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 Flims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독특한 스파이 영화다. 그런데 더 독특한 것은 (원작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제하고는) 실제로 영화를 보기 전까진 그런 예상을 갖고있기 어렵다는 것이다. 평범한 첩보물이라고 선뜻 생각했다가는 시종일관 서두르지않고 유지되는 긴장감에 신선하게 놀랄 수도 있다. (혹시 그것을 지겨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면 그런 분들에겐 이 영화는 그냥 지겨운 영화중 하나로 혹평의 대상으로 남을 뿐이다.) 이 영화는 영국 정보부를 배경으로 하고, 캐릭터들은 첩보원들이 대부분이지만 여기엔 총격전, 자동차 추격씬, 폭발음이나 육체적인 액션이 없다. 사실 이 스파이 영화의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어떤 영화일지 가늠할 수 있다. 존 허트, 게리 올드먼,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베네딕트 컴버배치, 토비 존스. 총을 들고 현장에서 싸우기보단 안경을 쓰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이 더 어울릴 이미지의 (혹은 그런 나이대의) 배우들이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가장 (젊고) 남성적인 캐릭터로는 톰 하디 정도. 다니엘 크레이그도, 맷 데이먼도, 톰 크루즈도 이 영화 속에 데려다 놓기엔 마땅히 이들 가운데에 낄 자리가 없어보인다.



의외의 놀라움은 이 영화가 스웨덴 출신의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연출이라는 점에서 계속된다. <렛 미 인>은 그의 데뷔작은 아니지만 이 젊은 감독의 짧은 필모그래피 안에서 사실상 유일한 대표작이다. 2008년 <렛 미 인>이후 내놓은 차기작이 바로 이런 스파이물이라니. 어지간해서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게다가 이 영화의 제작사는 영국산 로맨틱 코미디로 유명한 워킹타이틀사이다. 이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사실 탄탄한 원작이 있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로 유명한 존 르 카레의 시리즈 소설이 그것인데, 작가가 실제로 영국정보부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꽤 사실적으로 묘사한 첩보 소설 시리즈라고 한다. (그의 또 다른 소설이 영화화된 <모스트 원티드 맨>이 올해 초 선댄스 영화제들을 거쳐 이번주를 전후로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서 개봉을 시작한다.) 영화에서 영국정보부는 '서커스'라는 속칭으로 불린다. 국내에선 생소할지 몰라도 현지에서는 꽤 알려진 이야기인만큼, 감독은 굳이 이야기를 숨기려하지 않고 오히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과감한 스토리텔링으로 영화가 소설을 영화화했을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다.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연출과 편집은 이런 정적인 첩보물에서 오히려 빛을 발한다.



영화는 70년대, 냉전시대의 영국 첩보부를 배경으로 한다. 은밀한 작전과 암살이 자행되던, 정보부라는 이름과 총을 든 비밀요원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남용할 수 있었던 시대다. 하지만 꽤 긴 시간을 할애한 영화의 오프닝에서, 서커스의 어떤 비밀작전은 무참히 실패하고 파견된 요원이 총에 맞는다. 서커스에 침투해있는 스파이를 색출해내려는 시도는 오히려 역으로 당하고만다. 작전을 지시했던 서커스의 수장 컨트롤(존 허트)은 책임을 지고 은퇴한다. 그런데 은퇴하며 스마일리(게리 올드먼)를 함께 데리고 나간다. 두 노장이 천천히 영국정보부 건물을 경비실 밖까지 걸어나가는 동안 영화는 어떠한 대사도 없이, 오직 그 둘을 바라보는 정보부 요원과 직원들의 복잡한 시선으로 오프닝 시퀀스를 대신한다. (이 오프닝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마침내 건물 밖까지 나간 그 둘은 악수 한번으로 이별을 대신한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은 이 두 노장이 정보부를 나가는 이 순간부터다.



영화는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첩자를, 소위 '두더지'를 찾아내고 체포하기 위한 비밀스러운 움직임에 메인 플롯을 두고 있다. 이미 은퇴한 스마일리는 다시한번 컨트롤의 비밀 지령을 받는다. 수장이 바뀌고도 서커스 내에 더욱 안전하게 숨어있는 스파이를 찾아내기엔 이미 한번 은퇴한 스마일리가 적격이라는 것. 자신이 몸담았던 곳 내부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스스로가 이번엔 외부에서부터 접근해 들어가는 것이다. 스마일리는 내부에서 자신의 손발이 되어줄 피터(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동료로 포섭하고 후보자들을 추려나간다. 컨트롤 이후에 서커스의 리더가 된 퍼시(토비 존스)나 그의 측근들 중, 누구에게도 이런 움직임을 들키지 않고 스파이만을 골라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총알과 폭탄이 남발하는 007시리즈나 본 시리즈와는 다른 형태의 긴장감이, 진짜 스파이들의 세계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있다.



남자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들의 관계가 얽히고섥혀있어서 인물관계도가 꽤 복잡하게 그려지는 영화다. 인물간의 관계선에는 이성애와 동성애가 그 복잡함을 더한다. 컨트롤과 퍼시의 관계, 컨트롤과 스마일리의 관계, 피터와 그의 동성애인, 빌(콜린 퍼스)이 불륜을 저지르는 스마일리의 아내와의 관계. 리키(톰 하디)와 그가 사랑하는 여자와의 관계. 그리고 빌과 짐(마크 스트롱)의 동성애적 관계까지. 그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가질 수 있는 감정적 옵션들은 영화가 충분히 액션없이도 긴장감을 조이고 풀 수 있게끔 만드는 장치가 된다. 스펙터클이 딱히 없어도 훌륭한 심리적 스릴러를 만들어낸 이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좋은 스토리와 시나리오, 그리고 70년대 냉전시대와 잘 어울릴 쟂빛을 많이 배합한 화면들과 또 그런 색에 잘 어울리는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유기적으로 잘 맞물려진 저평가된 수작이다. 특히 마지막 짐의 회상부터 시작하여 모두가 웃고 어울리던 파티장면을 통과한 뒤 서커스로 복귀한 스마일리의 미소로 마무리되는 엔딩 시퀀스에 삽입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La Mer" 라이브 버전 삽입곡의 경쾌한 고조는, 빌과의 시선교환을 한 짐의 심리 상태와 오히려 역설적인 효과를 내면서 영화의 여운을 오래 남기는 엔딩으로서 이 영화의 진짜 백미다.








덧글

  • 2014/08/03 14: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8/09 15:1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봉병장군 2014/08/03 15:48 # 답글

    미장센만으로도 충분히 흥분하면서 봤었던 영화였죠....솔직히 말해서 이 영화는 여러번 봐야 더 깊게 느껴지더군요
  • 레비 2014/08/09 15:13 #

    평범한 스파이물을 기대하고 보면 전혀 다른 매력에 실망하거나 놀랄 그런 영화였어요 :)
  • 레몬트리 2014/08/03 21:07 # 답글

    처음엔 베니를 보러 갔다가 정작 베니는 별다른 역할이 없어서 실망하고^_ㅠ, 영화 자체는 뭔가 흥미롭긴 한데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리뷰를 읽고 확인하려고 다시 보러 갔던 기억이 있는 영화에요.ㅎㅎ 이렇게 조용한 스파이 영화는 처음 봤는데 그런 점이 헐리웃과 달라서 독창적이면서도 좋았어요. 역시 영국 영화다운 매력이 있죠ㅎㅎ
  • 레비 2014/08/09 15:14 #

    그래도 꽤 비중있는 역할 아니었나요? ㅎㅎ 베니는 지금이 딱 본격적인 주연배우로 성장하는 과정같아요. 아직은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들보단 조연으로 출연했던 빈도가 더 많으니까요 ㅎㅎ
  • 2014/08/03 22:5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8/10 23:5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umma55 2014/08/05 10:07 # 답글

    정말 멋진 영화죠. 두 번 이상은 봐야하지 말입니다.^^
  • 레비 2014/08/10 23:57 #

    계속 두고두고 생각날 그런 영화였어요 :) 이런 류의 스파이물들이 계속 나와주었으면 좋겠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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