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포티, Capote, 2005 Flims








베넷 밀러의 영화, 아니 어쩌면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영화라고 불러야 더 적절할지 모를 영화 <카포티>는 제목 그대로 20세기 미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명이었던 트루먼 카포티에 대한 영화다. 영화팬들에게 그는, 오드리 햅번의 연기와 '햅번룩'으로 유명해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로 더 알려져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카포티의 역작은 '인 콜드 블러드 In Cold Blood'. 소설과 르포르타주, 팩트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오늘날 '팩션'의 시초가 된 바로 그 소설이다. 영화 <카포티>는 작가 트루먼 카포티의 전기 영화가 아니다. 영화에서도 비중있는 조연, 동행으로 등장하는 넬 하퍼 리가 어떤 작가인지, '인 콜드 블러드'가 어떤 소설로 남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영화는 그가 '인 콜드 블러드'를 집필하기 위한 몇년간의 과정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런 집중은, 작가와 범죄자 사이에 형성되는 감정드라마나 혹은 예술과 도덕성 사이의 갈등관계와 같은 진부한 것들로부터 벗어난 흥미로운 결과를 내놓는다. 영화를 거의 다 보고나서야 눈치 챌 수 있는 이것은, 한 인간에서 다른 인간으로 이루어지는 악마의 전이과정이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명실공히 우리 시대 최고의 배우 중 한명이다. 나는 그가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견주어 절대 뒤지지 않을 거의 유일한 남자 배우였다고 믿고있다. 또한 실력에 비해서, 주연보단 조연 연기가 잦았기 때문에 세간의 평가가 부족했던 배우로 아쉬워하고 있다. 이 영화 <카포티>는 그런 그에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안겼던 영화다. 이 영화는 호프먼의 커리어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해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의미있는 영화일 것이다. 신경쇠약에 걸린듯 어딘가 유약하고 불안한 정신을 가진 카포티를 연기할 배우로, 푸근하고 살찐 외모의 호프먼은 쉽게 연상되기 어려운 캐스팅이었지만 그는 20kg 가까이를 감량하고 목소리를 바꾸어가면서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다. 그가 보여준 수많은 영화들속에서의 명연기들 중에서도 <카포티>에서의 모습은 단연 정점이다. 캐서린 키너가 카포티의 오랜 파트너이자 현존하는 작가인 넬 하퍼 리를 연기했다. (재미있게도,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과 캐서린 키너는 2012년 영화 <마지막 4중주>에선 권태에 빠진 부부로 다시 만났다.)







어느 한 마을의 한가족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사건을 신문으로 접한 카포티는 처음엔 기사로 쓸 생각이었다. 그는 직접 이 사건의 용의자로 수감된 페리 스미스와 리차드를 만나고 그 중 페리에게 관심을 갖는다. 카포티는 자신과 유사한 불우했던 성장 배경이나 문학적 소양, 예술적 감각등을 페리로부터 발견하고 강하게 이끌린다. 그가 페리에게 갖는 감정은 그들을 애써 체포하고 살인죄를 적용, 사형을 구형한 사법부와 경찰들에게는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당대의 작가가 범죄자에게 갖는 이런 위험한 감정은, 동성애자이기도 했던 카포티의 불안정하고 예민한 심리를 쉽게 뒤흔들었다. 그는 희대의 작품을 써내려가겠다는 욕망과 동시에 페리라는 사형수에게 동정심과 연민마저 느껴버린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누군가의 범죄행위, 그리고 그에 따른 사형이라는 최고 수준의 처벌을 눈 앞에 두고 작가적 자세로 관조해야할 카포티의 도덕적 갈등이나 번민을 저울질하진 않는다. 그것이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이다. 카포티는 갈등하는 듯하지만 그의 행동이나 말은 우리 관객들로하여금 스스로 판단해보게끔 기회를 열어둔다. 즉, 카포티는 페리를 주기적으로 면회하고 변호사를 선임해주는 듯 그를 위한 행동, (살인마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석방시켜주기 위한 '자기 연민적 감정'과, 한편으로는 어서 빨리 자신이 공들인 역작을 완결짓고 탈고하기 위해선 페리가 사형당해야한다는 '예술을 갈망하는 작가적 욕망'이 그의 내면에서 조용하게 충돌한다. 이 충돌은 너무 조용하고 은밀해서, 영화를 보는 우리들조차 그의 본심을 잠깐 사이에 놓쳐버리기 쉽다. 카포티는 그가 일가족을 살해한 살인마임을 알면서도 그를 정말 사형으로부터 구하고 싶었는가. 혹은, 책의 제목을 페리를 비난하는듯한 뉘앙스인 '인 콜드 블러드'라고 지어놓고 그가 사형을 면하게되면 자신은 이 책을 완성하지 못할것이라고 하소연하던 모습이 그의 진짜 본심이란 말인가. 그의 사형을 막지 못했다고 슬퍼하던 카포티에게 넬 하퍼는 어쩌면 네가 진심으로 그것을 바라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일침한다.






영화는 절대 살인마를 동정하거나, 그의 사형이 부당하다는 뜻을 내비치지 않는다. 그의 사형에 괴로워하는 것은 극 중 카포티일 뿐이다. 그래서 페리는 끝까지 살인마로 남는다. 그런데 그런 그를 이용해 자신의 차기작을 쓰고자했던 카포티에게서도 비슷한 일면이 보인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에게 영감을 빌미로 계약을 이행했듯이 카포티도 일생일대의 작품을 위해 페리라는 악마에게 접근,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동화되고 말았다. 굳이 니체의 말을 인용하지 않아도, 심연의 악마는 이토록 쉽게 전염된다. 또한 한편으로는, 카포티의 이런 이중적 심리가 필요에 의해 취하고 뱉어내기를 반복하는 현대 우리의 얇팍한 인간관계를 풍자한다는 느낌도 든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으로도 삽입되었지만, 실제로 '인 콜드 블러드'를 마지막으로 트루먼 카포티는 더이상 다른 작품을 쓰지 못한채 알콜중독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도 지난 2월, 카포티와 비슷한 이유로 사망했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중 한명이었던 그가 '인 콜드 블러드'를 집필하면서 만난 페리와의 교감과 관계에서, 그는 많은 공감과 동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가 그의 마지막 작품을 써내려가면서 모든 예술혼을 소진해버렸는지, 아니면 페리의 죽음이 그의 무기력한 여생에 영향을 미쳤는지, 카포티의 유약한 심리상태를 고려하면 모두 가능성있는 이야기이다. 카포티는 살인마에게 의지해 생애 위대한 작품을 쓰고, 그 댓가로 악마를 건네받았던 것이 아닐까.













덧글

  • 2014/08/22 16: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8/22 22: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8/23 04:1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8/24 23:3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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