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포매니악 vol.1 & vol.2 , Nymphomaniac vol.1 & vol.2, 2013 Flims





"날개가 있는데 좀 날면 어떤가."

라스 폰 트리에가 돌아왔다. <멜랑콜리아>이후, <안티 크라이스트>부터 이어진 이 우울3부작의 마지막 작품은 과연 어떨지, 앞선 두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누구라도 궁금해 할만했다. 칸느에서의 히틀러 옹호 발언, 잦은 기독교 세계에 대한 도발, 스스로 주창한 '도그마95'를 스스로 뒤집어 버리는 파격. 내놓는 영화마다 파장을 일으키는 덴마크의 악동 혹은 천재. 라스 폰 트리에를 좋아한다고 선뜻 말하긴 힘들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그의 신작은 매번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 그래도 그를 덮어놓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은 그저그런 영화들을 수십편씩 필모에 채워넣는 감독들에 비해, 이렇게 매번 세상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려놓을 고집, 무모, 파격 그리고 배짱을 들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며, 본 글은 님포매니악 볼륨1과 볼륨2, 두 편의 영화를 모두 포괄한 리뷰이므로 한 편만 보셨다면 다소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님포매니악>은 <도그빌>때처럼 총 여덟 챕터로 나누어 진행되는데 그중 1장부터 5장까지가 볼륨1이고, 볼륨2에 나머지 세 챕터가 담겨 있다. 국내에는 현재 두 편 모두 일주일여간의 차이를 두고 거의 동시개봉해있는 상태. 섹스버스터라는 소문답게 미성년자관람불가다. 하지만 님포매니악은 절대, 그저 '야한 영화'가 아니다. 실제 정사 논란이나 성기 노출은 사실 비슷한 수위의 다른 영화들을 떠올려보자면 오랫만일뿐이지 그리 새삼스럽진 않다. 이 영화의 잔상이 강한 이유는 섹스중독증 여자라는 설정 때문이 아니라 스페이시 마틴과 샬롯 갱스부르가 2인1역한 캐릭터, '조'라는 주인공이 갖고 있는 캐릭터성에 있다. 세상은 그녀를 성도착증, 혹은 성중독자(sex addict)라고 부르길 원했지만 그녀는 스스로 님포매니아(nymphomania)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나의 성기를 사랑하고, 나의 추잡한 욕망을 사랑한다는데 어찌 addict이라고 하는가. 그녀의 인생은 스스로의 욕망을 발견하고 실현함의 연속이자 반복으로 충실히 차있다. 마치 성적 욕망으로부터 삶의 이유를 찾고 그것만을 위해 태어난 인간처럼 말이다. 이를 mania라고 부르지 않으면 달리 뭐라 부르겠는가. 캐릭터 '조'는 상실과 부족이 섹스로 채워지길 희망한다는 점에서 언뜻 <셰임>의 주인공 브랜든과도 접점이 있는듯하지만, 브랜든보다 더 스스로를 잘 파악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보다 더 절박하고 병적이다. (실제로 두 영화에 각각 여러번 사용된 음악에 빗대자면) 브랜든이 바흐의 차분함속에 고독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면 조는 경쾌함속에 우울함을 가진 쇼스타코비치의 왈츠2번이다. (언젠가 <셰임>의 브랜든과 <님포매니악>의 조를 함께 소재삼은 글도 즐거이 쓸 수 있을것 같다)


마치 스토아학파처럼 -비록 산책 대신 방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셀리그먼(스텔란 스카스가드)과 조의 문답은 섹스에 대한 통념과 대화하는 라스 폰 트리에의 자문자답이다. 조는 챕터를 나누어 자신의 이야기로 화두를 던지고 그녀의 기억과 체험에 셀리그먼은 문화, 문학, 과학, 종교등의, 섹스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인류의 관심사들을 끌어들이고 접목시켜, 그녀의 (오직 그녀만의!) 경험담을 그녀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을 시도한다. 성중독자 여자와 무성애자 남자가 만나서, 한명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명은 자신의 기준으로 그 이야기를 해석하려 애쓰는 이 하룻밤의 대화로 영화 <님포매니악>의 전편과 후편이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셀리그먼의 시도는 어딘가 필사적이다. 그는 회한으로 자책하는 조를 두고, 그녀의 비일상적인 삶을 일상적으로 설명해보려 노력한다. 3+5와 8을 듣고 피보나치 수열을 들먹이고, 피가학적 경험때 느낀 매듭 이야기를 듣고 그 매듭의 유래를 설명하거나, 그녀가 어릴때 첫 오르가슴때 본 환상을 듣고 신성모독을 거론한다. 셀리그만의 이런 시도는 사실 듣다보면 어처구니없을때가 더 많아서, 영화를 보다보면 우리의 실소나 마음 한구석의 거부감이, 그 타겟을 조의 성적 경험담에서 점차 셀리그먼의 무리한 주석으로 은밀하게 옮겨가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급기야 마지막 챕터에 와서는, 조가 만난 소아성애자의 일화를 듣고 분개하는 셀리그먼에게 조는 오히려 소아성애욕구를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여 평생을 참고 견뎌온 사람들이 불행한 것이라고 조목조목 따진다. 처음엔 어설픈 현자인 셀리그먼의 편에 서서 조의 놀라운 경험담들을 경청하던 우리들은 어느새 조에게 설득당해 그녀를 동정하거나 셀리그먼을 비웃을 준비가 되어버린다.


나는 라스 폰 트리에의 영악함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현대 인류가 변태라고 이름 붙여 터부시하고 금기시하고 있는 모든 비정상적 성적 욕구를 이 두 편의 영화에 모두 끌어온다. 자위, 10대 성관계, 쓰리썸, 가학-피가학, 동성애, 불륜, 매춘, 공공장소에서의 음란행위, 성적 고문, 불감증. (놀랍게도 이 모든 것이 정말로 모두 거론된다) 이 중엔 정상적인 사랑과 임신과 출산도 있지만 동시에 욕구에 침식당해버린 비정상적인 모성애도 있다. 감히 그래놓고도 라스 폰 트리에는 아주 교묘하게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은근한 변호를 하려는 눈치다. 내 모든 구멍을 채워달라는 조의 욕구는 사실 우리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바랬을 뿐이라는 것. 조를 사회시스템이 '끼워 맞추려던' 셀리그먼의 오만한 시도는 완벽히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충격적인 영화의 마지막 3분. 라스 폰 트리에는 자신이 할 말을 분명히 하는 감독이다. (사실 라스 폰 트리에와 스텔란 스카스가드라는 배우의 과거 콜라보를 더듬어 기억해보면 그리 충격적이진 않다)


과거 에바 그린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신인 배우 스테이시 마틴이 '어린 시절의 조'를 연기한 것을 제외하면 이 영화 <님포매니악>에서 얼굴을 비추는 배우들 일부는 라스 폰 트리에의 전작에 등장했던 얼굴들이다. 이제는 라스 폰 트리에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될만큼 오랜 파트너인 샬롯 갱스부르가 주인공 조를 맡았다. 역시 라스 폰 트리에와 4편의 영화를 이미 함께한 스웨덴의 국민배우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셀리그먼을 연기한다. <안티 크라이스트>에서 샬롯 갱스부르와 부부를 연기한 윌렘 대포도 볼륨2에 등장한다. (<도그빌>을 찍은 니콜 키드먼이 두번 다신 라스 폰 트리에와 작업하지 않겠다고 진저리쳤던 유명한 일화가 있을만큼 악명 높은 감독이지만, 역시 그런 감독에게도 호흡이 맞는 자신의 '사단'은 있는 모양이다.) 샤이아 라보프와 제이미 벨, 우마 서먼이라는 가볍지않은 이름들도 이 영화에서 주요한 역할들을 맡고 있다.


<님포매니악 vol.1>과 <님포매니악 vol.2>로 조의 일생의 여정은 총정리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끝나지 않았는데 그녀는 이미 볼륨2를 마무리하기 전이 방향을 찾았다. 목적없이 오른 산 꼭대기에서 발견한 굽어있는 나무. 다 쓰러질듯 굽어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정상에 서 있는 그 나무를 보고 조는 이후의 삶의 새로운 목표, 새로운 방향을 잡는다. 그것은 조의 인생 vol.3이 될것 이지만 과연 '님포매니악'이라는 타이틀을 떼어낼 수 있을까. 딱히 그래야할 것 같진 않다. 조의 이후의 삶, 다시말해 가제-'님포매니악 vol.3'은 앞선 삶보다 덜 자극적일지라도 그녀의 성적 투쟁은 전보다 더 거칠고 치열해질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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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4/07/06 20: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7/06 22:2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7/07 00:1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7/12 13:0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레몬트리 2014/07/07 12:37 # 답글

    수요일에 라이브톡으로 보려고 2편 예매해놔서 글은 아직 안 읽었어요. 영화보고 와서 읽어볼게요~ㅎㅎ 2편은 예고편만 봐도 좀 힘든 영화인 거 같은데ㅠ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레비님 이제 다시 영화 리뷰 많이 쓰기로 한 건가요? 반가워요ㅎㅎ
  • 레비 2014/07/12 13:10 #

    감사합니다 레몬트리님 :)
    1편 엔딩 크레딧에 2편 예고편이 나오더라고요. 전 일주일 시간차를 두고 두편 순서대로 보았어요.
    앞으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또 종종 쓰겠습니다 :D 늘 좋게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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