 이 영화에서 말하는 각 문화의 차이일수도 있지만, 내가 흥미로웠던 점은 아이들이 아마드에게 용서를 (억지로) 구하는 씬에서 마리와 사미르도 아이들 곁에 '용서를 구하는 아이들'처럼 함께 서있다는 점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과거를 시인하고 인정할것을 강요하지만, 정작 이 어른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엄격한 만큼 스스로들에게는 냉정하지 못하다. 이런 모순의 아이러니가 세 어른들과 세 아이들의 대조를 통해 드러난다.






그래도 영화는 마지막에 과거를 시인하고 응시하는 메세지를 집어 넣었다. 사미르는 루시의 반대와 마리의 간절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의식이 없는 아내의 병실을 찾는다. 마리가 아마드에게 마음속 한구석 일말의 여지를 열어두었듯이, 마리가 추궁하는 사미르 역시 자살기도로 의식을 잃은 아내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사미르에겐 의식 없는 아내가 과거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리와 달리 사미르는 아내의 손을 잡아보는 것으로 혹시나 지금 깨어날지 모를 아내를 말없이 바라본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한국어 제목 그대로 많은 캐릭터들이 과거의 사연들을 거쳐 현재 지금 이 상태에 이르렀고, 영화가 끝나고서도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다. 사미르는 마음을 바꾸어 마리가 아닌 아내의 병실로 돌아갈까, 혹은 마리가 아이를 낳지 않고 사미르와의 결혼을 재고해볼 것인가. 혹은 아마드가 마리에게 과거 자신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남아있는 마음을 고백할 것인지. 어쩌면 이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고, 이 영화가 시작될때와 똑같은 상태, 마리와 아마드는 이혼하고 마리는 사미르와 결혼하고, 세 아이들은 한 집안에서 살게될 가능성이 사실 가장 클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노선이 전혀 변함이 없다하더라도 과거는 이렇게 현재에, 그리고 끝끝내 미래에까지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덧글

  • umma55 2014/09/12 10:20 # 답글

    훌륭한 영화에 훌륭한 감상문이군요. 잘 읽고 갑니다.
  • 레비 2014/09/13 02:02 #

    감사합니다 :)
  • 광화문허준 2014/10/12 00:22 # 삭제 답글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 레비 2014/10/20 20:14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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