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따뜻한 색, 블루, Blue Is The Warmest Color, 2013 Flims







누군가가 내게, 영화를 왜 보는가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길어질지도 모를 설명을 대신해줄 몇몇 영화 제목들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 영화들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영화를 보았더랬고, 그런 영화들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계속 영화를 볼 것이라고. 나는 세상의 모든 영화에게 기본 이상의 애정을 갖고 있는 영화팬으로서, 완성도를 비롯한 수많은 잣대들을 비교적 관대하게 들이대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어떤 영화에 혹평을 하는 경우는 열에 하나 정도로 적다. 그러나 물론 나머지 열에 아홉을 모두 같은 정도로 만족스러워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열 편, 아니 그 수십편의 영화들 속에서 보석 같은 단 한 편의 영화를 발견했을 때, 난 영화를 취미로 삼아두기 잘했다며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사람이다. 올해의 첫 영화관으로 골랐던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스콜세지와 짐 자무쉬의 이름에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부족하거나 아쉬운 작품이었다. 그러나 오늘 몇시간 전에 (마침내) 보고 온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를 대신 설명해줄 수 있을 영화였다. 우리는 모두 다른 이유로 영화를 보고있을 것이다. 따라서 각자의 이유를 대신 해줄 그런 영화들은, 서로 다른 기준들을 만족시켜주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이유를 충족시켜 주었다. 영화란 결국 우리의 삶을 반추하는 것이며,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체험하지 못했던 남의 삶과 체험했던 나의 삶을 엿보고 돌아보는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 영화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영화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펼쳐보이려하고, 영화를 보는 시간동안 우리는 그것을 빌려오곤 한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그런면에서 적격의 영화였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프랑스 원제는 'La vie d'Adèle - Chapitres 1 et 2' 이다. <아델의 삶 - 챕터 1, 2장> 정도가 되겠다. 이번주 국내 정식 개봉 이전, 이미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아델의 이야기 1부와 2부>라는 제목으로 먼저 들어왔었다. 그런데 북미 개봉 제목은 보다 원작에 가까이 위치한 'Blue Is the Warmest Color'가 되었다. 국내 개봉 제목은 북미판을 따랐다.



영화의 초반 시퀀스는 친절하게도 이 영화가 세시간이라는 긴 상영시간동안 무엇을 말하려함인지 우리에게 공언한다. 문학수업에서 인용되는 <마리안의 일생>은 18세기 프랑스 작가 피에르 드 마리보의 소설이다. 연애소설의 인연의 첫 만남과 시작의 부분을 읽던 수업 도중, 가슴이 뻥 뚫린다는 표현에 대하여 선생이 질문한다. 사랑은 처음부터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기에 뻥 뚫려도 잃을 것이 없는게 아닐까, 아니면 말 그대로 잃어버린 사랑만큼의 빈 공간을 상실하는 것일까. 이후 아델은 곧 엠마를 만난다. 그리고 남은 필름은 모두 사랑이라는 주제에 헌정된다. 가까워지고, 친밀함이 깊어가고, 이내 육체적 정신적으로 교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듯한 행복. 아델에게 엠마는 블루라는 따뜻한 색이었고 이것이 그녀의 1부다. 그러나 영화가 거의 정확하게 50%에 다다랐을 때, 10분여의 격렬한 베드씬을 통과한 영화는 순식간에 2부로 넘어가버린다. 엠마의 머리색은 어느새 갈색으로 바뀌어 있다. 시간은 흘렀고, 아델도 이젠 학생이 아니라 더 어린 아이들을 가르키는 선생의 입장이 되어있다. 1부에선 엠마의 머리카락에 뿐만 아니라 파란색들이 많이 채워져있는 숏들이 종종 보였지만, 중반 이후 이내 푸른색은 대부분의 장면들에서 사라져버린다. 봄과 여름이었던 계절은 갈색이 더 잘어울리는 가을로 바뀌어 있다. 2부(라고 편의상 부를 수 있다면) 에서의 아델에게 엠마는 없다. 이후의 이야기는 아델이 엠마없이 살아가야하는 삶의 부분이다. 영화 초반, 잘생긴 학교 선배와의 연애를 시작했던 아델은 이내 자신이 텅 빈 존재같다며 슬픔에 빠졌었지만, 엠마와의 헤어짐으로 인한 후회와 고통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것은 한번 선악과를 맛 본 아델이, 자신의 남은 삶에서 엠마를 어떻게 두어야하는지 결정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엠마가 생각보다 쉽게 아델을 저버리고 새 애인을 만난다는 아쉬움이 큰 까닭에, 우리는 아델이 엠마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던 그 당시에도 엠마에겐 이미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황금종려상이 예술영화의 끝판왕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기준은 결코 될 수 없겠지만, 깐느의 선택을 구태여 불신할 필요도 없다. 입소문을 타던 시기부터 일부러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를 귀담아 듣지 않은 채 영화를 만났다. 그렇지만 두 주연 배우의 연기력에 대한 찬사까지 못들을 수는 없었고, 그것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우선 주인공 아델을 연기한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의 연기는 영화의 처음보단 후반으로 갈수록 그녀의 캐릭터에 빠져들게 만든다. 극중 이름과 배우의 이름이 같은 아델의 '입'은 영화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함께 영화를 본 분은 이 영화를 '아델 먹방'아니냐고 하기까지. 식성이 좋다는 아델의 먹는 장면 뿐만 아니라 그녀의 입이 허공에서 맴도는 장면, 그리고 레즈비언 커플의 성애씬에서도 입은 아주 주효한 매개다. 엠마를 연기한 레아 세이두는 - 그녀의 모든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 내가 기억하고 있던 이미지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파란 숏컷의 보이쉬한 엠마와 이제 막 내면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아델 사이의 소위 '케미'는 연기를 넘는 무언가가 있지않고서야 불가능해보일 지경이다. 엠마와 아델의 격렬한 섹스 장면은 두 아름다운 여배우의 나신에 욕망을 넘어 그 격정적인 정서가 전해져온다. (무삭제 심의통과가 놀라울 정도로 수위가 높다) 그러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퀴어영화라고 단정짓기란 어렵다. 영화는 레즈비언 뿐만 아니라 게이등 성소수자들의 시점도 많이 거론되지만 그들만의 어떤 주장이나 의견을 표출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동성애는 일반적 이성애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것은 그저 있는 그대로 우리들 아무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또 그점이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상대적으로 삶이 여유로운 엠마의 가정 분위기나 환경은, 세속적에 더 가까운 아델의 집에서의 대화 등으로 대조된다. 또한 미술을 비롯한 다른 교양에 조예가 깊지 않은 아델과, 그렇지않은 엠마를 비롯한 그녀의 주변 인물들에게 받는 소외감이나 열등감은 오직 사랑만으로 채워넣기 힘든, 처음부터 다른 두 사람 사이의 연애라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갭을 보여준다. 아델과 엠마가 보여주는 감정 변화의 낙차는, 빈번하게 사용된 클로즈업으로 더욱 극대화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 감정선을 함께 타게끔 만든다. 이 영화가 강력한 이유는 바로 이런 정서적인 동화가 흡입력 강하게 위치해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푸른색을 따뜻한 색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을 연상시키는 푸른색은 일반적으로 차가움, 이성, 쿨의 색이었다. 오히려 후반부 엠마의 두번째 머리카락 색이 되는 갈색이 보다 더 따뜻한 색일 것이다. 그러나 엠마와 앉아있던 벤치에서 가로눕고, 그녀의 머리카락색을 대신해 푸른 바닷물에 자신의 몸을 띄우고, 과거의 엠마처럼 푸른 청자켓을 입은 아델에게 푸른색은 그 어느색보다 따뜻한 색으로 기억될 것이다. 예상가능했지만 설마하던 마지막 씬에 다다르고서야 우리는 아델의 삶에 있어서 엠마라는 하나의 큰 묶음이었던 제1장과 제2장을 아쉽게도 덮고, 이제 그녀의 제3장을 기대해 볼 수 있게된다. 그녀는 엠마의 전시장에서 보여주었듯이 앞으로도 계속 슬픔과 비통 속에서 엠마를 그리며 살아가게될까. 아니면 그녀를 뒤따라 뛰어나온 남자처럼 이제 새로운 시작을 열 수 있게될까. 영화는 우리의 삶을 반추하지만 삶을 대신 재현하진 않는다. 당신없이는 안된다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을만큼 누군가를, 또 누군가와 사랑을 해보았던적이 있는 당신이라면 아델의 그 오지않은 제3장도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 2014.01.18  아트나인





덧글

  • 2014/01/19 14: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1/19 22:4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4/13 15: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4/13 15:3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4/13 19: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4/14 00:4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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