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어 베러 월드, Hævnen, 2010 Flims







스웨덴 배우가 열연하고 덴마크와 케냐에서 촬영된 이 영화의 원제는 'Hævnen'. 영어 Heaven과 비슷하게 생긴 모양에 나는 그만 원제의 뜻도 'better world'와 상통하는 '천국'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서야 뒤늦게 그 단어가 덴마크어로 '복수'를 뜻한다는 것을 알았다. 덴마크의 여류 감독 수잔 비에르의 <인 어 베러 월드>는 미국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가 같은 해 동시에 '외국어 영화상'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 인도 등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에서 수상기록을 가진 비非영어 영화다. 이 영화에선 아역 배우들을 포함하여 대부분 배우들의 연기가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안톤 역의 미카엘 페르스브란트의 연기가 정말정말 뛰어나다.


대부분의 영화들에서 메인 갈등구조라는 것은 극의 중심이자 극을 이끌어가는 우수한 동력이 된다. 그렇지만 이 갈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남발되어 사용하지않는 이유는 서사의 얼개를 오히려 약화시키고 전체적으로 영화를 표류하게 만들 수 있을 위험이 다분하기 때문이 클 것이다. 많은 등장인물들과 에피소드 식의 이야기들은 취향에 따라서 갈릴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극을 산만하게 만들 위험을 안고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 <인 어 베러 월드>는 마치 '갈등'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된 영화라는 듯이 우직하게 밀어붙인다. 이 영화에는 크게 보이는 갈등의 관계만해도 세 개에 이른다. 소년 엘리아스와 학교폭력. 크리스티안과 그의 아버지. 안톤과 반군 지도자 '빅맨'. 그렇지만 사실상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두는 서로서로와 갈등을 이루고 있다. 안톤과 그의 아내 마리안느, 크리스티안과 엘리아스, 마리안느와 크리스티안, 안톤과 자동차 정비공... 영화는 이토록 숨이 막힌다.


영화엔 이토록 갈등과 폭력과 복수가 난무한다. 그런데 감독 수잔 비에르는 같은 덴마크 출신 감독인 라스 폰 트리에와 달리, 그 진흙탕 속에서도 관용과 용서의 힘을 기어코 찾아내고야만다. 그런데 그 과정에 억지나 어색함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미덕은 바로 이 점이다. 영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시야를 넓혀 큰 것을 말하고자 한다. 덴마크 상류사회에서 일어난 크리스티안이 당한 학교 폭력은 그의 아버지가 목도한 케냐 난민촌에서의 비인도적인 폭력과는 분명 스케일이 다를것이지만, 감독은 능숙한 솜씨로 이 둘을 마치 동등하게 느껴지게끔 병치시킨다. 크리스티안이 당한 폭력은 그의 친구 엘리아스로 인해 표면적으로 해소되는데, 이 부분에서 엘리아스는 용서가 아닌 또 다른 폭력을 사용한다. 즉, 폭력에 폭력으로 되갚는 것이 일시적으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데 엘리아스의 폭력의 근원으로서 제시되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에 대한 깊은 불신이다. 엘리아스는 그런 개인의 분노를 크리스티앙의 복수로 둔갑시켰고, 나아가 크리스티앙의 아버지인 안톤이 당한 자동차 정비공에게 받은 폭력에 대한 복수로도 확장시키려는 욕구를 가진다. 그렇게 폭력은 복수로, 복수는 더 큰 폭력으로 확장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단연 엘리아스가 아닌 안톤이다. 영화가 갖고 있는 두 세계, 덴마크와 케냐라는 공간의 연결고리이자 이 두 이야기에 모두 걸쳐져있는 그는, 크리스티앙과 엘리아스에게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는 것은 절대 부당하다고 가르키고 몸소 보여주기까지 한다. 아이들 앞에서 폭력을 당하고 또 그것을 돌려주지 않고 그대로 재수용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기까지 한다. 오른빰을 맞으니 왼뺨마저 대어주는 것이다. 아들 크리스티앙을 중심에 두고, 친구 엘리아스와 아버지 안톤은 복수냐 용서냐의 사이에서 팽팽하게 대립한다. 이 시점에서 안톤이 보여주는 관용의 자세는 언뜻 비상식의 영역에 걸쳐있는 것처럼 놀랍다. 안톤은 분노할줄 모르는 사람일까. 아니면 그저 폭력의 기준이 자동차 정비공이나 엘리아스와같은 일반적인 범인들과 다른 것일까.


그런데 케냐에서 그 폭력의 형태는 바뀐다. 감독은 폭력을 확장시켜, 사람들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하는 야만적인 세계로 옮겨둔다. 의사인 안톤은 배가 갈려 죽어가는 산모들을 수술하면서도 이 모든 원흉인 반군지도자 '빅맨'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에 응답하거나 동조하지 않는다. 그는 덴마크에서처럼 이번에도 묵묵히 그 폭력을 수용하려한다. 난민촌 밖에선 빅맨이 여자들의 배를 가르지만 그는 그 여자들을 치료하고 수술할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자동차 정비공에게 맞은 뺨을 수용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일일까? 감독 수잔 비에르는 덴마크에서의 이야기와 케냐에서의 이야기를 이 영화에 담음으로서, <인 어 베러 월드>에서 말하는 폭력을 작은 것에서부터 범세계적으로 확장시키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의 진정한 클라이막스는 다른쪽 뺨도 기꺼이 내줄 수 있었던 안톤이, 참다못해 그 수용을 넘어 자신의 분노를 빅맨에게 폭발시킬 때 찾아온다. 세계의 전혀 다른 두 장소에서, 전혀 다른 성질로 촉발된 폭력과 그것을 같은 폭력으로 응징하는 피해자들의 모습은 그대로 보편적인 이 세계의 모습이 된다. 엘리아스가 학교 폭력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주먹은 관용이나 용서보다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안톤은 '빅맨'을 분노한 빈민들의 복수 속으로 내던져버린 이후 스스로에게 밀려오는 무기력함을 느낀다. 폭력을 결국 복수로 맞서게 될 수 밖에 없는가.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가 'better'하다는 것을, 이런 보편적인 모습속에서 어떤 특수함이 제시될때 영화는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폭력성이 (우발적인 사고였지만) 결과적으로 크리스티앙을 비롯한 뭇사람들의 목숨을 위험케했다는 자책과 충격은 외부로 분출되던 분노를 내면으로 되감아 스스로를 옭아맸지만, 안톤은 친아버지도 찾지못한 엘리아스를 끝내 찾아 품에 안음으로서, 폭력과 분노 앞에서 그보다 더 크게 감싸안을 어떤 수용을 보여준다. 케냐에선 자신의 수용 한계를 넘는 만행에 참지 못했던 한 인간이었던 안톤은 종국엔 한명의 분노를 용서와 구원으로 세상과 화해시킨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베러 월드'에 속해있을 작은 파장은 그렇게 영화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리얼 월드'에 비해 아주 미약해보이지만 분명히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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