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르와 왈츠를, Waltz with Bashir, 2008 Flims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것만 같은 이 이야기를 옮기는데에, 실사 영화가 아닌 오히려 애니메이션이 선택된 것은 마치 그 자체가 한문장의 잔인한 농담같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관보다 현실에서, 보다 더 영화같은 일이 벌어지곤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칸느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되어 화제를 일으켰던 <바시르와 왈츠를>은 레바논 내전과 그에 포함된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을 소재로 삼은 아리 폴만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다. 그런데 아리 폴만 감독의 국적은 레바논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그렇다. 그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로서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자신이 참전하고 현장에 있었던 그때의 악몽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접근해나간다.






1982년 9월 16일부터 18일 아침까지. 서베이루트에 있는 사브라와 샤틸라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불과 며칠 밤 사이에 최소 3천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해 목숨을 잃었다. 불씨는 레바논 내전에 개입한 이스라엘과 자신들이 내세운 대통령 지명자 바시르 제마엘이 취임 9일전 폭탄테러로 사망한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이어 레바논내 파시스트 세력인 팔랑게당 기독교도 민병대가 복수를 이유로 이스라엘 군의 방조하에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녀노소 구분도 없이 마치 동물이 다른 동물을 사냥하고 이유없이 죽이듯, 그 끔찍한 학살은 이틀간 계속되었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어떠한 군대도, 무기도, 달아날 기회조차 받지 못한채 일방적으로 살육당했다.







어떤 영화를 놓고 그 영화의 장르를 정의하는 것은 실로 무의미하게 떠돌게 될 단어들의 조합일 뿐일 수 있다. 하지만 <바시르와 왈츠를>를 묘사하는데만큼은 꼭 이에 언급하고 싶다.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두 익숙한 두 단어가 조합된 어딘가 모순적인 장르명은 이 영화 제목에 포함된 바시르라는 이름만큼이나 낯설다. 애당초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사실에 근거를 둔, 그것도 영화의 영역과 친숙하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 연출이 아닌 실제 장면들로 채워넣기에도 바쁠 다큐멘터리를, 아리 폴만 감독은 현실에 오히려 한겹을 더 덧칠한 애니메이션으로 묘사하는 모험적이고도 기발한 수를 두었다. 이런 시도는 이 영화에서 놀라운 효과를 거두고 있다. 환상적인 부분의 묘사들 - 특히 휴가 나온 군인의 자조적인 시선이나 거대한 여성의 누드에 실려 바다를 건너는 병사의 꿈 등의 묘사들은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이고 허구인지 가르려는 시도를 무력하게 한다. 우리는 실제에 최대한 근접해보려는 수많은 전쟁 영화들을 봐왔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가장 전쟁답지않게 묘사한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도 전쟁의 실체적인 풍경이 언뜻언뜻 보이는 환영을 겪는다. 마치 동화의 삽화같은 단순하고 절제된 선과 면들의 조합은, 전쟁의 현장을 찍은 종군사진들보다 더 많은 상상을 자극한다. 그 여분의 상상력을 우리는, 이 애니메이션이 우리에게 양보한 부분을 위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병사들의 혼란과 그들이 스스로 행하는 행동들에 갖는 자문이나 회의, 그리고 기계적인 복종의 영역으로 고개를 돌려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중반, 진짜 '바사르와 추는 왈츠'부분은 이 영화가 환상과 사실의 경계에 서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꿈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묘사하는데 급급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 모호해보일 정도로 몽환적이다. 영화는 보폭을 짧게하고 느릿하게 나아가지만 사실 주인공이 기존에 기억하고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오히려, 보지 않고 잊어버린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에 그 기억의 빈 고리를 매꾸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이 영화에서 진정한 색을 입는, 진짜 실제 영상으로 표현되는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전율 그 자체의 충격적인 엔딩이 될 수 있다. 아무런 음악조차 곁들이지 않은 마지막 몇분의 생생한 증언은, 가해자가 나아가고 인정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밀어붙임이자 자기반성일 것이다. 직접 확인하시길.








그러나 이 영화가 논란의 도마에 오른 것은, 아직도 이 세상에는 피해자라고 믿는 가해자뿐만 아니라 진정한 피해자도 같은 하늘아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레바논은 물론 아우슈비츠까지 비유의 영역을 확대해가며, 이스라엘이 가진 가해자가 아닌 방관자적 입장을 은유하는 아리 폴만 감독의 미온적 태도는 질타의 대상이 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뛰어난 연출력으로 이 영화를 완성한 아리 폴만 감독은 자신의 짐을 짊어지고 걸어갈 수 있는 끝에 다다르자 애니메이션을 끝냄과 동시에, 영화내내 차분하던 자신의 목소리를 현실로 터트린다. 아베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란 손쉬운 일이 참으로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특히 시간이 묻어버린 역사의 가해자들은 이를 다시 되돌아보는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가해자의 증언은 피해자의 증언과 또 다른 무게를 가진다. 그래서 여기 이 애니메이션, <바사르와 왈츠를>은 단지 자기 변명 따위가 아닌 한 편의 슬픈 고백이기도 하다.










덧글

  • 2014/02/11 20:3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2/13 14:5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Miriel 2014/05/22 23:04 # 삭제 답글

    잘 읽고 갑니다. 예전에 본 영화인데 두고두고 생각나네요. 여러가지 비현실적인 묘사가 이해하기 어려웠었는데 조만간에 다시 한 번 보고 싶네요. 마지막 장면의 무음 실제 영상은 정말...충격 그 자체였죠...
  • 레비 2014/05/22 23:58 #

    덧글 감사합니다 :) 다소 꿈속을 걷는 듯한 비현실 묘사장면들이 난해한면들이 있었지요. 하지만 여러가지면에서 영화적으로도 의미있는 시도들이 많은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D
  • 달빛연못 2014/05/29 10:35 # 답글

    2년 전 쯤, 좋아하는 영화학도 친구 추천을 받고 본 영화였는데 아직까지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네요.
    참신한 기법들과 소재들이 낯설게 다가왔는데, (자막 없이 봐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구요ㅋㅋ..)
    현실과 유리된 듯 표현했지만 그래서 더 현실과 가깝게 느껴졌던 영화였어요.
  • 레비 2014/05/30 01:46 #

    이 영화를 자막없이보셨다니 힘드셨겠는걸요 ㅎㅎ 애니메이션도 그렇지만 조금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연출과 현실을 관조하는듯한 화자의 진행도 인상적이었죠. 물론 그 무엇도 마지막 침묵의 시퀀스보다 인상적일순 없었겠지만요. 아리 폴만 감독의 가장 최신작이자 작년 부천영화제에도 왔었던 <더콩그레스>도 보고싶은데 매번 기회가 없었네요 ㅠ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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