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 2008 Flims







<아메리칸 뷰티>와 <로드 투 퍼디션>으로 유명한 샘 멘데스가 감독을 맡고, 당시 그의 아내였던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을, 그리고 그녀의 절친한 파트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함께 했다. 샘 멘데스는 케이트 윈슬렛의 두번째 남편이었으며 둘은 2002년부터 2010년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이 영화는 이 부부가 함께 참여하며 2008년 공개되었다. 리처드 예이츠의 동명 원작소설은 영화보다 더 많은 정보와 한결 쉬운 접근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샘 멘데스는 불가피하게 영화에서 생략된 요소들을, 한순간의 낭비도 없는 영상들로 대신해 채워두었다. '가정'과 '집'의 테마를 능숙하게 다루는(<아메리칸 뷰티>까지 갈 필요도 없이 최근의 <007 스카이폴>을 떠올려 보라)샘 멘데스의 재능은 뛰어난 원작 소설을 두고도 이에 전혀 뒤지지않는 훌륭한 영화를 만들었다. 케이트 윈슬렛의 2008년 영화는 <레볼루셔너리 로드> 외에도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 두 영화에서의 연기는 그녀의 필모그래피 전부에서도 빛나는 순간이다. <더 리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함께 가져감과 동시에,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까지 가져가며, 2009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과 조연상을 한번에 둘 다 획득하는 보기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휠러 부부는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이사를 왔다. 이 젊고 생기넘치는 부부와 귀여운 자녀들까지 둔 이들 가족은 주변 이웃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일종의 동경이 섞여있다. 하지만 프랭크와 에이프릴의 속사정은 조금 다르다. 회사에서 사무적인 단순한 일만을 반복하는 자신의 업무에 싫증난 프랭크와 현실로부터 탈출하고픈 에이프릴은 파리로의 새 출발을 계획한다. 그들은 새로운 곳에서 새출발을 할 만큼 충분히 젊은 것이다. 지루하고 희망이 없는 현실로부터의 탈출은 전해 듣기만해도 설레이는 일이다. 그러한 환상적인 계획은 실천도하기 전에 말하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번지고 어깨가 쭈욱 펴지는 행복한 것이다. 하루하루 불쾌한 표정으로 출근길에 서있던 프랭크의 표정이 한결 여유롭고 행복해보이는 것도, 에이프릴의 파리로 가자는 제안을 받아들인 직후의 날들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영화속 프랭크의 이 표정을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에 입사해 일년만을 채우고 이제 퇴사를 한달 앞둔 한 형님의 얼굴에서 실제로 본 적이 있다. 훌훌 털어버리고 희망의 신대륙으로 떠나는 자의 표정은 언제나 여유롭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그들을 부러워만하는가.


휠러 부부가 파리로의 이주를 희망차게 말할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들의 자리는 휠러 부부가 아닌, 그들의 이웃인 캠벨 부부 쪽에 서있기 때문이다. 밀리 캠벨(캐서린 한)과 쉐프 캠벨(데이빗 하버)은 휠러 부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표면적으로 축하해주지만 100% 완전히 동의해주기 힘들어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 역설적으로 - 변화란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실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에이프릴의 파리행 제안이 허무맹랑하게 들렸다면, 당신도 캠벨 부부와 다르다할 순 없을 것이다. 휠러 부부가 파리행을 선언한 뒤, 그날 밤 그것이 정녕 어처구니없게 느껴졌음을 남편에게 동의받고 확인받은 아내가 안도감에 갑작스러운 울음을 터트리는 것은, 그들이 동경했던 휠러 부부가 자신들과 다른 방향으로 간다고해서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님을 남편으로부터 위로받았기 때문이다. 캠벨 부부는 휠러 부부의 이웃이고 친구이지만 동경의 시선은 일방적이다. 느껴본 적 없는가. 동경하던 누군가가, 혹은 롤모델로 삼던 누군가의 행보를 부러워하고 응원하지만, 더 깊은 무의식에는 이제는 내가 손뻗어 영영 닿을 수 없는 곳으로 향해버렸을 때의 슬픔이나 좌절감. 그리고 이제 나도 그래야하나 싶은, 나는 그럴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말이다.


하지만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휠러 부부를 부러워하기만하는 이웃들의 시선에 머무는 영화가 아니다. 사실 이 영화는 영화의 첫 시퀀스, 프랭크와 에이프릴의 로맨틱한 첫만남 이후 끝없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이들의 부부생활은 성공과는 거리가 먼 그녀의 연기자 생활과 숨막히는 프랭크의 직장생활 만큼이나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다. 그리고 이들을 탈출시킬 이상향으로서 파리가 제시되고 얼핏 부부는 이에 함께 동의하는듯 하지만 아주 우연히 찾아온 승진 기회에 프랭크의 마음이 떠나는 쪽이 아닌 남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서 문제는 이제 떠나느냐 남느냐로 바뀐다. 떠나고자하는 여자와 남고자하는 남자는 서로의 상처를 후비고 폭발시킨다. 이 갈등의 재료로서, 책보다 영화에서 다소 불충분하게 설명된 이들의 과거사까지 얽혀들며 이들 부부의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업까지도 개입한다. (이들 부부에게 적용되는 자녀들의 의미를 필요한 최소한으로 국한시키기 위해 이 영화는 어린 자녀들을 바라보는데에 절대로 숏을 낭비하지 않는다. 마치 휠러네 가정에는 이들 부부만이 있는 듯이.)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을 때, 지금 있는 나의 길이 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이 영화는 변화의 길, '레볼루셔너리 로드'위에 서 있을 그대에게 결코 가볍지않을 물음을 던질 것이다.


한치의 양보도 없을 것 같던 이들의 결말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던 비극으로 끝나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에필로그에 등장한다. 정신병동에 갇혀 짧은 외출만이 허락되는 아들(마이클 섀넌)이 수학을 공부한 지성이라는 믿음으로 휠러부부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이웃 기빙스 부부의 마지막 장면이 그것이다. 아들 존 기빙스는 휠러 부부의 파리로의 이주 계획을 진심으로 동의하고 의심없이 권했던 남자이지만 다툼으로 변질된 그들의 진짜 문제를 정확하게 파고들어 독설하던 남자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기빙스 부인(케시 베이츠)은 휠러 부부의 뒷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하며 남편에게 그들을 동경할만한 부부였지만 뒤늦은 단점들을 쏟아낸다. 그때 남편은 슬그머니 보청기의 스위치를 끄고 영화는 정적 속에서 끝나버린다. 그것은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떠나지 않은 채, 혹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모습이다.


케이트 윈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듀엣이라면 1997년 영화 <타이타닉>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잭은 차가운 대서양 바다에 배와 함께 가라앉았고 로즈는 타이타닉 침몰에서의 생존자가 되어 미국으로 건너와 그녀가 바라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타이타닉은 1912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배였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보면서, 유치하지만 피해가기 힘든 상상을 여기에 더해본다. 만약 잭과 로즈가 무사히 미국으로 건너가 사랑의 도피에 성공하여 부부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미국에서의 생활은, 각기 다른 배경과 계층에서 자라오며 형성된 그들의 서로 다른 천성이, 과연 그 아름다웠던 러브스토리의 뒷이야기까지 아름답게 지켜줄 수 있었을까. 어쩌면 타이타닉은 아주 짧은 시간동안만 바다에 떠있을 수 있었기에 그들의 사랑을 아름답게 남도록 해주었던건 아니었을까. 영화 중반, 케이트 윈슬렛이 파리로 가는 계획을 아이들에게 설명하며 지구본 위에 대서양을 미국에서 유럽으로 가로지르는 방향은 타이타닉이 향하던 길과 반대 방향이다. 이쯤되면 <타이타닉>에서 계급간을 초월한 잭과 로즈의 사랑을 은연중에 지지했던 몰리 브라운 여사 역할로 출연했던 케시 베이츠가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는 이들 부부를 동경하지만 마지막엔 본심을 털어놓는 역할로 뒤바뀐 채 등장하는 것조차 흥미롭다. 잭과 로즈도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선 언젠가는 권태롭고 다툼이 일상인 부부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상상은 조금은 너무하다싶은 망상일까.









덧글

  • 사라다 2013/12/08 01:04 # 삭제 답글

    로미오와줄리엣이 삼일을못넘기고 불타오르다 죽어서 영원불멸이됬듯이 부부로되었으면 치고박고싸우고 현실성있는사랑도피할수없었겠죠^^철없는사랑이 소재로 몇백년을되풀이되는데는 소멸감때문인거같아요 로즈는 약혼녀놔두고바람핀거나같은데 ..영화니까 무모한결정도 아ㅡ나도저런사랑해보고싶어ㅡ로 바뀌는가봐요 그녀이야기아시는구나 ㅎ되게반갑네요 ..
  • 레비 2013/12/15 21:51 #

    로미오와 줄리엣도 짧았기때문에 아름다울수 있었던게 아닐까하면 너무 냉정한 생각일까요 ㅎㅎ 동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D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영화라 불편한점도 있었지만 울림이 큰 영화였어요 :)
  • 2013/12/08 19:1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12/15 21:5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레몬트리 2013/12/08 22:35 # 답글

    ㅎㅎ 타이타닉이랑 연관지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구요. 잭과 로즈가 함께 살아남았더라면 훗날에 레볼루셔너리 로드 같은 모습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냥 아름답게 이별하는 쪽이 나은 것 같기도 하죠^_ㅠㅠ

    전 그냥 디카프리오랑 윈슬렛이 다시 같이 나오는 게 반가워서 봤는데 이런 내용이라서 깜짝 놀랐어요;;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기도 하고 영화를 보면서 기가 빨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ㅠㅠ 암튼 너무 힘들어서 두 번 보고 싶지는 않더라구요. 결혼하지 말라고 권유-_-하는 영화같기도 하고요;; 마지막 장면은 참 인상적이었던 게 기억에 남네요 ^_ㅠㅠ
  • 레비 2013/12/15 21:56 #

    디카프리오와 윈슬렛이 다시금 듀엣으로, 그것도 이번엔 부부로 나온다고해서 타이타닉과 비교가 안 될수가 없었던것 같아요. 그래도 이런 이별이라면 참 씁쓸하죠 ㅠ 힘든 영화였어요 ㅎ 그렇지만 또 몰입감도 대단했고요 :) 샘 멘데스는 영화를 점점 더 잘만드는 것 같아요.
  • 날다람 2014/01/16 02:35 # 답글

    보고나니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안락한 삶에서 떠날 용기가 아니라,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솔직해질 용기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보면서 american beauty의 주제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감독이 같았군요.결말은 이 영화가 더 슬퍼요ㅜㅜ
    마지막 문단의 가정은 너무 그럴듯해서 감독의도가 아닌지 (...덜덜...)
    그게 정말이라면 감독님 너무 잔인하신거 아닌가요..ㅜㅜㅜ
  • 레비 2014/01/19 04:53 #

    맞아요. 샘 멘데스는 자주 가정과 갈등의 테마를 다뤘던것 같아요. 그래서 <아메리칸 뷰티>와도 유사점이 많았고요. ㅎㅎ
    마지막 문단은 사실 케시 베이츠가 보여서 떠올려보았어요. 하필 두 배우가 다시 만난 영화로서 이런 내용이라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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