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 Gravity, 2013 Flims









걸작이라 기억되는 영화들은 당연하게도 모두 한가지 절대적 잣대로 규정되어진 것이 아니다. 걸작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경우는, 그래서 그 다양한 기준들 중 어느 한가지만을 절대적으로 만족시키는 경우가 다수 있는데 그렇기때문에 세상의 모든 걸작들은 그것이 그렇게 기억되는 각자의 당위를 가진다. 그리고 그 중에는 영화의 내적 요소보다는 외부의 테크니컬한 측면, 특히 영상미라고 불리는 기준에 의한 것도 있다. 당장 생각나는 것을 하나 꼽자면 테렌스 맬릭의 <천국의 나날들>. 나는 <그래비티>가 훗날 걸작으로 기억된다면 그것은 이 카테고리에 속하게될 공산이 크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2학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칼 세이건의 저작 '코스모스'가 떠올랐다. 정작 그 두꺼운 책의 내용은 어렸던 내 머릿속에 제대로 남아있지 못하고 지금에서야 휘발되어버렸지만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잊지못하고 기억하고 있는 문장이 있는데 그것은 책의 가장 맨 첫장에 있던 감사의 글. 저자 칼 세이건이 공동저자이자 아내인 앤 드류안에게 바치는 그 몇문장을 의역하자면, 우리가 가늠하기도 힘들 이 무한에 가까운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었던 우주적 우연에 감사한다는 의미의 문장이었다. 10대였던 내게조차 이런 표현이 어찌나 로맨틱하게 들렸었는지, 첫사랑에게 보내는 편지에 써먹었던 기억이 부끄럽게도 새록새록 난다. 난 파괴된 인공위성 파편들의 습격으로 우주로 내동댕이쳐진 라이언(산드라 블록)의 패닉에 빠진 장면연기를 이 영화에서 가장 깊게 각인받았다. "What do I do?, What do I do?"로 표현된 그 절박함 이후, 맷(조지 클루니)과의 재회와 고리를 이용한 둘의 연결은 '혼자'가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우주에서 생존 그 자체이다. 산소가 얼마 남았든, 자신들이 돌아갈수 있는 루트가 어찌하든간에 누군가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존가능성이 높아지는 그곳은 우주라는, 생명이 처음부터 살지 못하게 설계된 공간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영화가 시작되기도전, 몇 문장을 통해 그점을 강조하고 전달하며 영화를 시작하고 싶어한다. 우주는 더이상 아름다운 미답의, 미지의 공간이 아니게된다. <콘택트>의 칼 세이건이 살아있었더라면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까. '창백한 푸른 점'을 아름답게 표현한 이 영화를 그가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해진다.


우주에선 생명이 살기 힘들다고 처음부터 명시하고 시작한 이 영화에서, 우주공간을 표류하는 맷과 라이언은 최소한의 과학기술에 의존한 위태로운 생명체이다. 산소가 고갈되기 직전 첫번째 소유즈에 무사히 들어간 라이언의 좌측으로 웅크린 모습은 영화 <레퀴엠>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사용되었듯이 자궁속 태아의 형상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숏에서 우리가 그녀보다 거리적으로 뒤에 있는 호스가 그녀의 배꼽 부근에 걸처있는 모습을 보고 탯줄을 연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소유즈 안은 우주환경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해주던 우주복을 다 벗어던지고도 그렇게 안정적으로 있을 수 있는,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자궁 안과 같다. 그러고보면 사고현장으로부터 첫번째 소유즈로 향하기 위해 동력을 모두 소진하고도, 결국은 한 명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상황을 떠올려보자면 난자와 정자로의 비유가 그렇게 무리한 상상도 아니지않을까. 생명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안전하고 보호받는 공간으로서 존재하는 소유즈는 생명을 무사히 모체인 지구로 되돌려보낼 수 있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허물을 벗듯 우주복을 벗고 양수를 헤치듯 소유즈 안으로 밀려오는 물을 거슬러 헤엄처 밖으로 나온 생명이 선물받는 것은 중력이다. 방향성 없던 라이언의 지난 삶은 우주에서의 무중력으로 표현되었지만 이제 의지를 되찾은 그녀는 중력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라이언은 땅을 움켜잡으며 기쁜듯 중력을 느낀다. 영화는 첫장면부터 지구를 배경으로 한 숏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라이언의 귀환 이후에서야 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맷과 라이언이 처음부터 우주에 있었던 느낌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영화 제작사에서 휴스턴의 긴박한 상황이나 각종 지구에서의 이야기도 담아내라는 요구를 철저히 묵살한 감독의 이러한 의도적인 연출은, 그리하여 라이언의 귀환이 '귀환'으로 느껴지지 않게끔한다. 그녀가 상륙한 곳이 어딘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 장면에서 문명의 향기를 맡을 수가 없다. 그 해변과 숲으로 보이는 곳은 마치 인간이 처음 다가가보는 미답의 자연상태 같아 보인다. 생명의 새출발, 비로소 탄생의 순간이다.


안젤리나 졸리, 나탈리 포트만등이 물망에 올랐다던 라이언 역의 산드라 블록은, 아쉽게도 90년대의 몇몇 로맨틱코미디 이후 기억나는 배역이 없었다. 작년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 톰 행크스와 연기했던 것을 보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특별한 것을 찾기가 힘들었다. 많은 분들에게 그러하듯, 내게도 그녀는 아직 20년전 <스피드>의 그녀였다. 반면 - GQ 10월호 표지모델이었던 조지 클루니의 커버기사에서 읽은 문장을 조금 차용한다면- 자신의 목숨과 바꾸는 희생적 결심을 하고 우주 한복판에서 죽음과 마주하는 그 순간에, 그래도 나에게 끌린적 있지않았느냐고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이 남자가 허무맹랑해보이지않게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그가 그 어느 배우도 아닌 바로 조지 클루니이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쌓아온 조지 클루니의 그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러스한 이미지는 우주에서도 어김없이 통용된다. <설국 열차>의 '끝판왕' 월포드로 국내에서 한층 더 유명해진 에드 해리스는 톰 행크스와 케빈 베이컨 주연의 1995년 영화 <아폴로 13>에서도 휴스턴 관제센터장을 맡았던 전례가 있다. 그는 18년만에 <그래비티>에서 다시 휴스턴 관제센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역을 맡았다.


우리가 이 영화의 영상에 깊은 각인을 받는 이유는 기존의 우주 SF영화들과 다르게도 클리셰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 모두 마치 전에 본적이 전혀 없는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영화에선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과 함께 90여분의 대부분을 롱테이크와 현란한 카메라워크로 선사하는 무중력으로 우주적 경이와 동시에, 재난영화의 공식도 어느정도 빌려와 우주공간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 공포도 함께 제공한다. 생명의 모체, 지구를 떠나온 생명은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돌발적인 사고였지만 사실은 우주라는 환경 그 자체다. 이 영화 <그래비티>에서의 주인공 라이언이 우주를 인지해가는 과정과 변화는, 삶 혹은 생명을 계속 유지해나가고 싶어하는 본능의 발현으로 흐른다. 우연한 사고로 어처구니없게 딸을 잃어 삶의 이유를 잃은 어머니 라이언은, 영화 초반 아무 생각할것도 없이 고요한 우주가 좋다고 말했지만, 중반에 그녀는 분명하게 "I hate space!"라고 외친다. 지구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던, 지구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자신을 생각해줄 사람이 있냐는 맷의 질문에 먹먹해졌던 라이언이, 반드시 살아 돌아가겠다고 심경의 변화를 겪는 과정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비티>는 더이상 SF영화가 아니다. 삶에 대한 무기력과 당위성의 병치는 우주와 지구, 혹은 무중력과 중력으로 치환되었고, 그리하여 이 영화의 제목은 이들 중 후자가 되었다. 생명이 앞으로 나아가고자하는 본능은 어떠한 우주적 물리법칙으로도 막을 수 없다.






덧글

  • 2013/11/03 02: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11/03 02: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11/03 02:1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11/03 02:1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11/03 22: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11/04 09:4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11/05 20: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11/06 00: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smilejd 2013/12/28 23:27 # 답글

    그래비티를 보고 난 이후에는..작은 일에 집착하는 저를 깨달을 때마다. 그래피티를 떠올리죠. 우주안의 이 상황이 얼마나 작은지...
  • 레비 2013/12/31 22:30 #

    멋진 영화였어요 :) 우주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들은 참 많은데, 이 영화는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기억될 영화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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