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 The Hurt Locker, 2008 Flims







우리는 전쟁영화의 걸작들을 떠올리며 그것들을 걸작으로 만드는 몇몇 가치들을 함께 떠올린다. 그것은 전쟁이라는 상황 그 자체의 참상이나 야만성이 되기도 하고(<풀 메탈 자켓>), 전쟁 상황 하에 놓여있는 인간의 심리 묘사이기도 하다(<지옥의 묵시록>). 카메라가 집중하는 것은 때론 전쟁의 속성 그 자체가 되기도 하고(<씬 레드 라인>),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군부대라는 그 집단에 맞춰지기도 하고(<블랙 호크 다운>), 보다 미시적으로 구성원 개개인에게 맞춰지기도 한다(<라이언 일병 구하기>). 그러나 <허트 로커>가 뛰어난 점은 가장 최근에의 전쟁이라는 이라크전을 배경으로 삼은 만큼 전쟁 영화를 바라보는 색다른 방식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상술한 전쟁영화들이 갖고 있는 몇몇 덕목들을 <허트 로커>는 생략하거나 소거해가며 전혀 다른 방법으로 서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제임스(제레미 레너)라는 주인공의 독특한 캐릭터가 핵심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2008년 작품 <허트 로커>는 그녀의 전 남편 제임스 카메룬의 <아바타>와 정면으로 맞붙어 아카데미 작품상을 쟁취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던 영화다. (재미있게도, <허트 로커>의 주인공의 이름 역시 제임스다) 82회 미국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6개의 상을 가져간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전쟁영화라는 장르에 새로운 이정표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간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나와 의견을 같이하는 평들도 있었지만 그저 그런 평범한 혹은 그 이하이지만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영화라는 평까지 극명했다. <허트 로커>의 주연 배우 제레미 레너는 마치 90년대 후반의 니콜라스 케이지를 연상케 한다. 무심시크 한 눈빛을 가진 그는 주변에 무신경해보이면서도 사실은 모든 것을 감지하는 예민한 남자를 연기했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타이틀 그대로 상처 가득하고 위험하며 위태로운 남자, ‘허트 로커’다. 가이 피어스, 랄프 파인즈, 데이빗 모스라는 세명의 노련한 배우들이 각각 10분여도 등장하지 못하는 이 영화는 오히려 (당시엔 지금보다 더) 무명이었던 제레미 레너를 위시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조연들을 기용해 찍었다.







영화가 시작하며 내놓는 인용구에서, 우리는 전쟁의 중독성을 화두로 제안받는다. 얼핏 이 영화는 전쟁 중인 지역에서, 그것도 위험천만한 폭탄해체 임무를 수행하는 폭발물제거반 소속의, 그 위험한 상황을 즐기는 이해할 수 없는 중독자를 전면에 앞세웠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주인공 제임스는 그와 함께하는 같은 팀원이자 병사인 샌본(안소니 마키)과 엘드리지(브라이언 게라그티)와 잦은 충돌을 일으키는, 소위 팀원으로서 호흡이 맞지않는 상관이자 엇나간 리더다. 제임스의 임무수행 스타일은 독단적임을 떠나서 일반적으로 안전성을 조금이라도 높여줄 정형화된 규범을 무시하기 일쑤다. 그는 샌본과 엘드리지의 우려를 가볍게 무시하며, 가뜩이나 위험도가 높은 임무를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폭탄 해체라는 임무를 성공해낸다. 문제는 이런 돌발적이고 통제불가능한 제임스의 행동들이 전시 임무중에서 벌어진다는 점이다. 매 출동마다 목숨을 걸어야하는 폭발물제거반에게 리더의 이런 불협화음은 모두의 위험을 초래한다. 폭발물 해체임무 수행 중 사망한 전임 상관이었던 톰슨(가이 피어스)을 그리워하는 만큼, 샌본에게는 이런 제임스의 행동을 이해할수도 없고 믿고 따르기도 힘들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제임스라는 인물이 폭탄을 해체한다는 스릴을 딱히 즐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도, 특별히 자랑스러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저 산이 그 곳에 있기에 오른다는 말처럼, 그저 폭탄이 거기 있기에 해체하는 것이다. 폭탄 해체에 관한한 자신감도 있고 확신도 있는 노련한 군인이지만, 영화 내내 그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과시하는 장면은 거의 없다. 또 하나의 폭탄을 무사히 해체한 그를 치하하며 방법을 묻는 상관에게, 죽지 않고 해체하는 방법 뿐이라는 그의 대답은 그가 폭탄을 해체하는 것이 책임감이나 자부심의 발로이기보단 그에겐 이미 습관처럼 굳어진 일임을 알 수 있다. 수백개의 폭탄중에서 하나라도 터졌다면 어차피 그가 해체해온 과거의 수많은 폭탄들은 의미가 없어지고 그는 단지 한 구의 시체가 될 것이었다. 그렇다고해서 그는 뛰어난 리더였는가. 앞서 말했듯이 그것도 아니다. 수색조가 함께 출동했음에도 그는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적들을 찾아 위험지역에 샌본과 엘드리지를 데리고 들어감으로서 자신의 부하를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하였다. 그렇다면 그는 이기적이거나 개인적인 인물인가. 사막에서 저격수와의 오랜 대치상황이나 여러 돌발상황에서 자신의 두 병사를 챙기고 신경쓰는 모습들을 보면 그가 냉정하거나 무책임한 인물로 생각하기란 힘들다. 이쯤되면 조심스럽게 선언해본다. <허트 로커>의 제임스는 과거 우리가 숱한 전쟁영화에서 보아온 수많은 인물상들과 완전히 다른, 전혀 새로운 캐릭터인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톰 행크스, <진주만>의 벤 애플릭, <블랙 호크 다운>의 에릭 바나, <씬 레드 라인>의 숀 팬, <위 워 솔저스>의 멜 깁슨, 그리고 <플래툰>의 윌렘 데포를 떠올렸을 때,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의 덕목들은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겉으로는 냉정함을 유지하면서도 내면으로는 인간적인 면을 잃지 않는 '리더'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허트 로커>의 제레미 레너는 냉정해보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적인 면을 모두 갖고 있어보이나 그 어느 쪽도 두드러지게 강조되진 않는다. 그의 캐릭터성은 철저히 자기 자신만을 감싸안고 있으며 팀웍과 조직안의 개인을 강조해온 이런 전쟁 소재의 영화에 이질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폭탄 앞에서 다른 병사들과 똑같이 겁을 먹기도하고, 특별한 책임감과 용기를 매번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인간적인 면이 가장 드러나는 장면은 부대내에서 미군에게 DVD를 파는 소년의 시체로 생각한 시체폭탄을 발견했을 때인데, 그 임무에서 그는 특유의 무심함을 잠시 잃어버린다. 심지어 그 분노를 이기지못하고 독단으로 부대를 몰래 나가 사건의 뒤를 찾아보려고도 하지만 아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으로 그의 분노는 분출할 방향을 잃어버리고 그는 다시 마음의 문이 닫힌 제임스로 되돌아온다.







<허트 로커>는 시종일관 몇차례 임무 장면들을 실감나고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카메라 워크로 보여주며 몰입감을 높여 우리로하여금 제임스라는 인물에 점점 빠져들게 만든다. 부하 병사인 엘드리치를 연기한 브라이언 게라그티의 연기가 특히 뛰어난 편인데, 그는 오랜 이런 파병으로 인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그런 불안한 심리의 병사가 속을 알 수 없는 상관을 만나며 갈등은 더욱 고조된다. 둘 사이에서 냉정한 보좌를 계속하던 병사 샌본도 해체에 실패했던 자살폭탄을 경험한 영화 종국에는 눈물을 흘리며 귀환하는 험비 안에서 제임스에게 묻는다. 어떻게 이렇게 매번 목숨이 달린 임무를 주사위 던지듯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냐고. ("You realize every time you suit up, every time we go out, it's life or death. You roll the dice, and you deal with it. You recognize that don't you?") 그러나 제임스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도 내가 왜 이런지 잘 모르겠다고 되묻는다.("Yea, I do. But I don't know why. I don't know. You know why I'm the way I am?") 이 조곤조곤한 대화 장면에서의 제레미 레너의 표정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압권이다.







영화는 제임스가 속해있던 브라보 중대의 임무 교대 이후를 마지막에 두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퀀스에 도달해서야 좀 더 명확하게 제임스를 알 수 있게된다. 그는 아내와 어린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서 쇼핑을 하다가 시리얼 하나를 고르는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이것은 전쟁이 남긴 후유증이나 외상장애를 강조하기보다는, 그가 서있는 양쪽 벽면을 빼곡히 채워넣은 수많은 종류의 시리얼들 속에서 길을 잃은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토록 위험한 폭탄들 속에서 매번 뇌관을 신중하고 성공적으로 제거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자면 이런 그의 모습은 분명 전쟁이 아닌 일상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마치 폭탄처럼, 상자를 열면 삐에로인형이 튀어나오는 깜짝상자를 들고 어린 딸과 놀아주면서 그는 독백한다. 아빠는 살아오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잃어 이젠 몇개 남지 않았다고. 그렇다. 제임스는 전쟁이라는 행위 자체에 매혹된 전쟁광, 혹은 살인광이 아니다. 그는 전쟁이라는 상황에 중독되어 다른 삶의 자극이나 매력을 잃어버리고만 비자발적 중독자이자 자발적 참여자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로 먹먹하다. 영화 내내 파견된 브라보 중대의 교대일까지 남은 일수를 세어주고 있던 카운트다운은, 다시 365일부터 새로운 순환을 반복하는 델타 중대의 교대일로 바뀌었고 거기에는 이제 그 숫자가 의미없어진 제임스가 다시 폭탄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는 수백 개의 폭탄을 해체한 폭발물제거반의 유능한 군인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폭탄이 단지 거기 있기 때문에 해체하고자하는 한 명의 무감각한 중독자이기도 하다.


















덧글

  • Let It Be 2014/01/02 14:47 # 답글

    2010년작입니다
  • 레비 2014/01/02 19:07 #

    늘 최초개봉기준으로 적어서 국내개봉연도가 아닌 2008년으로 적었습니다.
  • 2014/01/02 21: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1/04 23: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1/30 22:06 # 삭제 답글

    마지막 델타부대에서 폭탄을 제거 할 때 걸어가는 제임스의 웃는 표정도 정말 압권이죠. 그 미소 하나가 영화 전체를 정리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375

통계 위젯 (화이트)

1719
126
917993

웹폰트 (나눔고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