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스캔들의 영화적 복기 : <천일의 스캔들>, <로얄 어페어> Flims








영화가 우리 인간의 드라마를 닮아있기에, 영화가 역사를 빌려오는 것은 필연적이었을지 모른다. 영화는 종종 역사를 복기하면서, 단순히 재현에 그치지 않고 의도에 맞추어 재해석하기도 하고 또는 각색한 대체의 역사를 써내려가기도 한다. "The Other Boylen Girl" 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원작 소설을 가지고 있는, TV 드라마 감독이었던 저스틴 채드윅의 첫 스크린 데뷔작 <천일의 스캔들>은 생소한 감독의 이름에 비해서 제법 쟁쟁한 배우들이 포진하고 있다. 영화가 역사를 가져오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영화에게 허락된 자유'를 대단히 절제하여 누리고 있다. 영국의 헨리 8세의 여성 편력은 현대 드라마 작가들에게도 확실히 매력적인 소재였던것 같다. 그에 관련된 이야기는 많은 영화와 TV드라마들로 오늘날까지 재생산되고 있다. 카톨릭과 영국의 역사를 영원히 바꾸어놓은 그의 이야기는,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파장을 남긴 섹스 스캔들로 꼽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왕실의 삼각 관계에 캐스팅된 두명의 여자와 한명의 남자는 나탈리 포트먼, 스칼렛 요한슨, 에릭 바나다. 게다가 헨리 8세의 실제 왕비였던 스페인에서 온 캐서린 왕비 역할에는, 스페인의 국민 아역배우였던 안나 토렌트가 맡았다. 게다가 두명의 블린걸들의 어머니 역에는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그녀들의 막내 동생으로는 짐 스터게스가 캐스팅되었고, 최근 TV시리즈 <셜록>으로 유명세를 탄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꽤 비중있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이쯤되면 한번에 보기드문 출연진이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미지의 나탈리 포트먼과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 대결은 쉽게 보기 어려운 경험이다. 이 영화 <천일의 스캔들>이 평단에서 혹평을 받지 않은 유일한 부분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라고 한다. 다소 팜므파탈스러운, 경국지색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앤 블린역의 맡은 나탈리 포트만의 눈빛이나 입가에 살짝 걸린 미소 등으로 유혹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은 섹시심볼로 더 유명한 스칼렛 요한슨을 곁에 두고도 돋보인다. 이 영화에서 스칼렛 요한슨의 메리 블린은 오히려 순수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마초적인 헨리 8세의 모습을 연기한 에릭 바나의 이미지는 <트로이>에서의 모습도 언뜻 겹쳐보이기도 한다.


언뜻 아라비안 나이트를 연상시키는 제목은, 사실 앤 블린이 여왕이 된 이후 천일만에 처형당했음을 반영한 제목이었다. "천일"을 제목에 내세우려면 응당 앤 블린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어야할터, 그러나 영화는 오히려 메리 블린이 중심에 있다. 실제 영화의 원제 역시, 'other girl'인 메리 블린이 강조되어있다. 영화에선 앤이 첫째, 메리가 둘째고 그녀들의 밑으로 막내 조지가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있지만, 실제 사학계에선 메리가 첫째, 앤이 둘쨰라는 설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설에 그치는 이유는 앤 블린 처형 이후 그 블린 가문의 기록이 대부분 유실되어서라고. 또한 원래 앤 블린 역으로 키이라 나이틀리가 캐스팅되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그만두게되었고 그녀를 대신하여 나탈리 포트먼이 캐스팅되었다. 닮은 꼴로 유명한 키이라 나이틀리와 나탈리 포트먼의 인연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1>에서 부터 극중 서로 닮은 역할로 만난 이래 계속되는 것 같다.


각색이 가미되었다해도 헨리 8세와 블린가의 이야기는 일단 실화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 역사 자체가 굉장히 드라마틱하고 전개가 급변하는 내용이라 스크린에 옮기는 과정에서 그 전개는 더욱 더 빨라졌다. 시골에서 조용히 살고싶다던 메리 블린이 거의 첫눈에 핸리 8세와의 잠자리에서 쉽게 응하며 변해가는 장면이나, 그리고 앤 블린에게 왕을 사랑한다고 말하게 되는 전개의 속도가 비교적 순식간이라 어색함을 남기기도 한다. 반면 앤 블린은 지나치게 권력에만 집착하는 설정과 모습으로 '사실은 그녀 역시 왕의 사랑을 원했던' 여자 중 한명이었음이 갈수록 희석되는 것 같아서 아쉽다. 후반부의 그녀의 모습은 정말 자신의 욕망에만 사로잡힌 마녀와도 같은 모습다. 권력에 자식들을 파는 아버지와 삼촌에게 분노하면서 끝까지 자식들을 걱정한 어머니의 모습은, 그녀의 역할이나 위치가 약하게 표현되긴 하였으나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의 뛰어난 연기에 적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이다.


다만 초반부터 시작된 이런 긴장감이 점점 더 피치를 가하며 빨라지지만 긴장의 해소나 고조가 군데군데 분산된 채 결국 정점이 어딘지도 모른채 끝나 버리는 아쉬움도 함께 있다. 영화의 중후반부로 갈수록 영국 국교회의 탄생 이유와 배경을 간접적으로나마 암시하는 시도를 하기도하지만, 영화는 그 점에 큰 관심은 두지 않는 분위기다. 앤이 유죄를 선고받고 조지는 이미 처형되었을때 메리가 헨리에게 앤의 용서를 구하자, 그 이유를 묻는 왕에게 '언니니까요' 라고 답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진정한 클라이막스라고 느껴질 정도. 한편 영화속 대부분의 배경이 되는 런던 왕궁의 분위기는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매우 음울하고 감옥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와 반대로 16세기 귀족들의 복식은 시선을 잡아 끈다. 특히 헨리 8세의 복장은 오히려 블린 자매의 드레스보다 인상적이기도.


<천일의 스캔들>이 아쉬운 점은 드라마로서 좋은 이야기와 이미 여러번 재해석되어 선택의 폭이 넓을 수 있었던 이야기와 함께, 좋은 배우들을 기용하고도 평범하고 밋밋한 극이 되었다는 데에 있다. TV 드라마를 만들어오던 감독의 첫 스크린 데뷔작이라 그런지 드라마 <튜터스>처럼 한편이 아닌 여러편의 몇부작 시리즈로 만들기에 더 어울릴 연출과 각본이었다.







헨리 8세의 왕실 스캔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덴마크 왕실에도 역사를 바꿀뻔했던 스캔들이 있었다. 덴마크 출신의 감독 니콜라이 아르셀이 자국 왕실의 역사를 스크린에 옮겼다. 이 영화 역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2012년 영화 <로얄 어페어>는 덴마크 왕 크리스티앙과 영국에서 온 그녀의 왕비 캐롤라인, 그리고 왕의 주치의였던 스트루엔시의 스캔들을 소재로 삼고있다. 왕과 두명의 자매인 삼각관계였던 <천일의 스캔들>과 언뜻 다른 구조인 이 이야기는 플롯상으론 <천일의 스캔들>보단 한국 영화 <쌍화점>에 더 가깝다. 캐롤라인 왕비 역의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이 영화가 개봉한 같은 해에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키티 역을 맡아 비슷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정신분열증에 걸린 크리스티앙 왕 역을 맡았던 미켈 보에 폴스라르는 이 영화에서의 연기로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게다가 아주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매즈 미켈슨이 사실상 극의 주인공인 주치의 스트루엔시를 맡고 있다.


<로얄 어페어>는 <천일의 스캔들>보다 더 드라마적 전개는 떨어질 수 있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훨씬 세련되었고 매끄럽다. 실패한 계몽주의 혁명으로 귀결되는 이 이야기는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들의 사적인 이야기와 그들의 행동들이 공적인 역사로 어떻게 스며들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까지를 <천일의 스캔들>보다 더 입체감있게 이야기한다. 스트루엔시는 개혁주의자이자 계몽운동가였지만 그는 그전에 한명의 여자를 사랑한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점차 권력을 가졌을때 변화하는 모습, 다시말해 옳은 신념과 뜻을 품은 사람의 대의도 권력지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점차 불완전한 면을 드러내는 과정이 캐릭터를 풍성하게 만든다. 나는 이 영화 <로얄 어페어>의 이런 모습을 애정한다. 이런 영화 캐릭터에게서 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루소와 볼테르를 읽고, 지금의 사회와 다른 모습을 함께 꿈꾸는 스투루엔시와 캐롤라인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왕을 두고 금방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 왕의 주치의와 왕의 왕비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이다. 그렇지만 스트루엔시가 왕과 신뢰와 왕비의 사랑을 얻고 점차 정계의 실세가 되어가면서, 다시말해 개인이 '힘'을 갖게되면서 그의 이상도 구체화되고 실천력을 얻는다. 개인의 사회적 이상과 감정적 욕망을 한꺼번에 이루려는 그의 무리한 시도는 비극으로 끝난다. 이 두가지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성급하거나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오히려 왕실의 내밀한 스캔들을 엿보는 멜로물로서, 그리고 동시에 시대극으로서의 재미를 모두 갖추고 있다. 인간의 이성을 지지하는 계몽주의가, 오히려 대중에 의해 실패하는 이 실제 역사의 이야기는 한때, 왜 다수의 대중이 소수를 위한 정책이나 당에 표를 던져주는가에 대한 전례로 분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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