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4중주, A Late Quartet, 2012 Flims






푸가(fugue)란 악곡이 가진 하나의 주제를 규율적으로 모방, 반복 연주하여 대위법적으로 완성되는 악곡의 형태를 말한다. 하나의 주제를 반복함에 있어서 화성적 법칙이 적용되지만, 개별의 악기들은 이러한 규율속에서도 창조성과 예술성에 자율적 가능성을 둘 수 있다. 푸가의 형태에서 가장 대표적인 바흐를 비롯하여, 베토벤, 헨델, 브람스등 유수의 작곡가들이 푸가를 발전시켰고 이는 이미 악곡의 중요한 한 형태로서 남아있다. 영화 <마지막 4중주>에 주인공들이 호흡을 맞춰온 4중주단의 이름은 바로 이 '푸가'이다. 이것이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은유이다.

4개의 독주 악기에 의한 실내악 중주. 우리는 그것을 콰르텟, 4중주라 부른다. 바이올린 둘과 비올라와 첼로. 이들은 모두 개별적으로, 다시말해 독주 연주로서도 멜로디를 내기에 충분한 악기들이지만 (영화 대사로 언급되듯이) 거장들이 남긴 걸작들의 대부분은 이 4중주의 형태를 갖고있다. 그것은 이 4중주단, '푸가' 콰르텟의 제 1바이올린 연주자인 다니엘(마크 이바이너)에겐 독자적인 재능과 기량을 어느정도 포기하면서 다른 3인과 호흡을 맞추는 방법을 굳이 택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들이 다른 형태가 아닌, 4중주단이라는 설정은 캐릭터들이 처음부터 품고 있던 영화의 두번째 은유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은유인가. 그것은 인생이다.

이 영화는 그 자체로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에 바치는 한편의 오마쥬이자 헌정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무대에 서는 것은 그 마지막 무대 한번. 연주곡은 현악4중주 14번 단 한 곡이다. 물론 로버트(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가 경매장에서 딸 알렉스(이모겐 푸츠)에게 선물할 바이올린을 미리 시연해보면서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을 켜는 등, 다른 유명한 곡들도 다수 지나가지만 영화의 메인 테마는 단연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임을 부정할 수 없다. 베토벤이 스스로 현악4중주 중 최고라 꼽았고 죽음을 앞둔 슈베르트마저 매료시켰다던 이 곡에 대한 접근은 곧 이 영화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수 있다. 베토벤의 이 곡은 기존의 현악 4중주의 일반적인 구성이었던 4악장이 아닌, 총 7악장으로 되어있다. 게다가 악장과 악장 사이를 쉬지 않고 연주하도록 되어있어 청중에게만큼 연주자에게도 길고, 그 긴 연주만큼이나 난이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영화 초반에 언급되듯, 이들 4중주가 다음 콘서트 연주곡으로 이 곡을 선정하면서 악장간 쉴 수도 없이 진행되는 긴 연주를 과연 실수나 불협화음 없이 완주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모두 불안과 회의를 느낀다.

첼리스트이자 팀의 최고 연장자인 피터(크리스토퍼 월켄)는 파킨슨병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비올라 연주자인 줄리엣에게는 아버지와도 같은, 동시에 다니엘과 로버트에게는 학창시절부터의 스승이자, 넓게는 이 4중주단의 정신적 지주인 피터는 담담하게 현실을 직시한다. 그러자 피터의 빈자리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것은 나머지 세명의 '젊은 세대'가 된다. 동경과 존경을 담아, 피터의 은퇴가 곧 콰르텟의 해체가 되느냐 마느냐하는 갈등속에서, 이들은 4중주단의 존속과도 직결될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다니엘이 콰르텟의 동료이자 비올라 연주자인 줄리엣(캐서린 키너)과 학창시절을 회상하면서 그 당시 다니엘의 관심 분야로 (클래식과 하등 상관없어 보이는) '적자 생존'이 언급되는 것은, 이 완벽주의자가 제2바이올린 연주자인 로버트를 바라보는 시선을 대변한다. 로버트는 피터의 자리, 즉 첼리스트의 교체가 가져올 '새로운 소리'를 계기로 자신도 다니엘처럼 제1바이올린을 맡고싶어한다. 메인 멜로디보다 반주에 더 가까운 제2의 자리에서 평생을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다니엘에게 갖고 있는 불만은 또 있다. 자신의 악보에 철저한 주석을 달아 가능한 완벽하고 계산된 음을 추구하는 다니엘의 스타일에 즉흥적인 자유분방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로버트는 그런 다니엘을 겨냥하여 다음 콘서트는 암보로 연주해보자고 제안한다.

로버트의 이런 생각은 아내 줄리엣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다니엘과의 알력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정 안쪽으로도 번진다. 줄리엣은 4중주 초창기때부터 자신을 사랑해온 로버트와 결혼했으나, 영화를 보다보면 그녀는 이 4중주의 세남자, 로버트, 다니엘, 피터 모두와 각기 다른 연결고리가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딸 알렉스의 대사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 자신이 동경하는 남자. 그들 속에서 남편이라는 이유로 오롯이 로버트를 지지해줄 수 없었던 그녀는 로버트에겐 안타까운 아내였으며, 딸에게는 원망의 목소리를 듣는, 무엇보다 4중주단을 우선시했던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어버렸다.

피터의 은퇴 가능성으로부터 시작된 이들의 흔들림은 로버트와 줄리엣의 부부사이를 지나, 끝까지 굳건할 것만 같던 독신남 다니엘에게까지 이른다. 로버트와 줄리엣의 딸, 알렉스와 사랑에 빠져버리고만 다니엘. 네 감정에 충실하라는 로버트의 일침을 콧웃음으로 비웃었던 영화의 초반과 달리 (친구의 딸이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 그의 폭탄선언은 한번의 주먹질을 부르고 4중주를 완전히 파국 직전으로 치닫게한다. 갈데까지 간 이들. 병으로 어쩔 수 없는 은퇴와 재활 사이에서 흔들리는 구세대를 앞에 두고 나머지 젊은 3인은 몰이해 속에서 허우적대며 그들의 마지막이 될지 모를 콘서트를 준비한다.

영화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두가지 시가 등장한다. 하나는 T. S. 엘리엇의 시 중 일부로서 이것은 피터가 영화 초반 자신의 강의 중에 직접적으로 언급을 하기 때문에 놓치기 힘들다. '현재와 과거의 시간은 미래에 존재하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에 속해있다.' 그리고 현악 4중주에 대한 피터의 단평. 불협화음을 안고 가면서도 이 쉼없는 연주를 끝까지 해야할 것인가. 그것에 대한 정답을 함께 알아보자며 피터는 영화를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한편의 답이된다. 두번째 시는 엔딩 크레딧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그것이 시구였다는 것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데, 한창 맴버들의 갈등이 고조될 무렵 심적으로 지친 줄리엣이 지하철에서 한 소년의 낭독을 듣는 것으로서 등장한다. 프레드릭 오그덴 내쉬의 'Old Men'이다.

People expect old men to die, 
They do not really mourn old men. 
Old men are different. People look 
At them with eyes that wonder when ...
People watch with unshocked eyes
But the old men know when an old man dies.

이것이 그대로 결말에 대한 복선이 됨은 말할 필요도 없다. 4중주단의 첫 세대부터 있어왔던, 지금의 그들에겐 구세대인 피터가 차기 첼리스트에게 자리를 내주고 나머지 3명은 눈물속에 그 긴 곡을 계속해나가는 엔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삶은 계속되어야한다는 것을 설파한다. 물론 old men, 피터의 물러남으로서 남아있는 세명도 변화를 맞이한다. 다니엘은 정해진 틀에 묶이지 말고 감정에 충실하라는 로버트의 말대로 자신의 악보를 그 순간부터 덮어놓고 연주를 재개한다. 그런 다니엘의 모션에 회답하듯, 로버트는 자신의 악보를 따라 덮으며 동시에 자신의 '제2 바이올린' 악보의 표지를 만지며 계속 자신의 자리인 그 길을 걸어갈 것을 암시한다. 크리스토퍼 월켄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연기는 단연 두드러진다. 캐서린 키너와 마크 이바니어 역시 이름값에서는 조금 밀릴 수 있지만 영화의 조연이라곤 보기 어려울 연기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화음이라는 단어에서 '조화'와 '일치'같은 단어들을 우선적으로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화음이란 같은 음계들로는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조화는 서로 다름을 전제로 한다. 이들의 연주가 그러했듯, 우리들의 인생은 서로 다름 속에서 맞춰가고 조율해가는 한편의 하모니이다. 클래식과 악기들과 합주 등을 소재로 삼고도 이 영화를 평범한 ‘음악 영화’로 남게 만들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영화 <마지막 4중주>가 스스로 선택한 소재들로 인생을 부드럽게 은유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는 계속되어야 했듯이 불협화음 속에서도 우리들의 인생은 계속되어야하고, 또 그런 서로 다른 음계들이야말로 화음을 낼 수 있는 전제가 되는 것이다.







2013.07.27

@ 시네큐브,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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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12 01:33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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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17 01:47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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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12 01:58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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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1 22:44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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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13 19:30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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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1 22:54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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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14 16:02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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