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그램, 21 Grams, 2003 Flims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의 오랜 무기로 사용되어왔던 덩컨 맥두걸의 ‘영혼 무게 측정’ 실험은 1907년에 있었다. 미국 의사였던 그는 자신의 결핵 환자가 죽음 전후의 무게 차이를 천칭을 이용하여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그는 동물에겐 영혼이 없다는 것까지 함께 증명하기 위해 개를 이용하여 같은 실험을 했고 결과는 ‘예상대로’ 저울의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발상이긴 하지만 이것은 무려 100년 전 실험. 그것도 당시 기술로 정확하지 않은 저울을 사용했고, 그 외에도 사후 발생하는 여러 증발과 순환 현상들을 고려하지 않은 그의 실험은 이후로도 영혼의 무게가 21그램 정도라는 컬트적인 믿음을 양산해왔다.






멕시코의 재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2003년 영화 <21그램>은 바로 그의 실험으로부터 따온 제목이지만 그런 맥두걸의 실험은 영화의 마지막 나레이션에 잠깐 등장할 뿐이다. 이 영화는 그의 데뷔작인 <아모레스 페로스>와 후속작인 <바벨>과 함께 ‘진실 3부작’의 가운데에 위치한 영화다. 나는 그 <바벨>을 내 인생 열편의 영화 목록에 망설임 없이 넣을 수 있다. 이냐리투가 이 삼부작을 이끄는 방식은, 초반부는 마치 옴니버스를 보는 듯 각각의 캐릭터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척 하지만, 종국에는 우리를 놀랍게 만드는 단단한 짜임과 우연과 연결고리의 사용이다. 네 명이 한 자루의 총을 제외하고 각기 다른 공간에서 끝까지 합치되지 않았던, 그리고 각 정확한 순서를 지켜가며 분절된 시퀀스를 규칙적으로 나열했던 <바벨>에 비해서, <21그램>의 시간과 캐릭터의 순서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없다. <메멘토>처럼 앞서 이미 보여주었던 결과의 원인이 되는 사건이 뒤에 배치되어 있는가하면, 그 서로 다른 세 이야기가 모두 병합되는 클라이맥스는 치밀하게 마지막에 놓여있음으로서 우리는 영화의 끝을 가장 처음에서 목격하고도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온당하게 그것을 경험한다. 이 희열은 전적으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재능이다.






<21그램>를 처음 보면, 곁에 인물 관계도를 그려두며 보고 싶어진다. 누군가가 등장했다 사라지고 시간적으로도 뒤죽박죽이라 지금 보고 있는 사건이 그 전 시퀀스보다 먼저 일어났던 일이라는 보장이 없다. 마치 서로 다른 실 3개로 꼬아 만든 하나의 노끈처럼 전체적으로 영화는 세 가지의 이야기 축을 갖는다. 폴(숀 펜)은 심장병으로 괴롭게 죽어가는 환자다. 그는 심장 이식이 절실하지만 죽음을 앞두고도 재결합한 아내 메리(샬롯 갱스부르)와의 관계는 순탄치 못하다. 메리는 폴이 죽기 전에 인공수정을 통해서라도 자식을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식을 남기는 것에 부정적인 폴은 메리의 그런 2세에 대한 집착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순간에 심장 이식을 받게 되고 폴은 새 삶을 받게 된다. 그러나 새 삶은 새로운 시작이다. 이제 이것이 첫 번째, 폴의 이야기의 시작이다. 두 번째는 크리스티나(나오미 왓츠)의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남편 마이클(대니 허드슨)과 사랑스러운 두 딸, 너무나 행복한 가정을 가진 남부러울 것 없는 이 여자에게 갑작스러운 비극이 닥친다. 평온하던 어느날 전화 음성메모만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남편과 두 딸이 뺑소니 교통사고로 모두 사망한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크리스티나는 죽어가는 남편 마이클의 심장을 이식해달라는 동의서에 서명한다. 이것이 크리스티나와 폴의 연결고리이다. 세 번째 인물인 잭(베니치오 델 토로)은 상습적 범죄자였다. 그러나 그는 종교에 의지하여 구원받고 모든 것을 용서받고자 한다. 남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는 인상이나 문신으로 인해 차별받고 고통 받아도, 그는 예수와 종교에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자신의 생일 파티에 트럭을 몰고 가던 중, 교차로에서 한 남자와 두 어린 딸을 치어버린다. 이제 세 이야기는 하나로 엮기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 그 누구도 악역은 없다. 폴, 크리스티나, 잭이라는 세 명의 주인공들에겐 각자들의 가정이 있고, 배우자가 있다. 가족, 특히 부부의 관계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자신의 영화들에서 줄곧 사용하는 테마다. 폴의 아내인 메리는 폴과 순탄치 못한 부부관계를 갖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과거가, 폴이 건강했을 때도 이미 좋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식에 대한 메리의 집착과, 폴의 부정은 이 둘의 가장 큰 갈등의 원인이다. 반대로 마이클과 행복했던 크리스티나는, 사고 이후 장례식에서 그녀 자신의 남은 삶의 의지까지 잃어버린다. 폴은 새 삶을 받고도 남은 삶의 유지와 후대에 회의적이고, 크리스티나는 기존의 삶을 잃어버림으로서 남은 삶에 부정적이 된다. 물론 죽은 남편의 심장을 이식받은 남자와의 로맨스는 신화적이기까지 하다. 이식받은 이후, 새롭게 시작된 자기 삶의 정체성을 알고 싶어 크리스티나와 마이클의 가정에 관심을 갖고 그녀에게 이끌리는 폴의 행동은, 심장이라는 상징성과 그 대물림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로운 구현이다. 반면, 모든 사고의 시작이었던 잭의 불행은 그의 헌신적인 아내 마리앤(멜리사 레오)의 도움과 노력, 그리고 사랑스러운 두 아들딸의 존재로 잭은 삶의 이유를 끝없이 기억하게 된다. 남의 가정에 불행을 안기고도 자신의 자식들에게 아빠로 있을 수 없다며 집을 나가는 잭의 자기반성과 구원에 대한 열망은 처절하다. 불행한 삶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잭의 몸부림은 폴과 크리스티나와는 또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는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대사가 여러 번에 걸쳐 사용된다. 인공수정을 위해 메리에 의해 병원에 끌려간 폴은, 신중하라는 의사의 충고에 그렇게 답한다. 하지만 가족을 모두 잃은 크리스티나는, 과거 아내를 잃은 경험을 말하며 위로해주려는 아버지에게 같은 대답을 부정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계속 찾아오는 불행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잭에게 역시 이 말은 적용된다. 죽인 사람(잭)과 죽음을 당한 사람(크리스티나). 그리고 그 죽음 덕으로 죽음을 면하게 된 사람(폴)이 모두 모이는 클라이맥스는 그야말로 세 캐릭터가 갖고 있던 모든 것의 분출을 보여주며 극을 끝까지 밀고 간다. 복수와 참회, 분노와 용서가 뒤섞이며 우리의 영혼의, 심장이 가진 무겁고도 가벼운 무게를 상기시키며 영화 <21그램>의 마지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나지막이 계속 중얼거리는 듯하다. 신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덧글

  • Deckey 2013/09/22 00:19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한동안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하고 생각했었는데, 읽고 나니 정리가 잘 되네요.
  • 레비 2013/09/22 04:20 #

    졸필에 과찬 감사합니다. (__)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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