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슬러, The Counselor, 2013 Flims







영화의 타이틀롤을 맡은 마이클 패스밴더에겐 정작 이름이 없다. 변호사처럼 보이지만 그는 영화내내 카운슬러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난 영화의 주인공이 이름이 없을 때, 그것은 영화의 이야기가 우리 누구에게도 통용될 수 있다는 경고처럼 느껴지곤 한다. 영화는 감독 리들리 스콧의 이름보다 각본가 코맥 맥카시의 그림자가 더 짙게 깔려있는 분위기다. 코엔 형제의 영화이자 코맥 맥카시 각본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필연적으로 떠올리게 만드는 멕시코와 미국을 넘나드는 국경의 분위기는, 영화의 시작부터 border라고 명확히 쓰여 있는 도로 표지판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멕시코와 미국이라는 두 공간은, 단순히 다른 분위기의 두 국가, 불법과 준법, 원인과 결과처럼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이 영화는 물질에 욕심을 부린 인간상들의 처참한 말로를 보여주며 후회와 준엄한 경고를 던지는 것보다, 다른 두 세계의 경계와 그것의 병합에 대한 이야기이다. 


멕시코에서 시카고로 마약밀매를 하는 조직망의 톱니바퀴의 한자리에 끼기 위해 라이너(하비에르 바르뎀)에게 찾아간 카운슬러의 명목은 ‘곧 길거리에 내앉을 것 같은’ 궁핍이었지만, 우리는 영화 내내 그의 고급자동차와 호화로운 집안 인테리어와 그의 생활 스타일에 그의 절실함은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그것은 라이너에게도 마찬가지인데, 고급스러운 저택에서 사치스럽게 살고 있는 그에게 역시 돈은 가장 급한 문제로 자주 거론된다. 그들과 한배를 탄 웨스트레이(브래드 피트)의 생활 방식을 비록 우리는 영화에서 알 수 없지만 그가 이미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음에도 훌쩍 발을 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여전히 이 세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자신들에게 이 밀거래가 자신들을 자금난으로부터 구해줄 것이라고 믿지만, 그들이 각자 주장하는 그 위기는 시각적으로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오직 현재의 부를 유지하기위한 더 많은 부가 필요할 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패의 대가는, 성공의 보상보다 더 크게 보인다. 그들의 생사를 위협하는 마약 조직의 실체는 모호하게 등장할 뿐이지만 그들의 위험도는 라이너와 웨스트레이가 카운슬러에게 일러주는 대사들에 의존한다. 그들의 세계는 카운슬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히 들어왔다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자신이 속해있지 않은 세계였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이미 모든 것은 끝난 뒤이자 솟아날 어떠한 구멍도 주어지지 않는다.


시작은 분명 욕심이었을 것이다. 더 많은 돈. 부를 위한 부를 얻기 위해 불안함을 담보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하필 자신이 국선변호를 맡은 죄수의 아들이 타겟이 되어 살해당하고 운송트럭을 탈취 당하는 이 기막힌 우연은 애초에 이해를 요구하는 일이 아니었다. 다른 두 세계가 충돌하고 섞일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희박한 가능성조차, 실체가 되는 순간 현실이 된다.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영화를 밀어붙이는 방식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충분히 사용된 바 있다. 멕시코와 미국의 한산한 국경, 어딘지 알 수 없는 변두리 도로에서 당위를 알 수 없는 살해가 벌어지고, 카운슬러와 라이너와 웨스트레이는 상황을 설명할 시도조차 박탈된 채 추락을 시작한다. 그러나 치타가 사냥하는 것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여자 말키나는, 극중 세 남자들과 달리 이미 다른 한쪽 세계에서도 서있을 수 있던 여자였다. 라이너와 웨스트레이처럼 어설프게 두 세계의 경계에 걸쳐져있던 사람이 아닌 그녀는 그 세계의 방식대로 움직이며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를 최소한으로 만든다. 그것이 라이너와 웨스트레이, 카운슬러와 대비되는 말키나의 결말의 합당한 이유가 아닐까.
  

약혼녀 로라(페넬로페 크루즈)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카운슬러(마이클 패스밴더)의 하얀 인테리어와 시트에서의 첫등장은 그의 전작 <셰임>을 떠올리게 하였다. (<셰임>에서의 그가 내겐 너무 인상적이었나 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스티브 맥퀸이 아닌, 리들리 스콧이라는 감독이 주문한 극의 무게를 이끌고 가기에 패스밴더의 연기는 물론 뛰어나지만 그 동력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브래드 피트,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는 묵직한 조연들 역시 그 둘의 명성에 비해 특별한 연기를 선보이진 않았다. (물론 이것은 그들에게 연기를 펼칠 조건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영화는 배우 개개인의 열연보다는 비주얼과 각본의 힘으로 전진해가는 영화다.) 원래 안젤리나 졸리에게 돌아갔었다던 말키나 역의 카메론 디아즈는 최근 몇 년간 작품을 고르는 데에 헤매는 듯 했지만 <카운슬러>에서의 역할은 조연들 중 가장 적합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처음부터 감당하기 힘들만한 배우들의 이름값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코맥 맥카시의 '원작'이 없는, 그의 첫번째 '시나리오' 작품이다. 따라서 <카운슬러>는 연원을 두고 있을 문학 작품이 없는데, 여기에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이 자리잡고 있다. 뛰어난 각본가가 뛰어난 연출가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훌륭한 소설가가 훌륭한 각본가도 겸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코맥 맥카시의 서술은 영화적 언어로 충분히 번역되지 못했고, 나는 리들리 스콧의 '화면'과 코맥 맥카시의 '대사'들을 번갈아가며 '읽어내야' 했다. 이야기의 전개는 굉장히 몰입감있고 그들의 언어도 분명 강렬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문학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 







@ 2013.11.16 강남 메가박스






덧글

  • 리미 2013/12/01 21:35 # 답글

    코맥 맥카시 반가운 이름이네요.
    이동진 기자 평론 보고 볼까 생각했었는데.. 레비님 평을보니 지루할까봐 걱정되요 :ㅅ;
  • 레비 2013/12/02 01:04 #

    앗 이동진 기자님은 몇점과 어떤 한줄평을 남기셨는지 궁금하네요 :) 리미님의 덧글을 보니 그래도 호평쪽에 무게를 실으신것 같은데요? ㅎㅎ 전 조금 실망쪽에 가까웠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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