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이라는 이름의 폭력 : <더 헌트>, <다우트> Flims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2012년 영화 <더 헌트>는 더없이 잔인하다. 평화롭게 시작한 영화는 한번의 반등도 없이 내리막으로 침잠해간다.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끝내 화해와 해결의 장을 생략하고 건너뛰어버린다. 그리고 울려퍼지는 마지막 총성은 다 끝난줄 알았던 이 영화의 내리막이 끝나지 않았음을 잔인하게 선언한다. 작은 마을공동체에서 유치원교사로 일하고 있는 루카스(매즈 미켈슨). 마을 사람들, 이웃들, 친구들 그리고 유치원 아이들 그 누구에게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 남자의 일상은 평화로웠다. 그는 이혼의 아픔을 딛고 막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하는 참이었고 그의 아들 마쿠스(라세 포겔스트륌)는 전처보다 자신을 더 따르기에, 그는 앞으로 아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희망이 있었다. 이웃이자 친구인 테오(토마스 보 라센)의 어린 딸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가 유난히 친절한 이웃아저씨 루카스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기 전까지 루카스의 삶은 평온했던 것이다. 어린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명제가, 루카스를 아동성범죄자라는 의심과 누명으로 몰아세우고 그의 삶을 모두 무너뜨렸다. 건실하고 죄없는 한 남자를 한순간에 죄인으로 만드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지하실을 증언한 거짓된 어린 아이의 말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불신과 의심의 매커니즘이다. 라스 폰 트리에를 비롯한 다른 두 명의 감독들과 함께 덴마크 영화계의 '도그마95' 운동의 주창자이기도 했던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시선은, 1995년 당시의 그 선언과 이제는 많은 부분 일치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건조하고 냉철함을 유지하고 있다.


태초에 의심이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의심하는 행위가 가능함으로서 철학이 태어났고, 철학은 인간의 지적 호기심, 학문, 문명을 가능케해주었다. 생각하는 힘을 갖춘 인간이 그 힘을 이용하여 의심하고 사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언제나그러하듯 모든 의심의 끝이 진실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런 의심의 화살을 사람이 사람을 향해 겨눌 때, 그것이 진실을 보장하지 못할 가능성은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더 헌트>의 루카스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수단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편견에 휩싸여 진실을 보는 것에 무감각해진 대중이 어디까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을 선택적으로 믿는지에 대해 희생된다. 이 군중심리는, 루카스에게 평소 원한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없던 사람들까지도 쉽사리 현혹시킨다. 클라라라는 어린 소녀의 욕심어린 거짓말에, 자신들의 아이들까지도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는 환각에 씌인 그들은 루카스를 습관적이고 고질적인 성범죄자로 단정지어버린다. 법정이 그의 혐의를 벗겨주어도, 한번 믿기로한 불신은 판결을 충분히 무시할 수 있을 만큼의 더 큰 관성을 가지고, 루카스는 마녀사냥에 그대로 노출되어버린다.


의심의 말은 충분한 근거를 필요치 않는다. 특히 좋은 말보다 나쁜 말은 기다렸다는 듯이 더 빠르게 퍼져나간다. <더 헌트>의 초반부는 루카스라는 남자가 이 작은 마을에서 그러한 누명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는가를 되짚어볼 시간을 준다. 그는 어떠한 흡잡힐 삶을 살고 있지도 않을, 그야말로 무고한 남자였다. 그런데 영화의 후반부 크리스마스 미사때의 루카스의 절규 이후, 클라라의 아빠이자 루카스의 친구 테오만이 그를 믿어준다. 당사자인 클라라와 그녀의 집과의 오해의 풀림 이후, 어떠한 추가적 해명도 없이 영화는 1년을 건너뛴다. 루카스는 여전히 아들 마쿠스와 함께 그 마을에서 살고 있으며 우리는 루카스의 누명이 테오를 시작으로 마침내 풀렸을 것이라 믿게된다. 마쿠스의 성년식 이후, 아들은 아버지에게 선물받은 엽총으로 첫 사슴사냥을 나선다. 그리고 루카스를 덥치는 갑작스러운 총성. 주인을 알 수 없지만 루카스가 흐릿하게 보는 남자의 실루엣은, 마치 자신의 아들 마쿠스의 것일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물론 그 총성은 표면적으로 종결되었을 뿐 여전히 끝나지 않을 루카스의 의심으로 인한 고통을 일차적으로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이것은, 성년이 되어 이제 엽총을 갖게 된 아들이 또 한명의 헌터, 또 한명의 사냥꾼이 되어 루카스와 같은 누군가를 '사냥'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자격이 생겨버렸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제서야 영화의 제목이 '사냥'이었다는 것이 새삼 상기된다.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에 놓인 일방적인 쫓고 쫓김. 다수가 개인을 사냥하는 것은 이다지도 쉽기에, 그 잔인함에 몸서리쳐질 정도다.








<더 헌트>가 일대 다수의 마녀사냥, 군중심리를 표현하고 있다면, 존 패트릭 샌리의 영화 <다우트>는 개인과 개인의 대결구도로 전개된다. 물론 <다우트>는 그 원작과 배경 해석에 따라, 주요한 두 주인공 캐릭터가 각각 속해있는 두 계층이나 소속을 대표하는 다수대 다수의 알력으로도 볼 수 있지만, 영화는 일차적으로 한 교구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제한을 두고 있다. <더 헌트>와 달리 <다우트>는 의심하는 쪽과 의심 당하는 쪽이 모두 등장하지만 둘 중 누구의 편에 서지 않고 중립에 서서 '의심'이라는 그 본질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다시말해, <더 헌트>가 의심이 자라나고 확장되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치중했다면, <다우트>에선 이미 의심은 존재하며 그 의심에 우리를 함께 동참시킨다.


1964년 성 니콜라스 교구학교에선 두 흐름이 충돌한다. 하나는 열정적이고 개방적인 생각을 가진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가 이끌고자하는 변화의 물결이고, 다른 하나는 알로이시스 교장수녀(메릴 스트립)가 고집하고 지키고자하는 관습과 전통의 고집이다. 플린 신부는 최초의 흑인 입학생 도널드(조셉 포스터)를 각별히 신경 쓰고, 알로이시스 수녀의 강압적인 교칙등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거리낌없이 행하며 기존의 패러다임에 변혁을 추구하려한다. 이에 알로이시스 수녀는 플린 신부의 흠을 찾아내려하고 결국 그녀가 다다른 의심은 플린 신부가 흑인 학생인 도널드와 동성애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것을 좋아하고, 도널드의 사물함에 그의 옷을 넣는 모습이 목격되는 등 알로이시스 수녀는 플린을 의심할 조건을 갖춘다. 영화 <다우트>에서의 의심은 사실 알로이시스 수녀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플린을 '의심'하게끔 자기 최면을 건 것에 가깝다. 그러나 영화가 재밌어지는 것은, 의심의 근거들은 미약했지만 영화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플린 역시 완벽하게 결백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여기에는 순진하고 신실한 제임스 수녀(에이미 아담스)가 있음으로서 우리들의 눈을 대신하는데, 그녀는 플린의 부적절한 행동을 의심하기 시작한 시발점이었지만 종국에는 불신과 믿음의 사이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게된다. 오직 플린을 모함하기 위해 의심하고자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와 달리, 제임스 수녀는 자신이 시작한 의심에 스스로 회의감을 느끼고 그 의심이 잘못된 결론으로 끝나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끝까지 알로이시스 수녀의 의심이 잘못되었다고, 혹은 플린 신부가 진정 결백했다는 정답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알로이시스 수녀가 만난 도널드의 어머니, 밀러 부인(비올라 데이비스)의 뜻밖의 증언은 오히려 도널드의 동성애 가능성에 힘을 싣어주면서 플린 신부에게 무조건적인 결백을 지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플린 신부도 자신의 결백을 완벽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그가 여러번 교구를 옮겨온 일에 대해 명쾌한 설명도 주지 않은 채, 영화의 결말에 와서 끝내 그는 알로이시스 수녀의 의심에 의해 쫒겨나는 모양새를 취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눈물 흘리고 후회하는 것은 알로이시스 수녀다. 목적을 위해 오직 수단으로서의 의심을 이용한 그녀의 눈물은, 비록 그 목적을 달성했을지언정 그토록 폭력적인 방식에 취하여 오직 스스로의 의심에 기대고자했던 이의 공허함일 것이다. 우리는 진정 믿기 때문에 믿음을 갖기 이전에, 오직 믿기위해서 믿음을 빌려오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더 헌트>와 <다우트>는 공통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의심한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힘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으로는 두 영화에서 모두 배우들의 대단한 연기력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인데, 특히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이라는 타이틀로는 미처 다 수식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헌트>에서의 매즈 미켈슨의 연기는 절정이다. <더 헌트>를 보고나면 <007 카지노 로얄>에서의 악역이었던 그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정도. 이름부터 'Mads'인 그의 연기는 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마저 그 억울함에 함께 미치게만들 지경이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영화들은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의 아우라가 영화의 다른 요소들을 집어삼키는 부작용을 종종 일으키곤하는데 영화 <다우트>에서도 그런 감정을 자칫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연기 대결은 마치 마이클 만의 <히트>에서 보여주었던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대결에 견줄 수 있을 만큼의 불꽃 튀는 만남이다. 연기력에 있어서 독보적이라는 메릴 스트립의 앞에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연기는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런 둘 사이에서 에이미 아담스는 오히려 순진한 어린 수녀를 연기함으로서 균형을 맞추었다. 2008년 영화 <다우트>에 이어 다음해 <줄리 앤 줄리아>에서 에이미 아담스와 메릴 스트립은 다시 만났고, 2012년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에서 에이미 아담스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부부로 등장한다. <헬프>로 유명한 비올라 데이비스는 이 영화에 단 15분 등장하고도 인상적인 연기력을 펼쳤다. <다우트>는 그 다음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상 언급한 네 명의 배우가 모두 각자 연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을 정도였는데, 유감스럽게도 단 한명도 시상에 성공하지는 못하는 아쉬움을 동시에 남겼다.

















덧글

  • 2014/01/27 03: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1/27 20:4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1/27 15: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1/27 21:0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에이프릴 2014/01/27 19:12 # 답글

    볼때마다 느끼지만 글 진짜 너무 완전 잘쓰세요. 다우트 저도 아주 인상깊게 본 영화였어요. 배우들 연기가 너무 좋았구요. 전 신부가 부정한 행위를 했는지 안했는지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게 감독의 메세지라고 이해했어요. 믿기 위해 믿음을 빌려왔다는 표현이 와닿네요.
  • 레비 2014/01/27 21:29 #

    감사합니다 에이프릴님 :) 제법 오랫만이신것 같아요 ㅎㅎ 제 글을 좋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_^

    다우트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매력있는 영화였지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땐 플린 신부의 결백이 당연하고 수녀의 의심을 부정적으로 보기 바빴는데 두번째로 보니 사실 꼭 그런것같지도 않은게 영화가 모호한 자세를 취하고 있더라고요. :)
  • yuki 2014/05/31 18:53 # 삭제 답글

    영화 다우트를 보고 검색해서 들어왔는데 정말 명쾌한 설명을 해 놓으셨네요
    처음엔 평론가가 쓴줄 알았어요
    플린 신부가 자신의 결백을 완벽하게 주장했더라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알기쉽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너무 고차원적이라 전 아직도 알쏭달쏭하네요.ㅎㅎ
  • 레비 2014/06/01 00:55 #

    졸필에 과찬 감사합니다 ㅠ;;
    영화가 초반엔 수녀님의 오해인것처럼 몰아가다가도, 중후반부턴 플린 신부도 혹시? 죄가 있지않을지 의심케하죠.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실제 유사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그때 제가 찾아보니 신부님도 어린 소년들과의 동성애 의혹이 분명 있었던걸로 읽었어요. 그래서 영화에서도 어느 한쪽의 결백을 주장해주진 않았던것 같습니다 ㅎㅎ 오히려 그 편이 모호하긴해도 이 영화가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단 의심이라는 것 자체에 초점을 맞춰둔것 같아서 좋은 효과를 거뒀는지도 모르고요. ㅎㅎ
    그나저나 이렇게 써주신 덧글로 이 영화 포스팅으로 다시 돌아와보니 얼마전에 사망한 셰이무어 호프먼의 연기가 더 그립군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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