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 2013 Flims






쉽지 않은 다음주가 예상되어있는 주말, 일요일의 그 마지막 시간에 좋은 영화를 찾아 좋은 영화관에 가는 것은 내겐 필연적 선택이다. 일요일 저녁시간에 이수 아트나인에서 짐 자무쉬 감독의 신작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를 보았다. 나이를 가늠키도 어려운 중성적 매력의 틸다 스윈튼과, 토르로 인기몰이하고 있는 톰 히들스턴이 두 남녀 주연배우로, 그리고 안톤 옐친과 <스토커>의 미와 와시코브스카라는 젊은 배우들이 조연으로, 또한 노련한 배우 존 허트도 등장한다. 그러고보니 틸다 스윈튼과 존 허트는 <설국열차>에 이후 금방 재회했다. (그러나 사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설국열차>보다 먼저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이미 2013년 5월 칸느에 처음 공개되었다.) 몽환적인 로큰롤과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두 도시의 밤풍경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틸다 스윈튼과 톰 히들스턴이 나이차이를 잊은채 빚어내는 조화로움이 인상적인 멋진 분위기를 뿜어내는 영화다.



*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아담(톰 히들스턴)과 이브(틸다 스윈튼)라는 이름의 뱀파이어 커플의 재회기이다. 그들이 언제부터, 그리고 왜 디트로이트와 탕헤르로 떨어져 지냈는지, 그리고 왜 하필 그곳이며 가장 최근에 만났던 때는 언제인지, 아니 그 모든것을 제쳐두고 그들은 언제부터 살아왔는지 영화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저 그들이 아주 오랫동안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음을 그들의 극중 이름이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신선한 피를 먹어야한다. 옛날과 달리 아무나 사람을 죽이고 피를 얻을 수 없는 지금의 뱀파이어들은 각자 피를 주기적으로 공급받는 공급원이 있다. 이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영국의 문인이자 같은 뱀파이어로서 현대까지 살아있는 크리스토퍼 말로우(존 허트)로부터. 아담은 인근 병원의 의사 왓슨(제프리 라이트)에게 뇌물을 주고 혈액을 밀거래한다. 아담을 만나기 위해 이브는 디트로이트로 날아가 재회한다.


역사속의 유명인사나 사건들을 그들의 지난날 추억으로 주거니받거니하는 대사들은 전반적으로 이 영화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유머코드로 사용되었지만 그 속에서 인용되는 각 개인들을 향한 증언담은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서양문화사를 많이 알고 있거나 혹은 인용되는 인물 이름을 하나라도 더 들어본 관객일수록 같이 웃어주기 편할 것이다. 그중 내가 실소를 참기 힘들었던 최고의 백미는 그들의 여권 이름이었다. 아담과 이브의 가명은 각각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스티븐 디덜러스와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 뷰캐넌이었던 것. 아담의 집안 벽면 사진들 속에는 잠깐 지나갔지만 그속에서 뉴턴과 카프카의 얼굴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아담이 병원에 가 혈액을 공급받을때 쓰는 가명은 닥터 파우스트다. 왓슨은 그 '닥터 파우스트'를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로 살짝 비꼰다. 정작 본인은 '왓슨'이면서 말이다. 그 외에도 바이런,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 슈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거론된다.


단 한장면도 '낮'인 숏이 없던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지극히 짐 자무쉬 스타일의 영화다. 공들인 영화 음악들과 현학적인 대화의 주고 받음, 그리고 끈기있게 인물의 뒤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카메라들이 그것을 대변한다. 그리고 엔딩까지도 정말 그답다. 21세기인데도 아직 인간의 피를 빠느냐고 여동생 애바(미와 와시코브스카)를 다그쳤던 이브가 송곳니를 드러내고마는 영화의 마지막은 현실과 타협하여 다시 그 옛날의 '흡혈귀'로 돌아간 듯한 다소 허무한 결말이기에 나는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꼈다. 잊고 있던 영화의 제목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뒤늦게도 이때였다. 영화 제목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제목은 원제에 충분히 충실한 번역이다. Only Lovers Left Alive. 그런데 여기서 Lovers는 과연 아담과 이브, 피를 빤 뱀파이어 커플일까 아니면 피를 빨린 인간 커플일까. 엔딩 크레딧 내내 생각해본 결과, 나는 Lovers라는 단어에 다른 의미가 덧씌워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부터 천천히 되짚어보자.


아담은 은둔형 재능이다. 초반부 그를 돕는 인간인 이안(안톤 옐친)과의 대화는, 아담이 작곡한 곡이 현재에도 대단히 성공적이며 동시에 아담 본인은 절대 대중에 나서지 않고 숨어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종 열성팬들이 찾아와 그의 집의 벨을 눌러대도 그는 대응하는 일이 없으며 인간을 극구 꺼리고 혐오한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아담은 얼굴없는 가수다. 그런데 그는 과거 슈베르트에게 곡을 선물해 주었다고 할 정도이니 그의 음악적 재능은 이미 검증되었다봐도 좋겠다. 다시 말해 아담은, 음악이라는 재능을 가지고 있고 또 그 재능을 예나 지금이나 발산하고 있으나, 지금은 옛 향수에 푹 젖어 현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브가 디트로이트로 그를 만나기 위해 왔을 때, 그는 그녀와 드라이브를 하며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디트로이트 거리를 보여준다. 이제는 주차장으로 전락한 옛 유명 영화관. 옛날에는 커다란 회사였으나 지금은 텅 빈 자동차 공장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유령 도시처럼 비추어지는 디트로이트의 풍경은 지금은 퇴색되어버린 과거의 영광을 명징하게 상징하고 있다. 바로 그런 도시에, 아담은 살고 있다. 대사들을 통해, 우리는 아담이 상습적으로 자살과 단념을 반복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를 크게 지배하는 심리는 세상에 대한 회의감이다. 특히 인간에 대한 실망감이 그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는데, 그런 그에게 이브는 그런 것들을 다 신경 쓰지 말고 살라 말한다. 아담의 집의 인테리어나 가구들, 그리고 그가 애정하는 악기들은 모두 오래된 것들이다.


이렇게 과거를 놓지 못하고 있는 아담과 현재와 타협하는 이브의 모습과 과거를 놓지 않고 있는 아담의 대비는 그 둘의 영상 통화 장면에서도 극명하게 제시되어있다. 이브는 최신형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아담은 아날로그 텔레비전과 스피커로 영상 통화를 수신한다. 그런 그를 위로하고 또 바꾸기 위해 이브는 다이아몬드 별 이야기를 해준다. 수십광년 떨어져있기 때문에 닿을 수도, 그 음악을 지금 들을 수도 없지만, 세월이 응축하여 만들어놓은 그 불멸의 별이 내는 음악소리는 영생의 그들에겐 영원히 완성시키지 못할 어떤 이상향일 것이다. 아담은 지금을 살고 있지만 영원히 살아야하는 그들은 지금을 언젠가 모두 과거로 묻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제목의 '오직 사랑하는 이들'이 과연 '서로 사랑하는 이들'이라는 보장은 없다. 제목은 분명히 Only Lovers이지만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이 옆의 연인이 아니라 바로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현실'이라면 어떨까. 마지막 씬에서 사랑에 빠진 인간 커플을 죽여 살아남는다고해서 (혹은 오염된 피를 마시고 말로우의 뒤를 따라 둘 다 죽어버린다해도) 제목의 '사랑하는 이들'이 두 커플 어느 쪽의 경중을 가리고 있지는 않는것 같다. 그들이 이제부터 사랑해야하는 것은 그토록 비판하고 혐오스러워했던 지금의 현실, 좀비라고 지칭했던 요즘 인간들의 피가 아닐까. 영화 내내 그들은 지나치게 과거를 그리워하고 과거를 희망하여 현재를 폄하했다. 그런데 그들은 옛날이든 지금이든 인간의 피에 의존해야 한다. 시체를 유기하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것 외에 그들이 왜 지금은 아무나 죽이지 못하고 고급스럽게 마셔야만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불충분하다. 드라큘라가 나오는 오래된 TV쇼를 보고 즐기던 애바가 지극히 본능에 따라 이안을 죽였을 때, 이브는 그래선 안된다고 했지만 결국 그것은 얄팍한 허례허식이 아니었던가. 에바가 아담과 이브에게 쫒겨나며 던졌던 분노가 그들에게 예언처럼 되돌아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화 내내 '품격'을 지키려했던 그 뱀파이어 커플이 결국은 별반 다를바 없이 송곳니를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에선 조소의 웃음을 허락받을 수 있지 않을까.

















덧글

  • 지나가다 2014/01/13 17:40 # 삭제 답글

    찌찌뽕ㅎㅎㅎㅎ;;;;

    저도 이영화는 교양속물 돌려까는 영화로 봤어요
    주제중 한가지가 '미드나잇 인 파리'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는 "사랑하는" 대상이 자기자신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 레비 2014/01/19 04:49 #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지금보다 과거를 막연히 그리워한다는 점에서 <미드나잇 인 파리>를 떠올리시는 분들도 꽤 계시더라고요 :) 적절한 지적 같습니다. ㅎㅎ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살아남는다-라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접근이네요 :) 전 미처 거기까진 생각못했습니다 ㅠ
  • 리미 2014/01/15 19:30 # 답글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얼굴이 반가웠어요
  • 레비 2014/01/19 04:49 #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밉상 여동생으로 나오긴했지만, 꽤 어울렸어요 ㅎㅎ
  • shuu 2014/01/19 23:52 # 답글

    영화 보고 나서 저도 제목에 의문을 품었었는데요. 개인적인 생각이시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네요. 궁금증이 약간 풀린 느낌이랄까요. 아 그리고 관객 중에 유독 어떤 한 분이 군데군데서 웃음을 터뜨리셨는데(혼자만...)그 분이 위에 써진 '서양 문화사를 잘 알거나 인용되는 인물을 하나라도 더 들어본 사람' 이었나 봐요. 아 나도 웃고 싶었는데... 영화 보고 나니까 기가 다 빨린 느낌이었어요 흑ㅎㅎ
  • jeje 2014/01/21 03:33 # 삭제 답글

    래비님께서 리뷰 정말 멋있게 써주셨어요^^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 대해 적으신 해석이 틀릴수 있는게 영화 자체에 오역과 의역이 많아서 의미 자체가 틀려버렸어요 ㅜㅠ 마지막에 인간 연인을 보면서 이브가 피를 다 빨아서 죽이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뱀파이어로 바꾸어서 영원한 사랑을 하게해주자..라는 의도로 말했고 그래서 아담이 당신 참 로맨티스트야 라고 했어요.. 그렇기때문에 왜 영화 제목이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인지 이해가 되더라구요 ^^ 오역에 관한 정보는 이 블로그 링크에 올라와있어요! 오역.의역이 정말 많더군요 ㅜㅠ http://lokisarmy.blog.me/140204486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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