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티풀, Biutiful, 2010 Flims







딸 안나가 학교 숙제를 하다가 아버지에게 묻는다. ‘뷰티풀’의 철자를 어떻게 써요? 그대로 소리 나는 대로 쓰면 돼. 그리하여 beautiful은 biutiful이 되었지만 그 무렵의 아버지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은 이 영화전체를 통틀어 행복과 희망에 가장 근접했던 시간이었다. 자신에게 남은 삶이 얼마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조울증으로 집을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하는 아내 마람브라(마리셸 알바레즈)와 어린 딸 안나와 아들 마테오에게도 그는 부족하지만 충실한 아버지가 되길 희망한다. 또한 그런 아버지로 기억되기를.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대표적인 전작들, <21그램>이나 <바벨>과 비교하여 <비우티풀>이 갖는 차이점은 여럿 캐릭터들의 다중 이야기들을 나열하고 얽히게 극을 짜는 방식으로부터 벗어나 한 명의 주인공을 기용했다는 점이다. 직접 각본을 쓰는 이냐리투 감독은 영화 <비우티풀>의 주인공 욱스발을 창조하면서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는 이 스페인의 명배우를 머릿속으로 낙점해둔 채 써나갔다고 하니, 하비에르 바르뎀의 눈빛과 말투와 자세가 욱스발을 연기하기에 최적화되어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 그가 어떤 깊이를 가진 배우인지, 단순히 <007 스카이폴>에서의 악역으로만 기억하는 분들은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1그램>에서의 사회 계층간의 간격은 다음 영화 <바벨>에서 더욱 극명해졌다. 급기야 멕시코와 레바논, 미국와 일본이라는 <바벨>에서의 양분된 지역정치학이 <비우티풀>에서는 바르셀로나라는 하나의 도시 안에 응축되었다. 둘둘씩 제1세계와 제3세계를 나누었던 <바벨>과는 달리, <비우티풀>의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도시 안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불법이민노동자들, 세네갈과 중국에서 온 그들을 제1세계안의 3세계만으로 상정한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역시, 가진 자와 못가진 자들의 자리바꿈이나 화해는 끝내 일어나지 않는다. 포괄적이었던 <바벨>에서와는 달리 <비우티풀>은 스페인인인 욱스발이 속해있는 세계, 상위보다는 하층의 구조에 무게를 싣고 끝내 그 계층을 탈출하지 않는다. 그는 값 싼 불법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종의 인력브로커로서 살고 있는 남자다. 그의 세계는 어둡고 아름답지 않으며 지저분하고 절망적이다. 세네갈 이민자들은 거리에서 무허가 장사를 하거나 마약을 밀매시키고, 중국인들은 한곳에 몰아넣고 하루 종일 모조품을 만들거나 건설노동에 쓰이게 한다. 욱스발은 살기위해 이 모든 것을 한다. 어머니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마람브라가 없는 자신의 어린 딸과 어린 아들에게 아름답지 않은 삶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의지에 기대어.





이냐리투의 이 영화 <비우티풀>은 세 가지 테마가 뒤섞여있다. 삶과 죽음의 테마. 가족애에 대한 메시지. 그리고 사회 수직적 계급에 대한 간극의 테마가 있다. 두번째와 세번째는 감독이 주로 다루던 주요한 주제들이었다. 그러나 <비우티풀>에는 유난히 삶과 죽음에 대한 상징들이 강하게 베어있다. 욱스발은 현실적으로 불법 인력을 연결해주고 부패 경찰에게 청탁을 해야하는 도시의 어두운 그늘속에 살고있다. 그렇지만 그에게 붙어다니는 죽음의 그림자는 그 스스로가 죽은 이의 유령을 보거나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짙다. 영화 중반에, 욱스발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괴로워하며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지인에게 찾아간다. 그녀는 자신들과 같은 자들은 우연히, 노력으로 얻은 능력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능력은 무보수로 베풀어야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욱스발은 장례식장에서 죽은 이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싶어하는 유족들을 위해 그들의 메세지를 전해주고 보수를 받는다. 하지만 그 돈으로 욱스발을 탐욕스러운 자로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는 그토록 그의 생활이 비참하고 가난하기 때문이다. 죽은지 얼마 되지 않은 자의 영혼으로부터 미처 말하지못한 나머지 유언을 들어줄 수 있는 욱스발의 능력. 그것은 세상을 떠나면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갈 수 밖에 없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와도 상통한다. 그가 아버지의 젊은 유령으로부터 듣는, 죽을때 모든것을 토해놓고 간다는 올빼미의 이야기도 이와 연결된다.  






그러나 욱스발은 자신의 삶과 빈곤을 자식세대에게 토해놓고 세상을 뜨고싶지 않다. <비우티풀>에서 혼자 괴로워하는 아버지 욱스발의 몸부림은 이런 부성애로부터 기인한다. 이를 조금 더 부각시키기위해 어머니 마람브라는 정상적인 어머니의 타이틀과는 거리가 멀다. 욱스발은 생모인 마람브라보다, 세네갈 불법 이민자로 잡혀들어간 남편을 두고 혼자 어린 자식을 키워야하는 세네갈인 이헤(디아리아투 다프)에게 자신의 자녀들을 맡기고 싶어한다. 욱스발은 천성적으로 인도주의적인 사람이다. 자신이 생업으로 삼지만 세네갈인들이나 중국인들에게 대하는 행동은 그가 불법 인력들을 단순히 자신이 살기위한 돈벌이로만 보고있지 않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은 스스로도, 자신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에도 버겁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냐리투는 늘, 지금 각자 있는 자리에서 참고 살아갈 것을 종용한다. 이 감독은 희망을 심어놓기보다는 건조하고 무덤덤한, 그러나 최소한의 위로를 건넨다. <바벨>에 이어, <비우티풀>에서도 감독 그 자신의 조국인 멕시코를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그려놓았다는 점은 매번 알면서도 놀랍다. 절망과 힘겨움 속에서도 그 자체로의 아름다움. 최소한 자식들에게 만큼은 눈 덮힌 피레네를 꿈꾸게 하는 biutiful 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오타의 제목은, 비록 'beautiful'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그 나름의 '뷰티풀'에 대한 지향성이 아닐까. 감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도 모자르다고 생각했는지, 이 영화의 앞뒤 두 부분에서 화면 비율을 다르게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 영화내에서 화면 비율이 도중에 바뀌는 독특한 요소이다.  







페넬로페 크루즈의 남편, 스페인의 마초, 하비에르 바르뎀의 굉장한 연기력을 우리는 이 영화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2011년 8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소셜 네트워크>의 제시 아이젠버그와 <127시간>의 제임스 프랭코와 함께 남우주연상에 올랐으나 그 해 각종 시상식장을 휩쓴 <킹스 스피치>의 돌풍에 밀려 콜린 퍼스에게 남우주연상을 내주었다.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연기한 배우에게 미국 아카데미가 다소 박한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비에르 바르뎀은 그해 제63회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덧글

  • 곰늑대 2013/09/29 22:41 # 답글

    하비에르 바르뎀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부왘한 연기를 보여줬었죠
  • 레비 2013/10/01 01:20 #

    하비에르 바르뎀은 출연하는 영화마다 어느정도 보장된 연기력을 선사하는것 같아요. 전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서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 2013/09/29 22: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10/01 01:2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10/20 01: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10/28 02:2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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