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 어게인, Begin Again, 2013 Flims





어떤 감독이 8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성공한 전작과 유사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은 흔히 두가지 기대와 걱정을 함께 갖게 한다. 전자는 그 감독의 '가장 잘 하는 것'이었다는 기대치이고, 후자는 '가장 잘 했던 것'에 대한 재활용이 아닐까하는 우려다. 존 카니의 영화 <비긴 어게인>은 초저예산으로 소위 세계적으로 '대박'을 냈던 <원스>의 잔상을 도저히 지울 수 없을 영화다. 그렇지만, 감독이 자신의 출세작을 굳이 리메이크 하고 싶어했던 느낌은 들지 않는다. <비긴 어게인>은 전문 배우들이 아닌 진짜 뮤지션을 주연 한쌍으로 내세우고 더블린을 배경으로 삼았던 <원스>보다는 더 돈을 들여 좀 더 캐쥬얼한 영화를 만들었다. 마크 러팔로와 키이라 나이틀리라는 인지도 있는 남녀 배우를 캐스팅했고, 배경은 뉴욕이 되었다. 그렇지만 성공한 감독이 그의 전작에 자본의 힘을 덧씌워 만든 영화는 아니다. 존 카니의 영화는 여전히,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딱 그정도의 무게감을 갖고있다. 마치 두 주인공의 사이의 감정선과 같이 말이다.

유난히 시대극과 인연이 깊어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주로 기억되는 키이라 나이틀리는, <비긴 어게인>에서 의외의 노래 실력을 선보인다. 그녀의 노래로 시작하는 영화의 첫머리는 비슷한 이유로 올해 초 국내 개봉했던 코엔 형제의 영화 <인사이드 르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보니 그 영화의 배경도 뉴욕이었다.) 그녀의 독특한 노래 실력은 대역없이 직접 노래를 하고 싶어했던 그녀의 의지에 따라 몇주간의 보컬 트레이닝을 거친 결과물이라고 한다. 명품 조연배우에서 이제는 점차 주연 배우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마크 러팔로는 과거에 성공했었던, 그러나 이제는 동료와의 의견차이로 자신이 설립한 음악사를 등진 무력한 '왕년의' 명 프로듀서를 연기한다.

둘은 모두 힘든 하루를 보내고 우연히 만났다. 나는 이 둘의 각자의 하루의 마지막을, 그 둘이 만나는 '결과' 장면을 먼저 보여준 뒤, 다시 둘의 하루를 각각 복기해나가는 영화 초반부의 플래시백이 특별히 좋았다.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왜 뉴욕의 그 어느 바에서 노래를 하게 되었는지, 그녀의 노래 가사는 왜 그랬는지를, 영화 시작과 함께 아무 사연도 모르고 듣는 것과 그녀의 스토리를 다 듣고 다시한번 듣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그저 알콜중독자의 느낌을 물씬 내는 중년의 댄(마크 러팔로)이 유달리 그레타의 노래에 열광적으로 반응한 첫 장면에 대한 설명 역시, 우리는 댄이 보낸 그날 하루를 돌아본 뒤에서야 이해할 수 있게된다. 그렇게 만난 댄과 그레타의 인연은, 전혀 로맨틱하진 않지만 동병상련의 느낌으로 가까워진다.

그레타와 댄의 공통점은 사실 불행한 시기를 지나고 있음이 전부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와 풍파에도 자기가 지니고 지키기를 원하는 철학이 있다는 점이다. 그레타는 상업적 인기와 물질적 풍요에 변질되어 결국 연인마저 새로운 여자에게 떠나간 자신의 전남자친구에게 회의감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남보다는 나를 만족시키는' 음악과 가사를 쓴다. 댄 역시 자신이 회사를 세우고 뉴욕의 음악을 선도하던 시대의 향수를 지닌채, 현재의 대중음악 문화에 실망하고 불만이 가득하다. 그는 자신의 철학에 부합하는 그레타를 발견하고 그녀의 음악을 세상에 내보일 생각을 한다. 댄의 의지는, 그녀를 통해 자신의 명예회복을 바란다거나 물질적 성공을, 혹은 그레타에게 이성적인 이끌림을 받아서도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레타의 음악을 열정적으로 지원하는 댄의 마음은, 아직 세상에 자신의 철학에 부합하는 음악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음악이 얼마든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이고 그로부터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대중적으로 성공한 가수인 남자친구 역할에는 마룬5의 보컬 애덤 리바인이 출연한다. 따라서 이것은 그의 첫번째 데뷔 영화이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뮤지션들의 스크린 진출의 대부분이,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선들로 시작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연기는 수준급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실패라고 할 필요는 없겠다. 댄의 별거중인 아내 역으로 등장하는 캐서린 키너가 출연 시간에 비해서 뛰어난 연기를 보인다.

그녀가 자신의 앨범의 상업적 판매와 성공에 대한 미련을 간단하게 버리고 (거의 무료에 가까운) 음원 배포를 결심하는 것까지 이 영화가 줄곧 지켜온 분위기와 철학에 부합한다. <원스>가 좋았던 이유는, 음악과 도시를 캔버스로 한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 결코 끝까지 질척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비긴 어게인>도 단 한번의 끈끈한 스킨십 없이, 그레타와 댄의 주고받는 눈빛과 교감만으로도 이런 '소울메이트' 관계를 그리기 때문에 아주 적당한 당도를 가진 영화가 될 수 있었다.






덧글

  • jjangso 2014/08/19 23:03 # 답글

    매우 공감합니다~저는 특히 음반이 나오고 나서 작별인사를 나눌 때 아무 말 없이 서로 쳐다보던 그 장면이 너무좋았어요!
    우정과 사랑과 동지애와 음악과 교감과 감사, 모든 것을 읽을 수 있는 기가 막힌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 레비 2014/08/20 05:10 #

    뭔가 한마디씩 더 할말이 있는것같은데 꾹 삼키고 쿨하게 헤어지려고 애쓰는 둘의 장면이었죠 :) 저도 좋았답니다. 그런 느낌이 딱 이 영화의 분위기인것 같아요. ㅎㅎ
  • 아느 2014/08/20 09:52 # 답글

    적당한 당도라는 표현이 좋네요. 전 사실 좀 끈적하고 질척한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런 절제는 좋은 듯요. 다만 결론부때문에 원스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요. 애덤 리바인의 로스트 스타가 너무 좋았던 ㅠㅠ 모든걸 압도하는 구남친님의 목소리 ㅎㅎ
  • 레비 2014/08/21 00:57 #

    아느님은 끈적하고 질척한 멜로쪽을 좀 더 좋아하시는군요 ㅎㅎ 전 거의 처음부터 원스의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어요 ㅎㅎ 애덤 리바인은 사실 연기를 할때보다 노래를 부를때마다 (역시 본업때문인지) 보다 더 활기를 찾더군요. 비긴 어게인이 구남친과의 재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었어요.
  • 2014/08/20 14: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8/21 01:0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8/22 03:5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8/22 12:5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Bubbles 2014/08/23 13:50 # 답글

    흔한 러브스토리로 끝나지 않아서 다행인 영화였어요ㅎㅎ 시사회로 보고 노래 가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 다운받았어요ㅋ 애덤 리바인은 노래하는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사실 못알아봤네요.
  • 레비 2014/08/24 23:52 #

    영화를 막상 보고있을땐 몰랐는데, 며칠이 지나서 OST만 다시 스트리밍으로 들어보니 너무 좋더군요 ㅋ 앨범을 지를까 고민중이에요. ㅎㅎ 전 애덤 리바인이 연기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가서 언제쯤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역시 노래를 할때 빛이 나더군요..ㅋㅋ
  • 2014/08/25 05: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8/26 03:2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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