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까지 21일, Seeking a Friend for the End of the World, 2012 Flims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우리가 세상이라 부르는 지구는 21일의 시간만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남은 시간동안 우리는 지구를 구하는 슈퍼 히어로나 성조기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소요와 무정부 상태. 종말을 앞둔 사람들의 다양한 군상들은 찾을 수 있지만 거기서 세기말 묵시록적 우울이나 그 속에서 피어나는 꿈같은 희망은 없다. SF도 아니고, 액션 드라마도 아닌 이 영화는, 지구가 끝장나고도 기분 좋을 로맨틱 드라마 영화다.


지구 종말을 가져온 수많은 영화들 중 이토록 유쾌한 영화가 있었던가. 주인공이자 보험판매원인 다지(스티브 카렐)는 <아마겟돈>, <딥 임팩트>, <멜랑콜리아>, <노잉>에서의 주인공들과 (그리고 애머리히의 영화들 속 주인공들까지 더하여)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구 종말에 망연자실한 표정도 잠시. 그의 당면 비극은 3주후 찾아오는 소행성이 아니라 3주를 남기고 떠나간 아내이자 버려진 자신이다. (종말의 알림과 동시에 떠나간 아내 역할을, 스티븐 카렐의 진짜 아내인 낸시 카렐이 연기했다) 그래서 그는 종말을 앞두고 달아나거나 어디론가 뛰거나 방공호로 기어들어가지 않는다. 담담히 생을 정리할 기운도 잃어버린 그는 여타 ‘종말영화’의 주인공들과는 다른 표정을 가진다. 이것은 ‘코미디언’ 스티븐 카렐의 색다른 얼굴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다.


다지의 창문으로 들어온 패니(키이라 나이틀리)는 수면과다증 때문에, 피난 간 가족을 남은 시간동안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여자다. 다지의 이웃이기도 한 그녀는 자신이 다지의 잊지 못할 진정한 사랑으로부터의 편지를 그에게 너무 늦게 건네주었다는 죄책감에, 다지의 마지막 여정에 동참하기로 한다. 물론 다지 역시 그녀에게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끔,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줄 사람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조건으로 내건다. 지구 종말만 아니라면 어울리지 않았을 이 한 쌍의 로드무비는 그렇게 시작한다.


길 위에서 그들은 다양한 인간들을 만난다. 종말을 앞둔 사람들의 모습들은, 우리가 종말을 맞이하는 자세들의 다양한 보기가 된다. 누구들은 거리낌 없이 문란해지고 여생을 쾌락으로 채우려하고, 누군가는 지구가 종말하는 주까지 자신의 일을 다 하고자 출근한다.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지하로 들어가 자신만만하게 종말을 기다리고, 또 누군가는 스스로 죽음을 앞당겨 자살한다.


다지는 페니를 만난 덕분에, 종말을 앞두고 영원히 이해하지 못했을 아버지를 만나 화해할 수 있었다. 페니를 만난 우연 덕분에 다지는 비록 아내를 떠나보내고, 옛 사랑에게 사랑했다는 말을 하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지구의 종말은,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어떤 각자의 마지막이다. 이를테면, 나는 언제가 되면 더 이상 그것을 할 수 없다는 스스로의 장벽, 경계, 마지막 따위의 선. 영화에는 단 한 번도 다가오는 종말, 소행성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종말은 구체적인 대파국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각자의 마지막,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믿고 있는 어떤 장벽이다. 종말을 앞두고 미래가 없을 때, 하지만 우리도 내일을 알 수 없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현재 길 위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는 내 곁의 사람이, 과거의 그 어땠던 사람보다, 미래에 오게 될 그 어느 사람보다 중요한 사람이 아닐까. 페니는 가족과의 마지막이, 다지는 돌이킬 기회가 남아있다고 생각한 그 옛 사랑이, 그들의 ‘종말이 오기 전에 도달해야 할 종착점’이었지만 사실 둘 모두 마지막 지점에서 서로에게 돌아선다. 며칠이 더 남아있건, 과거에 얼마나 사랑했건, 그 모든 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래서 페니의 집 안 벽에 걸려있던 그 유명한 “Keep calm and carry on” 포스터는 이 영화의 함축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다.


Seeking a friend for the end of the world. 세상의 끝에서 친구 찾기 정도의 원제를 가진 이 영화는 <세상의 끝까지 21일>이라는 적절한 한국어 제목을 붙였지만, 예고편 및 홍보를 로맨틱 코미디나 로드무비에 초점을 맞춘 점이 조금 아쉽다. 조금 뒤늦긴 했지만 더 많은 관객 분들이 보았으면 좋을 영화다.







덧글

  • letlive 2013/09/01 09:41 # 답글

    이거 정말 보고싶었는데 상영관이 많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ㅠ_ㅠ 나중에라도 꼭 챙겨봐야겠어요 :)
  • 레비 2013/09/02 02:24 #

    상영관이 애초에 적게 개봉했었는데 금세 내리더라고요 ㅠ 아직 전국적으로는 몇몇 남아있긴한것 같지만.. ㅎㅎ
    나중에라도 꼭 챙겨보시길 :)
  • 2013/09/01 10: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9/02 02: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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