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2007 Flims










감독 시드니 루멧의 데뷔작은 20일만에 만든 영화 <12인의 노한 사람들(12 Angry Men)>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가져갔다. 법정의 배심원실이라는 제한된 단 하나의 무대를 두고 뚜렷한 12명의 캐릭터들, 연극적인 독백들과 최후에 도달하게되는 인상적인 울림을 가진 이 영화는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 1957년, 그가 33세때의 일이다. 그리고 50년 흘러 2007년이 되었다. 이제 시드니 루멧은 83세였지만 수십편의 TV드라마와 영화들의 연출 경력으로 다져진 이 장인은 자신의 영화 철학을 굽힐줄 몰랐다. 느와르를 방불케하는 범죄스릴러 드라마의 노선을, 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고집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는 2011년 타계한 시드니 루멧의 유작이 되었다. <12인의 노한 사람들>로 시작한 자신의 필모그래피의 50년을 관통해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로 마무리한 것이다. 진실에 다다르는 과정을 거꾸로 추리해나갔던 데뷔작처럼 그의 마지막 작품 역시 사건의 전후를 플래시백과 플래시포워드로 능숙하게 넘나들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강력한 몰입감을 이끌어내는 영화다. 50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도 자기 커리어의 처음과 끝을 이렇게 장식할 수 있는 인생은 어쩜 이토록 멋진지.









아일랜드의 해학적인 전통 축배사에서 따온 이 영화 제목의 실질적 문장은 "May you be in heaven half an hour,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이다. 생략된 앞 문장은 영화 타이틀과 함께 등장한다. IMDb에 따르면 진짜 문장은 이렇다고도 한다. "May you have food and raiment, a soft pillow for your head; may you be 40 years in heaven,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어느쪽이든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겠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이, 영화에선 생물학적 의미의 죽음에 한정되어있지 않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 것이 죽음이며 그 이후 악마를 마주하게 된다면 이 영화에서 앤디(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과 행크(에단 호크) 형제의 강도질은 바로 그 죽음이 시작되는 분기점이다. 영화는 '그 날'을 반복적으로 되감으며 재사용한다.









한창 꼬일대로 꼬이는 코엔 형제 스타일의 범죄영화에서 유머를 소거한다면 바로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우스꽝스럽고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스크류볼 코미디 같은 코엔형제의 몇몇 영화들보다 이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는 훨씬 무겁고 장중하다. 이 영화에서 코엔 형제 영화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것은 비슷한 플롯의 영향도 있겠지만 음악 감독인 카터 버웰의 효과도 간과할 순 없을것 같다. 카터 버웰은 <컨스피러시>, <존 말코비치되기>, <자칼>, <기사 윌리엄>등 음악적으로도 인상적이었던 영화들에 다수 참여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코엔 형제의 오랜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바톤 핑크>, <파고>, <위대한 레보스키>,<번 애프터 리딩>,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시리어스 맨>까지 음악 감독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에서 역시 범죄의 '그 날'은 물론이고 긴장이 고조될때마다 변주되어 재활용되는 메인 테마를 담당한 카터 버웰의 음악은 영화가 끝나고도 깊은 잔상을 남긴다. (직접 들어보시길! 영화에선 본 링크 0:00부터 0:55까지 구간만큼의 분량이 사용되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W7lynL0TrnI)









행크와 앤디는 그들의 부모가 경영하는 보석상을 털기로 모의한다. 그들에겐 이유가 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거친 섹스장면을 보여주었던 앤디와 그의 아내 지나(마리사 토메이). 앤디는 부유하고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부부관계나 사생활에서는 원만하지 못하다. 게이처럼 등장하는 상류층 마약 딜러의 집에서 약을 하고, 아내 지나는 동생 행크와 바람을 피우고, 그는 이 모든 곳을 떠나 브라질로 가고 싶어한다. 새출발을 원하는 앤디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다. 새출발에 돈이 필요한 것은 행크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린 딸을 데리고 있지만 양육권은 갖고 있지 못한 이혼남이다. 전처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그를 만날 때 마다 몰아세우지만 행크는 할 말이 없다. 학교에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딸에게 보내줄 돈도 궁핍한 행크에게 앤디가 충격적인, 그러나 유혹적인 제안을 던지는 것은 그때부터다.









계획은 쉽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였다. 어머니는 특정 정해진 날, 다른 친구에게 부탁하여 대신 매장을 열게끔 한다. 그러므로 그날은 가게에 아들들을 알아볼 어머니가 출근하지 않는다. 게다가 앤디와 행크 모두 부모의 그 보석가게를 훤히 알고 있다. 그곳이 몇 시에 문을 열고, 그 시간에 주위 다른 가게들이 한적하고, 방범용 총은 없는지를. 그 무엇보다도 부모가 가입해둔 보험과 그 보험료를 알고 있는 앤디는, 자신들이 부모의 가게에서 돈을 훔쳐가도 부모에게 큰 피해가 돌아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앤디는 행크에게 당일 행동을 맡겼지만 소심한 행크는 변장까지 하고 실제로 가게에 들어가 돈을 훔쳐올 친구를 한명 더 끌어들인다. 이 모든 일이 어그러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하필 그날 어머니 본인이 출근을 했고, 그녀의 얼굴을 모르는 행크의 친구는 진짜 총을 들이밀었고, 어머니 역시 서랍 속에 진짜 총을 숨기고 있었다. 비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그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벌였는지를 지나, 사건 이후 자신들이 벌인 일을 감당하고 수습하기위해 거친 선택의 길로 내동댕이쳐진 형제를 비춘다. 행크는 죄책감을 견디기 힘들어하지만 뒤이어 내막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협박을 당한다. 자신이 계획안 올가미에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슬픔과 위기에 빠진 앤디는 그 치밀함으로 탈출구를 뚫어보려고 하지만 한번 어긋나기 시작한 운명의 뒤틀림은 겉잡을 수 없게 된다. 악마가 준 30분은 소진되어버렸고 그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걸어와 있다.








시드니 루멧의 이 마지막 영화는 현대의 퇴색되고 변질되어가는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역설한다. 동생과 성적 관계를 유지하는 형의 아내나, 딸의 양육권을 두고 전처와 돈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 행크의 상태. 겉보기엔 성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어릴적 받지 못한 소외감과 그로인해 부모와의 사이에 깊은 골을 파둔채 살아온 장남 앤디. 그간의 섭섭함을 표현하다가 친아들이 맞냐는 독백같은 항변에 아버지에게 따귀를 맞은 앤디가 차안에서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연민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며 절규하는 장면은 이 불행한 가족의 단면들중 가장 백미이다. 어리숙하고 철들지못한 둘째, 너무 일찍 소외감을 느끼며 자라온 장남. 아들들의 파국적 결정을 거꾸로 역추적해가며 진실을 확인하고만 아버지 찰스. 악마는 결코 어느날 갑자기 이들에게 찾아온 것이 아니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과 에단 호크의 앙상블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실제로도 호프먼이 호크보다 3살 더 많은 이들의 나이 차이는 원작 소설에선 형제라는 설정이 아니었으나 시드니 루멧의 판단으로 앤디와 행크는 형제로 등장했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장기인 그 깊게 응축되어 금세라도 폭발할 듯한 불안과 위태로움의 감정 연기는 이 영화에서도 단연 가장 복잡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앤디를 연기하면서 빛을 발한다. 표정의 다양함에서는 자칫 호프먼에게 뒤지기 쉬웠던 에단 호크는 그런 본연의 색이, 앤디라는 형에게 위축되어있는 행크라는 동생역을 살리기에 도리어 좋은 효과를 냈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에는 이 두 남자 주연의 호흡을 보는 재미가 각본의 드라마만큼이나 크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극을 이끌어가는 한명의 배우가 더 있는데, 바로 이 두 형제의 아버지 찰스역인 앨버트 피니이다. 아들들의 배신과 사건의 진실에 스스로의 힘으로 다가가려고 애쓰는 이 강철 같은 아버지는 결국 파국을 모두 지켜보고 앤디와 마주한다. 용서를 택할 수도 있었을 그 마지막 장면, 영화는 마지막까지 우직한 정면 돌파를 선택한다. 사실 영화의 시작에 사건 당일을 배치해놓긴 했지만, 결정적인 힌트가 하나 더 미리 등장한다. 영화 초반 행크의 딸이 학교 학예회 연극 무대 장면에서 읊었던 대사는 셰익스피어 ‘리어왕’의 마지막 구절이었다. 리어왕은 믿었던 두 딸에게 배신당했다.







덧글

  • Aplin 2013/10/30 10:50 # 답글

    잘 읽었습니다 :)
  • 레비 2013/11/02 00:23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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