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유령, Goya's Ghost, 2006 Flims






애드 해리스의 <폴락>처럼 화가와 영화의 만남은 그리 생소한 일이 아니다. 프리다, 고흐, 로트렉, 바스키아, 르누아르, 에드워드 호퍼... 잠깐 떠올려보아도 스크린에 등장했던 화가들의 이름이 이렇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예술의 형제들 중에서 가장 막내에 속할법한 영화는, 자연스럽게도 그 외 다른 예술 장르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인간의 삶을 그리려는 영화가 그 중 예술가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도 낯선일도 아닌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 <고야의 유령>은 특정 화가의 대표작을 주된 소재로 삼는 전기적 영화, 이를테면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도 사뭇 다르다. 콜린 퍼스가 얀 베르메르역을 맡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화가의 대표작중 하나인 '진주 귀걸이 소녀'로부터 상상을 더한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고야의 유령>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특정 작품이 아닌, 고야라는 화가의 작품 세계가 가진 전반적인 주제 의식의 변화와 확립을 영화에 전반적으로 분산시켜 두었다. 그래서 독특하게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화가 고야도 아니고, 고야의 몇몇 대표작품도 아닌, 고야가 보고 듣고 느끼어 결국 그의 작품 세계를 형성토록한 주변 세계가 된다. 그야말로 고야의 영혼, 고야의 '고스트'가 이 영화 전반에 형체없이 아른거린다. 영화 <고야의 유령>이 이미 잘 알려진 유명 인물의 일대기만으로 머물지 않는 이유이자, 이 영화가 갖는 가치다.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실제 삶에 있어서 나폴레옹의 물결은 그의 삶을 양분하는 크나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스페인을 점령하는 사건은 영화를 전후반으로 나눌 정도로 큰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국가가 인정한 남부러울 것없던 궁정 화가였던 그는 프랑스 혁명의 바람을 경험하고 이후 역사의 증인으로 서기를 원한다. 고야는 프랑스군의 스페인 점령 이후 귀가 들리지않은 채 시대의 새로운 물결을 목도한다. 프랑스 혁명의 숭고하다는 그 가치는 '피被점령국' 스페인에겐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고야의 대표작인 '1808년 5월 3일'은 프랑스군이 점령군으로서 스페인에 당도했을때, 그가 역사의 증인으로서 극의 뒷편으로 살짝 물러나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제시된다.






프랑스가 스페인을 점령한 뒤, 영화는 잠시 프라도 미술관에 들러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과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까메오로 출연시키고 고야의 '카를로스 4세의 가족'까지 훑는다. 나폴레옹의 친척이자 프랑스 점령군 사령관이 프랑스 본토로 보낼 작품들을 로렌조 신부(하비에르 바르뎀), 아니 이제는 프랑스군의 핵심이 된 그와 함께 둘러보던 중, '쾌락의 정원'에는 혹평을, '시녀들'에게는 찬사를 보낸다. 그 가운데 등장하는 고야의 '카를로스 4세의 가족' 앞에서, 영화는 고야가 고의적으로 왕가의 얼굴들을 추하거나 우스꽝스럽게 그려놓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카를로스 4세나 그의 왕비의 얼굴을 일부러 사실과 다르게 그려놓았다는 것이다. 이토록 영화는 실제 고야의 삶도 세세하게 따르길 바란 눈치다. 고야의 대표작중 하나인 '옷을 입은 마하'와 '옷을 벗은 마하'에 대한 암시는 찾기 어렵지만, '전쟁의 참화'시리즈의 배경이나, '맘루크 기병들의 돌격', '종교 재판소' 등 몇몇 그의 작품들이 직접적인 제시대신 영화속 유사한 장면들로서 은유되니 고야의 작품들을 미리 훑어보고 영화를 본다면 이 영화속 그의 그림들이 세세하게 스며들어 있음에 놀랄수 있다. 특히 영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등장하는 그의 판화 연작들은 이 영화속 그의 심리상태를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정작 고야의 목소리는 그의 작품들보다도 크게 들리지않는다. 그는 흐름에 큰 파장을 미치지 못하는 무기력한 역사의 관찰자로서 끝까지 남는다. 그 대신, 그 관찰의 결과물로서 우리는 이곳 현대에 그의 그림을 대신 만날 수 있다. 스웨덴이 자랑하는 노련한 배우인 스텔렌 스카스가드는 바로 그런 고야역으로 이 영화에 등장하지만 그가 가진 연기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하비에르 바르뎀과 나탈리 포트먼의 연기력은 명불허전, 스텔렌 스카스가드의 아쉬움을 덮어내고도 남음에 있다. 부유한 상인 집안의 아름다운 딸이었던 아이네스(나탈리 포트만)와 종교가 지배하는 당시 시대의 신부였던 로렌조, 두 인간의 급격한 변화와 아이러니하고 추락해가는 전개가 영화의 주된 이야기를 이루기에 고야는 사실 제 3자로서 옆에 비켜서있는 느낌이 든다. 영화의 제목처럼 고야는 유령으로서 그 두 사람의 변화를 목도하고, 나아가 그 시대의 변화를 체험한다. 1960년대부터 영화를 만들어온 체코의 밀로스 포먼 감독.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아마데우스>를 연출하여 이미 일찌감치 거장의 자리에 오른 감독의 영화는 이토록 섬세하면서도 묵직하다. 영화 <고야의 유령>이 주는 덕목은 영화가 취하고자하는 초점을 인물에 맞추기보다는 당시 시대상을 그대로 한 인간에 덧씌우고 그로부터 이야기를 만들어, 이미 결과가 정해진 역사극이라는 틀 안에서도 우리를 함께 그 관찰자의 자리로 초대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안다고 믿었던 한 화가를 그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다시 만날 수 있다.













덧글

  • 2014/04/03 21:3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4/07 03:32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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