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 Requiem for a Dream, 2000 Flims









한 2년쯤 지나자, 나는 나탈리 포트만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영화로 <블랙 스완>을 꼽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레옹>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최고의 영화로 <블랙 스완>을 말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98년 데뷔작 <파이>로 선댄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시작한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두번째 연출작 <레퀴엠>에는 네 명의 등장인물들이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는 사라 골드파브(엘렌 버스틴), 그녀의 아들 해리(자레드 레토), 해리의 연인 마리온(제니퍼 코넬리), 그리고 해리의 친구 타이론(마론 웨이언스). 이상 네명이 모두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영화는 이들의 어느 여름에 시작하여 가을을 거쳐 겨울에 끝난다.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은 모두 한번씩 영화 중간에 뚜렷한 시간의 경계로서 표기된다. 레퀴엠은 진혼곡을 뜻한다. 진혼곡이란 카톨릭에서 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으로서 무겁고 장중한 분위기를 띠며, 이는 죽은 이의 영혼이 천당으로 구원받기를 기원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영화의 국내 제목은 <레퀴엠>이지만 원제는 'Requiem for a Dream'. 2000년 칸느와 토론토 국제 영화제등을 거쳐 그해 가을 북미개봉했으며 국내에는 2002년에서야 들어왔다.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입니다.








사라와 해리, 타이론과 마리온은 영화가 시작되고 단 한번의 브레이크도 없이 중독과 파멸과 몰락을 향해 달려간다. 사라는 TV쇼에 출연을 권하는 사기 전화와 그에 따른 신청서를 받고 자신이 그토록 애청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까지 과거에 입었던 붉은 드레스를 다시 입기위해 살을 빼겠다는 결심을 한다. 하지만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에게 다이어트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녀는 다른 할머니들의 추천으로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는다. 그리고 그녀는 음식에 대한 욕구와 다이어트에 대한 동기가 충돌하는 가운데 TV프로그램쇼와 약에 점점 중독되어간다.


사라의 아들 해리는 친구 타이론과 마약을 중개하며 일차적으로 한탕주의에 물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약을 다루면서 단지 돈에만 중독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곧 자신들이 다루던 백색 가루에 빠져들며, 중독자를 겨냥하기 시작한 그들의 밀매업은 곧 자신들 스스로가 타겟이 된다. 마약 소비자들을 노리던 행동이 스스로 소비자로 뒤바뀌자 그들은 더 이상 돈을 벌기위해서만 마약을 찾을 수가 없다. 타이론은 더이상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고 해리는 주사바늘을 찔러넣을 팔을 잃게 된다.





행복하던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던 해리와 마리온은 영화의 초반부 서로의 얼굴을 만지며 교감하는 씬에서 화면분할에 사이가 이미 갈린다. 사랑했던 이들에 대한 복선은 그토록 명징하다. 남자친구가 손대던 마약에 도리어 먼저 중독되어버린 연인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마리온은 이젠 팔아넘길 것조차 확보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마약을 구해오라고 해리에게 소리 지른다. 상황은 어려워지지만 마리온과 해리의 중독은 점점 가속화되고 이들은 이제 마약을 취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었다. 결국 돈 대신 몸을 팔면 마약을 준다는 거래상의 전화번호를 타이론으로부터 얻어낸 해리는, 자신과 마리온의 아름다웠던 시절의 다정한 사진 뒷면에 거칠게 받아 적고 마리온은 마약에 찌들어버린 얼굴로 선택을 강요받는다. 마약을 살 돈을 구하기 위해 부유한 남자의 하룻밤 상대가 되라고 종용했던 남자친구 해리, 그리고 남자친구가 더 이상 마약을 구해오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 몸을 팔기위해 거래상을 찾아가는 마리온의 병든 얼굴과 진한 화장은 이들의 행복했던 한때가 과연 있었는지를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다.





영화에서 해리와 마리온과 타이론을 파멸로 이끄는 흰색 가루는 헤로인이다. 하지만 헤로인이라는 단어는 단 한번도 대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들이 마약을 할 때마다 일련의 연속적인 컷들을 일관되게 사용함으로서, 마약복용이라는 그들의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을 관객인 우리들에게도 차차 무심해지도록 만들어놓았다. 이 영화에 보통의 일반적인 영화들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컷들이 사용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라가 복용하는 다이어트 약의 투여장면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점점 떨어져가는 약효를 보충하기위해 처음에 투여하던 한 알의 개수를 두 개, 세 개로 늘려나가고 이 규칙적이고 빠른 장면들의 모음으로서, 우리는 우리조차 이런 중독의 장면과 과정에 둔감해지는 것을 느낀다. 마약이 투여의 끝을 알리는 확대되는 동공 장면은 섬뜩하고 사라가 보는 냉장고나 TV프로그램쇼의 환각은 기묘하기까지 하다. 


이 영화에 구원은 없다. 그들은 그대로 결말에 다다르고 파국을 맞는다. 그러나 다시한번 말하자면 ‘레퀴엠’은 죽은 자를 위로하기 위한 곡이다. 사라와 해리, 마리온과 타이론은 계절이 세 번 바뀌자 각자 그들이 꿈꾸던 과거와는 한참을 동떨어진 현실에 닿는다. 그것은 잔인하고 끔찍한 형벌이다. 누워있던 네 명은 일제히 우측으로 팔과 무릎을 모으는 웅크린 자세를 취하며 영화를 맺는다. 이들의 통일된 모습은 산모 뱃속에 있는 태아의 형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돌이켜보면 이들은 상황을 나아지게할 기회를 잡거나 조금이라도 호전된 방향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행복했던, 아니 평범했던 과거를 이제는 꿈속에서나 만나 볼 수 없는 그들에겐, 처음으로 회귀하고 싶은 마음은 무의식중의 본능으로 작용할 것이다.








영화의 첫머리, 제목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라와 아들 해리는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언성을 높인다. 아들은 어머니의 TV를, 그것도 쇠사슬로 묶어놓은 TV를 기어코 팔아넘기려하고, 어머니는 죽은 남편을 찾으며 망나니 아들이 날뛰는 지금의 상황을 스스로 위로한다. 이들의 거리감은 닫힌 문사이로도 표현하기 부족하다는 듯 감독은 아예 두개의 화면으로 분할해 놓았다. (해리와 마리온의 사이를 갈랐던 바로 그 방법과 동일하다) 그녀는 화내는 아들을 문 너머에 두고 이 상황은 차차 나아질거라고, 그리하여 종국에 가서는 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화가 시작된다. 진짜 꿈같은 지옥이 펼쳐지는 것은 가장 현실다운 현실을 부정할 때부터인 것이다. 영화 타이틀이 보이고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그녀의 마지막 독백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끝났더랬다. “In the end, it's all nice.”










+ 이 영화는 (어쩌면) 영화보다 더 유명한 주제곡을 갖고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데뷔작 <파이>와 훗날 <블랙스완>그리고 박찬욱의 <스토커>에서도 음악을 담당했던 클린트 멘셀이 쓰고 크로노스 콰르텟이 연주한 'Lux Aeterna'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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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3/10/13 00:3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10/15 09:3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 2013/11/22 23:47 # 삭제 답글

    글 너무 잘 읽고 갑니다.
  • 레비 2013/11/23 09:23 #

    감사합니다 :)
  • 미카 2014/06/11 02:14 # 답글

    저는 블랙 스완보다는 레퀴엠을, 레퀴엠보다는 레슬러에 더 깊이 공감했어요. 셋 다 무시무시하게 멋진 영화지만요. 레퀴엠은 보다가 제가 다 미칠 지경이었어요. 아 이런 영화들을 만들다니 대런 감독은 정말 무서운 사람입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
  • 레비 2014/06/15 08:17 #

    감사합니다 :) <레슬러>를 좋아하셨군요 ㅎㅎ 대런은 정말 멋진 감독이기도하지만 무엇보다도 배우들을 잘 활용하고 담아낼줄아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아>는 그의 필모에서 보면 평작에 가까워서 아쉬웠지만요 ㅎㅎ
  • 마젤란 2015/01/16 01:53 # 삭제 답글

    마리온의 끝을 보여주는 막장 장면이...... 입에도 담기 힘든 직업매춘부와의...... 거기서 그냥 정신을 확 놔 버렸습니다.
  • 레비 2015/01/19 18:32 #

    충격적이었죠! ㅠ 영화 전반적으로 마치 환각같은 분위기를 조장하긴하지만 특히 그 장면이 절정이었던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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