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공주, Han Gong-ju, 2013 Flims




나는 분노를 소비의 대상으로 삼고 비극을 착취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영화를 보는 것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분노를 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영화 <한공주>에 대한 첫인상, 혹은 나의 앞서간 편견은 많은 부분 그런점에 기인한 것이었다. <도가니>를 시작으로 몇해전부터 유행처럼 솟아나고있는 <부러진 화살>, <들개들> 부터, <남영동 1985>를 거쳐 최근의 <소원>, <또 하나의 약속>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고발형' 영화들의 계승작이라고 생각했다.


10년도 더 이전, 2002년의 한국 영화에는 이미 또 한명의 '한공주'가 있었다. 바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의 문소리였다. 그녀가 연기했던 <오아시스>의 한공주역은, 그 해 받을 수 있었던 거의 모든 연기상을 문소리에게 안겨주었다. <오아시스>에서의 한공주는 성폭행 당한 뇌성마비장애인이었다. 그리고 다시 2014년, 영화 <한공주>의 타이틀롤 한공주는 10대 집단 성폭행의 희생자로 나타났다.


GQ의 이번 4월호 영화 칼럼에는 '영화는 영화다'라는 제목하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영화가 많아지는 이런 현상을 두고 과연 한국영화는 언론이 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글의 주된 골자는 최근의 한국 영화가 사회적 문제를 보편적인 가족의 힘으로 끌고가 만병통치약처럼 해결해버리곤하는 현상을 꼬집는데 주력했지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갈등의 주된 해결방법으로서 한국 영화가 정치적인 선택들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한국영화 속 갈등들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은 대부분 '가족'이었다는 것이다. 관객들의 분노를 이끌어내고, 가족애와 눈물로서 화해시키는 영화들. 다시한번 말하지만 나는 이런 영화들을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화에 의존한 사회 고발형 영화들은 (한국사회에서 공급이 원활한) 분노와 공분이라는 사료를 먹으며 성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 <한공주>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음" 이라는 자막도, 암시도 없다. 따라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전혀 모르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실화의존병에 걸린 유사한 몇몇 영화들이 밟았던 실수를 비껴간다. 그만큼 전개는 한 편의 극으로서 짜임새 있고, 복선은 낭비되지 않으며, 캐릭터들은 명확하다. 배우 천우희는 내막을 안고 있지만 영화 중반이 지날때까지 그 사연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한공주'역을 소화하기 위해 분노와 체념 사이를 긴장감있게 오간다. 플래시백을 자주 구사하는 이 영화는 사건 그 자체보다, 주인공 한공주와 그녀를 둘러싼 주변인들, 즉 사람에게 더 초점을 맞춘다. 피해자는 어떻게 피해자가 되고 어떻게 피해자로서 살아가는지. 영화의 대부분이, 사건 그 이후를 다루기 때문에 정작 영화에 가해자의 그림자는 크지 않다. 이 영화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와 피해자의 주변인들을 위한 자리다. 나는 이런 고발형 영화가 단순히 공분만 이끌어내려는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편의 극으로서도 충분히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실화에 기인함을 영화 스스로 알아달라고 내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게 이 영화가 뛰어나다고 느끼는 이유는 다 함께 분노하자고 독려하지 않고도 관객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기묘한 신필에 있었다. 영화의 절반이 넘도록, 영화는 진짜 이야기를 꺼내놓는데에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공주는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친구들에게 강박적일만큼 민감하게 반응하고 마음을 닫아간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그 누구도 제대로 한공주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은 끝까지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를 전학시켜주고 법적 싸움을 대리해주었던 선생님, 그녀에게 함께 살자고 했던 선생님의 어머니, 먼저 다가와주었던 친구 이은희(정인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수영을 홀로 배웠다. 수영장 끝에 닿아봐야 막다른 벽이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수영을 배운 것은 누구의 팔다리가 아닌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싶어질까봐서였다는 걸 알게되는 순간, 이 영화의 진짜 클라이막스가 도착한다. 이전처럼 함께 분노하려했던 관객들은 그때 제대로 붙잡고 있었다고 믿었던 끈이 놓아지는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토록 침묵했고 결국 혼자 헤쳐나가보기를 결정한 그녀를 위로할, 아니 함께 분노해줄 자격이 있기는 한 것일까. 잠재적인 공주의 편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정작 그녀의 속마음을 깨닿는 순간은 우리에겐 늘 너무 늦게 찾아오지 않았는지.


올해가 시작된 이래 영화관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어 감히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는 평을 내가 함부로 적진 못하겠지만, 그 대신 이동진 영화평론가님의 말을 빌려오자면 <한공주>는 '올 들어 본 한국 영화들 중 현재까지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거둔 성과를 배제하고서라도, 충분히 받을만한 찬사라고 생각한다.






 

덧글

  • 체달 2014/04/28 14:22 # 답글

    아 기분 나빠지기 싫어서 피했던 영화인데 의외로 괜찮나 봅니다 챙겨봐야겠어요 ^^ 리뷰 감사해요
  • 레비 2014/04/28 21:56 #

    음.. 하지만 제 옆자리에 앉았던 여자분들은 절로 욕이 나오는 것을 주체하기 힘드신 모양이더라고요 ^^;; 기분 나빠지실수도 있으니 유의하세요 ! ㅋㅋ 제가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분노를 억누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이용해먹으려고 애쓰지 않는 영화같다는 점이었어요 :)
  • 2014/04/29 21:5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5/01 22:2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 2014/06/02 10:55 # 삭제 답글

    또 하나의 가족도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분노를 이용하는 영화 아닙니다. 가족이 만병통치약도 아니죠.
    언급하신 맥락의 영화 중에 일부는 한공주와 아주 중요한 부분을 공유하는 것들이 섞여 있습니다.
    관점과 사실의 힘이죠. 대중이 미디어를 통해서만 해석하던 대상이 하나의 시각으로 '관점'을 단단하게 만들고,
    그 관점에 '사실'을 꿰어냈을 때 어마어마한 힘이 생겨납니다.
    분노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깜냥이고, 가족은 생존에 다름아닐 뿐, 해결과는 거리가 멉니다.

    쓰신 글처럼, 저도 분노보다는 자괴감과 망연자실을 크게 느꼈습니다. 공주가 강에 뛰어들기 전까지 만난 사람들, 내가 그 중에 하나였다면 강으로 뛰어드는 걸 막을 수 있었을까? 계속 머리 속에 남는 질문이었네요. 영화가 끝나고도 현실과 구분점이 전혀 없어서 정말 당황스러웠기도 했고요.

    힘든 영화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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