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her, 2013 Flims





난 미국 아카데미가 줄 수 있는 최고상인 ‘작품상’을 매년 전적으로 믿진 않지만, ‘각본상’을 받은 영화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믿고 봐도 좋다고 생각한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감독 스파이크 존즈의 각본에, <마스터>에서 절정의 연기를 보여줬던 호아킨 피닉스가 주인공으로, 그리고 연기력에 비해 너무 알려지지 않아서 늘 안타까운 에이미 아담스가 조연으로 출연하고, 루니 마라도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가장 훌륭한 캐스팅은 스칼렛 요한슨임을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육체가 없어 상대적으로 섹시함을 억제하고 목소리만 존재하는 OS(운영체제)역할에 이 시대의 섹시 스타를 기용했으니, 스파이크 존즈의 재치가 번뜩이는 부분이다. 스칼렛 요한슨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관객들에게조차, 그녀의 어딘가 관능적인 목소리는 우리가 각자 상상하는 그녀의 육체적인 빈 부분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녀의 외모와 목소리를 잘 아는 관객들에게 이는 더욱 자연스러운 일이다. (원래 '사만다'역은 스칼렛 요한슨이 아닌 사만다 모튼이 맡았었다. 결국 사만다라는 이름만 남았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에서의 우울하고 삐뚤어지고 병든 얼굴이 너무 강렬했던 나머지 (그 영화를 본 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 <그녀>에서의 호아킨 피닉스라는 캐스팅으로부터, 이런 판이한 색감의 영화에서 그가 ‘이번엔 과연’ 어떤 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까-기대 섞인 우려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리버 피닉스의 동생으로만은 수식하기 힘들, 시간이 갈수록 굉장한 배우로 완성되어가고 있는 호아킨 피닉스는 스파이크 존즈의 이 최근작 <그녀>에서 주인공 테오도르를 연기한다. 이 영화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인공지능 OS가 주된 소재로 쓰이고 있는 한편의 사이언스-픽션이기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 ‘사랑’에 온건히 바치고 있는 멜로 드라마다. 반복하는 것 같지만 노파심에 한번 더 선을 긋고 넘어가자면, 이 영화는 사랑 영화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영화다.


<존 말코비치 되기>와 <어댑테이션>을 본 사람이라면 스파이크 존즈라는 이름에 따라오는 이미지들이 남아있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이미지가 아니라 또다른 사람이라면, 그 이름은 미셸 공드리일 수도 있고 찰리 카우프먼일 수도 있겠다. (물론 소피아 코폴라도 연상될 수 있겠지만.) 스파이크 존즈의 환상적인 이미지들은 근 미래로 상정하고 있는 영화의 배경, 영화 속 미래의 LA에서 볼 수있다. 상하이에서 찍었다는 이 배경은 마천루들과 공간감뿐만 아니라, 도시의 잿빛 하늘은 천연색 인테리어로 따듯하고 화사한 느낌의 집안 인테리어들과 크게 대비된다. 그 잿빛 거리에서 각자 자기의 OS들과 중얼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완전히 단절되고 OS를 통해서만 소통하는 소름끼치는 광경이었다. 질 나쁜 농담처럼, 미래의 인간은 점점 타인보다는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결국 사랑조차 자기에게 최적화시킨 'OS'와 나누며 타인과의 관계를 하나씩 끊어버리는 것은 아닐는지.


사실 테오도르 역시 남의 편지를 대필해주는, 누군가에겐 최적화된 하나의 ‘편지 써주는 소프트웨어’였다. 이 영화에 꾸준히 등장하는 주체와 객체에 대한 이미지는, 이렇게 사만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테오도르에게도 있고, 에이미(에이미 아담스)에게도 찾아 볼 수 있다. 테오도르의 대필된 문장들은 굉장히 아름답지만 그는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한 주체적인 문장은 쓰지 않았다. 그가 문장을 섬세하게 고르고 사용하는 것은 결국 (대사에도 등장하듯이) 자신을 위한 진심이 아닌 결국 소모된 하나씩의 문장일 뿐이다. 테오도르의 무기력한 삶은 이렇게 객체로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같은 객체로서의 사만다를 만났지만 사만다가 빠른 속도로 주체화되어가면서 테오는 더 이상 그런 사만다를 곁에 두기 힘들어했다. 테오가 원했던 것은 자신에게 최적화된 사만다였지, 스스로 생각하고 욕망하는 OS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전처 캐서린(루니 마라)처럼 변해가는 사만다를 두고 테오도르는 또 다시 이별의 아픔을 겪는 것이다.


캐서린과 만나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을 때, 그녀가 테오에게 터뜨리는 분노를 잘 들어보면 우리가 몰랐던 테오의 모습을 어렴풋 알 수 있다. 그는 주체적인 캐서린을 버거워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캐서린이 자신에게 최적화된 여자가 아니었음은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누구도 다른 한 사람에게 맞춰진 그토록 OS같이 수동적인 연인이 있을까. 그런 그가 사만다를 만났으니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영화는 사만다를 내세워 육체적 교감 없이, 정신적 교감만으로도 이상적인 사랑이 완성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제시했다. (영상을 모두 배제하고 목소리로만 절정에 오르는 씬은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은 정신적 교감이 보다 더 많은 것을 욕망하면서, 다시 말해 ‘무언가를 원하는’ 주체가 되면서 깨어진다.


사랑이라는 개념에서, 유형의 물질적 육체적 교감이 소거되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화 초반부의 사만다는 중반까지만 해도 감정에 집중한다. 그런 사만다를, 한명의 외부의 이성이 아니라 테오를 비롯한 우리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우리 내면의 성장하는 감정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본인에게 최적화된 나만의 감정으로서 말이다. 그런 사만다에게 교감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반전아닌 반전은, 이런 감정의 성숙과 성장이 특별하지 않은 보편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상징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런 특별함은 결국 나에게 최적화된 ‘나 혼자만의 꿈’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다투고 부딪힘을 포함하더라도 그 오랜 시간을 함께한 시간과 추억과 기억 속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테오는 오직 캐서린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화사한 채광과 함께) 기억하고 있는데 여기엔 소리가 제거되어있다. 반면 사만다와의 기억은 오직 소리뿐이다. 결국 성숙된 그녀(혹은 최적화된 상대를 바랬던 자신의 욕망)를 떠나보내고서야, 테오는 비로소 자신을 위한, 캐서린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이미 공공연하게 인정되듯이) 영화 <그녀>의 제목이 가리키는 'her'란, 정말로 사만다일까. 나는 영화 속 '그녀'의 지칭이 어쩌면 사만다보다, 캐서린 쪽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둘 다일 가능성도 높다. 제목의 her는 '그녀의' 테오를 향한 욕망일 수도 있고, '그녀를' 바라보는 테오의 기억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엔 사만다일 것이고 후자의 경우엔 캐서린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양쪽 어느 쪽이든 her는 결코 she가 되진 못한다. her를 she로 놓아주는 순간, 테오의 깨달음과 함께 영화는 엔딩을 맞는다. 테오의 여정을 따라왔지만 사실 우리는 한명의 객체로서의 그녀가 주체가 되는 과정을 보았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들의 결정적인 요소가 그녀(들)이 스스로 정한 것이 아니라 테오의 변화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이다.








덧글

  • 2014/06/29 20:1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6/30 02:0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6/30 11:2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7/01 10:3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달빛연못 2014/06/30 09:30 # 답글

    소리의 소멸과 육체의 소거를 대비시키는 분석,
    그리고 왜 she가 아니라 her을 택했는지에 대한 필자의 시선이 인상깊어요.
  • 레비 2014/07/01 10:37 #

    감사합니다 :) 각각 다른 영화관에서 두번 보았는데, 볼 수록 새로운 부분들이 보여서 좋았어요.
  • seungyeon 2014/06/30 10:36 # 답글

    지나가다가,

    영화 보면서 배경이 낯설지 않았는데 상하이 맞군요!
    우편물 겉봉투에 로스엔젤레스라고 쓰여 있어서 낙담!?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 레비 2014/07/01 10:39 #

    예리하시군요. ㅎㅎ 전 상하이를 가본적은 없지만.. 상하이 푸동지구라고하네요.
    신도시처럼 최근에 급성장하는 도시라 미래적인(?) 분위기가 나서 미래의 LA로 캐스팅되었다지요. ㅎ
  • 2014/07/02 20: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7/02 21:5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7/02 23: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7/03 00:1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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