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미, Enemy, 2013 Flims









캐나다 감독 드니 빌뇌브의 영화 <에너미>는, 2010년 <그을린 사랑>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이후 헐리우드로 건너가 휴 잭맨과 함께한 <프리즈너스>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그의 가장 최근의 작품이다. 앞선 두 전작들로부터 유추해보건데, 그는 특유의 긴장감과 마지막 순간까지 관객들을 숨죽이게하는 장악력이 뛰어난 감독이다. 게다가 그런 그가 만난 텍스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포르투갈 출신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도플갱어(원제: The Double)>이고, <프리즈너스>에서 이미 한번 합을 맞추었던 배우 제이크 질렌할이 1인2역을, 우아한 분위기가 비슷한 두 여배우 멜라니 로랑과 사라 가돈이 조연으로 출연하니 썩 괜찮은 심리 스릴러를 기대해봄직했다. 게다가 사라마구의 대표작 '눈 먼 자들의 도시' 역시 동명의 영화로 이미 한번 영화화 되었지 않았던가. 물론 장편 소설을 제한된 필름안에 완전히 해석하여 넣기란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어가는 것 같다. 제이크 질렌할은 이 영화 <에너미>에서 썩 괜찮은 1인 2역을 선보인다. 도플갱어를 연기하면서 1인2역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 '같으면서도 다를' 하나이자 둘인 캐릭터의 미묘한 차이를 충분히 살리며 연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영화는 굉장히 지적이지만, 동시에 감독이 스스로 가장 사적인 영화라고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자의식의 과잉이 극을 따라가는 우리들의 이해를 쉽게 돕지 않는다. 세상 어딘가에 나와 똑같은 도플갱어가 있다는, 진부할 수도 있지만 매번 흥미로울 이 이야기는 물음을 던지고 싶은만큼 던져놓지만 그에 비해 설명은 충분하지 못하다. 물론 모든 영화들이 대부분의 답안을 상영시간 안에 가지고 있어야할 의무는 없지만, 이 영화는 마치 발제만 제시한 뒤 끝날때까지 아무 말 하지 않는 사회자같다. 그건 자칫 불친절함이 아니라 미숙함에 더 가까이 보이기 쉬운 위험이 있다.


혼돈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질서이다. 영화는 이와 같은 구절로 시작한다. 그리고 90여분의 길지 않은 러닝타임안에서도 영화는 보는 긴장을 쥐락펴락하며 우리를 능숙하게 이야기의 아주 깊은 곳까지 순식간에 끌어당긴다. 모호하고 불분명한 부분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몰입감을 쉽게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영리하게 꾸며진 장치들에 있다. <에너미>는 지적인 심리 스릴러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드니 빌뇌브는 토론토의 하늘을 뿌연 황색으로 채우며 생기를 잃어버린 이미지로 바꾸었다. 도시의 전체를 멀리서 조망하는 숏이 종종 등장하지만 그 도시 안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진 않는다. 분명 어딘가 단절되고 답답한 배경이다. 영화에서 자주 사용된 현악기의 고조는 긴장감을 꾸준히 유지시키는데 적잖은 몫을 한다. 










아담과 앤서니는 서로의 놀라운 닮음에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끝까지 답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러고보면 영화의 제목은 원작 소설의 제목인 "Double"과 다른 "Enemy"이다. 게다가 영화에선 그들 중 한명은 어떻게해서 존재할 수 있게된 것인지, 같은 사람이 둘이 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명쾌한 답을 커녕 그 방향으로 질문을 던지지 않는 모양새다. 흥미로운 설정이지만 영화가 카메라를 돌리는 쪽은 그들의 과거가 아니라 그들이 만난 이후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서로가 놀랍도록 같은 존재임을 확인하지만 우리는 블루베리 취향으로 대변되는, 아담과 앤서니의 분명한 후천적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 그들의 그런 후천적 차이는 사실 서로의 다른 아내로도 드러난다. 대학 교수인 아담의 아내 메리(멜라니 로랑)과의 부부생활과 영화 배우인 앤서니와 그의 만삭의 아내 헬렌(사라 가돈)와의 관계는 한 남자가 꾸리는 두 경우의 부부관계라고 하기엔 제법 다르다. 특히 아담과 메리는 언뜻 행복해보이지만 아담의 권태로운 표정과 어머니(이사벨라 로셀리니)의 대사들로 유추해보건데, 아담은 메리에게 어떤 부담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에비해 앤서니와 헬렌 부부의 분위기는 또 다르다. 임신한 아내를 두고도 앤서니가 외도했던 전적이 있다는 점, 그리고 비밀스러운 성적인 밀회. 이 부부의 문제는 보다 더 표면적이다. 어느쪽이든, 남자는 각자의 아내들에게 심리적으로 눌려있다. 그리고 영화에선 그런 억압이 소름끼치는 거미의 형상으로 매번 크기와 장소를 바꾸어 등장한다.








아담을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본다면 이것은 신분 상승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가 한때 배우라는 꿈을 갖고있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담과 앤서니의 삶의 물질적 질은 달라보인다.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아담은 앤서니가 자신의 아내를 유혹하도록 방조한 채 그 틈을 타 앤서니의 가장 비어있는 공간인 그의 침실과 헬렌의 곁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어설퍼보이지만 최후에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바꾼다. 헬렌은 아담을 받아들이지만 메리는 앤서니를 거부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앤서니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억압으로부터의 본능의 일탈과 해방의 자기 징벌이 될 수 있다. 임신한 아내를 둔 스스로의 그릇된 성적 욕망에 대한 자살행위. 앤서니는 욕망을 아담이라는 또 다른 자신의 아내인 메리를 욕망의 분출구로 활용하려하고 그런 자기 스스로 대신 조금 더 소극적이고 순종적인 남편, 아담을 대신 스스로의 위치에 데려다 놓는다. 그것은 헬렌에게 분명 해피엔딩이었을진 몰라도 앤서니 혹은 아담에게는 일시적인 일탈 후 찾아온 한숨과 같은 재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선천적으로 같지만 후천적으로 다른 두 자아의 가장 큰 차이으로서 성적 욕망을 활용한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그와 동시에, 감독이 스스로 가장 사적인 영화라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다니 그 또한 재미있다. 드뇌 빌뇌브 감독은 불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혹은 욕망하는 아내가 아닌 여성이라도 있던걸까? 두번의 인생의 하나는 희극, 하나는 비극이라는 아담의 강의 내용 중 대사는 그대로 이 영화의 암시이자 크나큰 복선이 된다.

영화에 몇차례 등장하지만 아주 인상적인 거미가 상징하는 것은 다소 모호하다. 이 점은 영화를 본 사람들에 따라 아주 주관적일 수 있겠지만, 나는 거미가 상징하는 바를 아담의 두려움이자 심리적 공포이며 그것은 그를 둘러싼 세 여자, 즉 두 명의 아내와 한 명의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어본다. 거미의 얼굴을 한 여성은 현재 아내이자 자신이 잡아먹히고 있는 여성을, 도시의 위를 부유하는 거미는 어머니를, 그리고 마침내 내밀한 공간에까지 침투한 거미는 새 아내를, 다시 시작할 새로운 공포와 위압를 선사한다. <에너미>의 마지막 씬은 그 어떤 영화의 마지막 장면보다도 충격적이다. 어찌되었건, 이제 혼돈은 한차례 정리되었다. 다시금 회귀한 질서는, 그러나 이제 새로운 혼돈을 잉태한다. 결코 쉽지 않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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