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태치먼트, Detachment, 2011 Flims








학교와 교실이라는 공간은, 실제적으로도 그렇지만 영화적으로도 아주 특수한 배경이 되곤했다.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미성숙한 드라마를 품고있을 '10대'들과 보통 교사로 대표되는 성숙하고 어느정도 완성된 '어른'이 일정한 룰과 틀 안에서 접촉하고 부딪히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필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딱히 '교육 영화'라기보단 '학교 영화'로 지칭되면 더 쉽게 와 닿을, 이런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진부하다면 진부할 플롯들을 갖고 있었다. 말을 듣지 않는 문제아들과 혹은 내면적으로 갈등이 있는 미성숙한 아이들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감동시키고 교화시키고 종국에는 한 단계 성장시켜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멘토이자 스승이자 어른이 선생의 자리에 서 있곤 했다.


1998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이후 22년이 지난 2011년. 우리에게 도착한 새로운 선생님은 로빈 윌리엄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처연하고 세상사를 달관한 표정을 가진 애드리언 브로디는 토니 케이 감독의 <디태치먼트>에서 교단을 포함한 자신을 둘러싼 것들로부터 ‘디태치먼트’된 듯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피터 워어 감독이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이상적인 교육자상을 그리고 있던 같은 해, 토니 케이는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한 <아메리칸 히스토리 X>의 감독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젠 그런 냉철하고 자조적인 시선으로 카메라를 학교 안으로 돌렸으니, 이것은 어쩌면 <엘리펀트>나 <볼링 포 콜럼바인> 같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디태치먼트>는, 그간 학교를 배경으로 스승과 제자들의 관계에 많은 부분 할애하던 영화들과는 많이 다르다. 이 차이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선, <디태치먼트>의 애드리언 브로디는 절대 <굿 윌 헌팅>의 로빈 윌리엄스 같은 멘토가 될 수도, 그럴 생각도 없다는 데에 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감독은 인터뷰에 대한 답을 들어보듯이 “교육자가 된 사람들”의 동기나 이유와 그들의 배경을 아무런 코멘트 없이 그저 경청한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는 어딘가 조금 이상하다. 교육자에 대한 책임의식이나 자부심이나 혹은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은 들어보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그들에게 그런 것들을 기대하고 있었던가? 우리는 종종 선생님들도 결국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어 버리는건 아닐까. 그렇다. 이것은 지금껏 교육공간이 배경이 되었던 영화들이 모두 ‘학생’을 바라보고 있던 것과는 달리 선생님들, 아니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과 마주하게끔 떠밀린 평범한 우리 어른들이자 인간들의 초상이다. 그래서 기간제 교사인 주인공 헨리(애드리언 브로디)의 표정은 다양하다.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마주할 때와, 자신의 집에서 에리카(사미 게일)를 마주할 때, 그리고 병원에서 자신의 할아버지를 마주할 때 표정은 결국 헨리라는 선생님이 아니라 헨리라는 한 인간의 가지고 있을 얼굴들이다. 학교에서 문제아들이 자신을 (놀랍게도) 따르게 만들지만 그는 대단한 교육 철학이나 직업신념을 드러내진 않고 다만 그가 말하는 이야기들은, 교사로서가 아닌, 그저 한 인간으로서 살아오고 축적한 철학의 읊조림일 뿐이다. 그것은 절대적 가치도 옮음도 아니라 그저 헨리라는 사람의 기준일 뿐이다. 학교에서는 문제아들을 다루지만 집에서는 거리의 창녀를 데리고 와 먹여주고 재워준다.


그런데 이 교실에 메레디스라는 한 여학생이 있다. 그녀는 유달리 더 헨리에게 감복된 모양이다. 그녀는 자신의 사진 활동의 일부로서 헨리에 대한 동경을 드러내고 결국 헨리에게 마음을 고백하지만 헨리라는 교사는, 아니 헨리라는 인간은 이런 교감에 익숙치 못하다. 결국 헨리는 메레디스를 떼어낸다. 디태치먼트. 헨리는 끝내 ‘캡틴, 오 마이 캡틴’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자신도 결국 완전하지 못한 불안정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메레디스를 받아들이지 못할 자신을 돌아본 그는 자신이 에리카 역시 완전히 돌볼 수 없을 것이라는걸 알아버린다. 에리카는 결국 헨리에 의해 강제로 재활센터로 보내진다.


영화 <디태치먼트>에선 헨리뿐만 아니라 같은 학교의 또 다른 선생들의 모습들도 다루고 있지만 모두 하나같이 (그들이 가르키는 학생들만큼이나)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인간들일뿐이다. 권위없는 가장이나 아침마다 철조망을 부여잡고 스스로를 달래야만 하는 중년 남자. 이런 아이들에게 지치고 지쳐 결국 감정의 분출을 찾지 못하고 폭발시키고 마는 어른. 저급한 아이들의 수준으로까지 스스로를 낮춰 들어가 맞상대하는 방법을 찾은 늙은 교사 등, 이 영화를 보다보면 방황하고 갈등하는 10대들보다 오히려 아직 그들을 다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될 수 있을지 의문인) 우리 어른들의 세대를 더 비추고 있다. 헨리가 에리카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지만 결국 헨리도 에리카로부터 치유받고 도움 받는 부분들이 생긴다. 그는 바로 그런 익숙하지 않은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 그녀를 황급히 자신으로부터 ‘분리’시켰지만, 결국 헨리는 에리카와 포옹한다. 내가 누군가를 보살펴주고 채워줄 수 있다는 생각이, 사실은 꽤나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결국 <디태치먼트>는 학교라는 공간을 빌어, 세상 완전한 누군가가 불완전한 이들을 이끌고 보살펴주는 것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우리들이 서로를 살피고 보완해주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덧글

  • seungyeon 2014/07/03 18:20 # 답글

    "피아니스트"의 그 배우로군요!
  • 레비 2014/07/03 20:45 #

    맞습니다 :) 피아니스트의 바로 그 애드리언 브로디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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