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어스, Another Earth, 2011 Flims








마이크 카힐의 영화 <어나더 어스>는 국내 미개봉작이다. 이 영화를 너무나 보고싶던 나는 학교 도서관 DVD룸에서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저예산 인디영화들이 해외 개봉시기보다 한두해라도 뒤늦게 국내 개봉하는 요즘 시류에 편승하여, 조만간 영화관에서 다시 볼 수 있게되길 간절히 기다린다. <어나더 어스>는 2011년 27회 선댄스영화제에서 드라마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그 해 선댄스의 대상은 드레이크 도리머스의 <라이크 크레이지>였다. 두 영화 모두 국내 개봉은 하지 못했지만, <라이크 크레이지>와 <어나더 어스>는 색감이나 카메라 워크가 많이 유사하다. 저예산으로도 이런 재기넘치는 촬영을 가능케하는 영화들이 좋다. 그래서 나는 선댄스의 선택을 매년 믿고 지지하는 팬이다. 수백가지 와인의 맛을 모두 알고있을 자신이 없다면 그저 내 입맛을 잘 아는 소믈리에 한명을 알고 지내면 된다는 말을 일전에 들은적 있는데, 완전히 같은 맥락에서 나는 내 취향을 잘 골라주는 영화제를 매년 주시하고 있다. 








미개봉작인만큼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접해보지 못했을것이라는 생각에 다른 영화들를 빌려 이 영화의 분위기를 제시해본다. 점점 다가오는 거대 행성, 하늘에 떠있는 달 보다 커다란 그것은 흡사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를 떠올리게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업 사이드 다운>과 더 맞닿아 있을 영화다. 비록 중력으로 상징되는 상반된 세계가 이 영화에서도 비주얼적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늘 위에 떠있는 또 다른 지구와 그에 대한 동경, 흥미는 유사하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전혀 인연이 없었을 중년의 남자와 젊은 여자가 외부적 요인으로 연을 맺는 점은 <세상의 끝까지 21일>과도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면적으로 이 영화를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용서의 키워드는 드니 빌뇌브의 <그을린 사랑>이 떠오르기도 한다.








처음 내게 이 영화는 브릿 말링이라는 발견이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길지않은데다가 그중에서 국내 개봉작도 한두편뿐이라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는 배우일 수도 있다. 언젠가 그녀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조지타운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골드만삭스의 제안을 받았으나 자신은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고싶다는 생각에 LA로 가 배우와 영화분야의 경력을 시작했다고 한다. 같은 조지타운 대학에서 함께 경제학을 전공했던 이 영화의 감독 마이크 카힐은 그녀의 동창이자 친구. 함께 이 영화를 구상했던 둘이기에 이 영화의 각본과 제작에도 그녀의 이름이 들어가있다. <어나더 어스> 이전부터 공동작업을 해왔던 이 둘은 올해 개봉예정인 <아이 오리진스 I origins>로 다시 만날 수 있을 예정인데, <몽상가들>의 마이클 피트와 드라마 <워킹 데드>시리즈로 유명해진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도 함께 출연한다.









평탄하던 삶, 아니 오히려 촉망받던 소녀, 로다(브릿 말링)의 삶 앞에 덩그러니 나타난 또 다른 지구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예기치 못한 불행의 시작이다. 술에 취해 운전하던 그녀는 행복한 한 가정을 파괴해놓았다. 삶은 그렇게 우연히 뒤바뀌고 그날은 그녀에게 있어서 인생의 분기점이 된다. 바로 그날 부터 지구는 또 다른 지구를 갖는다. 수감생활을 마치고 다시 삶을 시작하려는 그녀는 죄의식에 짙게 억눌려있다. MIT 입학 예정학생이었던 우수한 과거는 사라졌고 이젠 가능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무언가를 깨끗하게 닦고 씻어내는 일을 위해 학교 청소부 일을 시작한다. 당시 기사를 검색하여 자신이 벌인 사고의 생존자이자 어린 아들과 아내를 잃은채 살고있는 남자를 찾아간다. 로다에게는 존(윌리엄 마포더)에게 자신이 그 사고를 낸 운전자라고 말하는데에 많은 용기가 요구된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그 사고를 낸 당사자이자 당신의 삶에 죄를 지은 사람이라는 것을 고하지못한다. 출장 청소 서비스로 둘러댄채 그의 집을 청소해주면서 스스로를 위로해보기도하고, 또 절망속에 살고 있던 존의 삶을 조금이나마 바꿔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완전한 용서는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 듯 하다. 어느날 그녀와 학교에서 일하던, 귀가 잘 들리지않는 늙은 청소부 푸르딥은 이번엔 스스로 눈까지 멀며 더욱 깊숙한 내면으로 들어가버린다. 보다 더 듣지 않고 보다 더 보지 않으려는 그 방어적인 태도의 푸르딥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영화는 더 설명해주지 않지만 그를 문병간 로다는 그의 손바닥에 FORGIVE를 적어준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용서하라고 하지만 또한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용기이자 격려이기도 했다.








<어나더 어스>는 죄의식과 자기 구원에 대한 영화다. 따라서 이 영화에는 용서의 키워드가 있다. 지구의 어스름한 초저녁 하늘에 떠있는 또 다른 푸른 별의 모습은 영상미적으로도 아름답다. 그녀의 삶의 분기점이 되는 날 나타난 또 다른 지구는 죄를 짓지않은 자기 자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세상이다. 그곳의 그녀는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스스로를 용서하는 길에 다가감에 따라 하늘에 떠 있는 또 다른 지구는 점점 지금의 지구에 가깝게 다가온다. 영화를 보면서 그 지구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 것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위에 복제된 또 다른 지구는 그녀의 안정되고 행복하고 평온한 내면 세계일 것이다. 저 지구와 이 지구가 완벽히 모방되어있다는 것을 전세계가 확인한 이후 라디오에서는 의미심장한 멘트가 등장하는데, "우리는 사실 매일 우리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그 대상이 우리 밖에 있다면 어떨까" 하는 화두가 그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은 내가 나를 타자화하거나 객관화할때 가능해진다. 그것은 하늘 위에 떠 있는 또 다른 지구로서 이 영화에서 상징되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사실 두개 그 이상의 지구들을 갖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지구로 가는 티켓은 로다가 아니라 존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었고, 자기 용서를 완성한 로다의 하늘 위에 이제 더이상 또 다른 지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를 본 개개인들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해석들이 분분할 것 같다. 나 역시 이 영화를 두번째 보면서, 첫번째 보았을 때와 또 전혀 다르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마침내 하나가 된 로다 내면의 합치, 자기 용서의 완성으로 볼 수 있을지, 혹은 영화 중간중간 제시되는 깨어진 거울 이론에 근거하여, 완전히 평행했던 두 삶이 그날 이후 균형을 잃어 (죄를 짓지않은) 또 다른 내가 거기 서있는 것으로 받아들일수 있을지. 영화를 보실 분들과 보신 분들의 생각을 기다려본다.









덧글

  • 봄날 2014/01/09 23:15 # 답글

    선댄스 영화제 하니까 생각난 게 있어요. 영화제와는 관련없는 얘기지만, 지난학기 문화비평 수업 교재에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라는 영화가 예시로 실렸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내일을 향해 쏴라>로 개봉한 영화요.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는 영화 주인공 이름인데, 무려 그 책에는 <부치 캐시디와 해춤추는 사나이>로 영화 제목을 번역해놓아서 하루종일 웃었던 기억이 나요ㅋㅋㅋㅋ해춤추는 사나이라니! 다시 생각해볼수록 재밌어요. 그 이후로는 선댄스 영화제라고 하면 영화제에서 해춤을 출 것 같고 그래요ㅋㅋㅋㅋ
  • 레비 2014/01/11 00:43 #

    ㅎㅎ <내일을 향해 쏴라>의 바로 그 선댄스 키드를 맡았던 로버트 레드포드가 만든 영화제가 선댄스 영화제지요 :) 자신의 이름도 아니고 자신이 연기했던 극중 인물의 이름을 따다니 재미있었어요. 아버지 덕에 아주 어렸을때 보았던 영화였어요. 그리고 그 이후로도 여러번 봤었네요 ㅎㅎ 해춤추는 사나이라니 ㅋㅋ 굉장한 번역인데요 ㅎㅎ 유타주에서 열리기때문인지, 저도 이런 배경을 몰랐을때 홈페이지를 들어가보고 태양 형상의 로고를 보고는 그 선댄스가 태양과 관련이 있는줄로만 알았어요 ㅎㅎ
  • 봄날 2014/01/11 01:48 #

    세상에 선댄스 키드 역을 맡았던 사람이 세운 영화제가 선댄스 영화제군요ㅋㅋㅋㅋ이제서야 알았어요 부끄럽네요'_'......
  • 레비 2014/01/11 09:53 #

    엇 전 그 사실을 알고 말씀해주신줄 알았어요 ㅎㅎ 저도 처음엔 그 영화와 영화제를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 ㅎㅎ
  • 어나더어스 2014/02/14 23:29 # 삭제 답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아주 예전에 본 영화로 기억하는데 요즘들어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계속 떠오르더군요.
    영화 내용이 기억이 잘 안 나기도 하고 해서 이것저것 리뷰를 찾다가 우연히 들렸는데. 영화속에서 느꼈던 약간의 애매모호함의 내용과 의미들을 객관적으로 잘 풀어 주셨네요. 리뷰 정말 멋집니다!.
  • 레비 2014/02/14 23:39 #

    감사합니다 ^_^
    우연히 찾아오신 분들께 이런 칭찬 덧글을 받을때마다 영화리뷰 블로그를 시작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 ㅎㅎ
  • 살벌한 둘리 2014/09/04 05:42 # 답글

    댓글땜시 가입했네요..ㅎㅎㅎ
    할말은 많지만...선댄스영화제를 좋아하는 일인이며..이영화의 독특한 매력에 빠진 일인으로써..
    마지막으로 리뷰에 반해서?? 혹시 영화쪽 분야가 아닌지...영화보고 검색하다 우연히 글보고 몇자 남깁니다.
    이영화, 참 매력있네요...흡입력이랄까...영화 15분쯤될때 30분쯤 지났다고 느끼구요..이건 지루해서 그런게아니라 시처럼 감독의 연출이 돋보이는거 같아요..시한편을 읽으면 마치 소설한권을 읽은 느낌이랄까요..너무 과장인가...하튼 오랜만에 맘에 든 영화 봤구요...리뷰도 잘 읽었습니다.
  • 레비 2014/09/07 02:17 #

    매력있는 영화죠 :) 제 글이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ㅎㅎ
  • 캐논샷 2014/10/21 03:48 # 삭제 답글

    영화평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느낌 잘 떠오르질 않는데.. ㅎㅎ
    앞으로도 좋은 영화평 많이 올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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