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스 셰어 : 천사를 위한 위스키, The Angels' Share, 2012 Flims





발효와 보관되는 사이에 증발하는 위스키의 일정량을 천사의 몫이라고 이름붙인 것부터 마음의 여유가 느껴지는 켄 로치의 이 따듯한 영화는, 유명 배우들이 아닌 비전문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정말 스코틀랜드의 어느 마을, 실제 그 마을에 가면 영화와 똑같은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캐릭터들을 탄생시켰다. 주인공 로비와 세 명의 다른 범죄자들은 폭력, 절도, 풍기문란등 비교적 가벼운 죄를 저지른 자들로 법원에서 사회봉사 수백시간씩을 받은 자들이다. 하지만 범죄자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다시 수십만 파운드의 값비싼 위스키를 훔친다하여 하이스트 무비나 코믹 범죄물을 기대한다면 그 기대는 절반 이상 빗나갈 것이다. 영화는 군데군데 채워놓은 소소한 웃음 코드들과 마지막의 따듯한 감동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들의 범죄행각마저 귀엽게 보이게 만든다.


갓 아버지가 된 폭력배 로비는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스러운 갓난 아들을 둔 청년이다. 하지만 장인어른과 아내의 친척들은 가장 구실을 하기 힘든 그를 못미더워하고 설상가상으로 그에게 전과나 원한이 있는 자들은 로비뿐만 아니라 아내와 어린 아들의 신변도 위협할 정도다. 불량배로 낙인찍힌 얼굴로 새 일자리는 구하지 못하고, 가족을 부양할 돈은 없다. 하지만 어디에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는지, 그는 사회봉사활동 인솔자인 해리의 도움으로 자신에게 숨겨진 재능과 흥미를 발견한다. 바로 위스키에 대한 미각과 후각의 감별능력. 그가 빌붙어 살고 있는 시끄럽고 지저분한 친구의 방에서 위스키에 대한 책들을 가져와 공부하는 모습은 그 전환의 첫발자국이다.


해리 아저씨의 주선으로 위스키 공장을 직접 방문해보고 영국에서 열리는 시음회에도 참가하는 로비 일행은 여전히 사고뭉치들인 코믹한 모습과 대사들로 우리를 웃기지만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거나 손가락질 받는 그들이 자신들의 흥밋거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따듯하게 바라봐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범죄에서 손을 떼겠다고 결심한 로비가 수십만 파운드짜리 위스키 경매장에서 전날 밤 몇 병을 빼돌릴 계획을 모의하고 그들 일행은 위태위태한 가운데서도 증류공장을 찾는다. 범죄자 일당이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가는 길에도 그들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퀼트를 입고 여행객으로 가장하며, 500마일을 더 걸어 네 집 앞에 쓰러지는 남자가 되겠다는 귀여운 가사와 경쾌한 록음악은 그들의 길을,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린 악동들’처럼 따스하게 바라본다. 좋은 아빠와 좋은 남편이 되겠다는 로비의 신념. 아내의 출산에도 병원에서 구타를 당한 로비를 따듯하게 감싸주고 안아준 해리 아저씨. 그리고 그의 가슴 따듯한 배려에 유머와 웃음으로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조연들까지. 영화를 보다보면 주인공들을 따라 웃기도 찌푸리기도 하다가, 마지막 한 병이 어디로 갔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 감탄어린 탄식이 나오기도 한다.


켄 로치가 유럽에서 거둬들인 수상 기록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를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대번에 나는 내가 좋아할만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느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작고 소소한 일상에서 벌어질 영화적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는 것, 좀비 수백 수천마리가 뛰어다니는 영화를 본 뒤에 봐서 그런지 나는 이 영화에 금세 빠져버렸다. 범죄자가 조언자와 깨달음을 바탕으로 바른 길로 돌아오는 영화는 많지만, 이것을 유머와 독특한 상황 극으로 버무리려는 시도를 유치하지 않게 만드는 작법은 이 영화의 강점이다. 항상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함께 응원하는 성취의 카타르시스는, 허례허식 깃든 유명 위스키 감별사나 거액의 돈을 주고 로비네 일당이 바꿔친 위스키를 기어코 사고 만 부호에게도 한방 먹임으로서 함께 이루어진다. 우리 모두를 미소 짓게하며 끝낼 수 있는 이 영화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위스키라는 소재를 가져와 그것을 반성과 새 출발의 계기로 삼은 것도 독특하지만, 로비를 비롯한 친구들이 갱생하는 과정은 위스키가 어떤 통 안에서 숙성되고 발효되느냐에 따라 다른 향이 강조되는 영화 속 대사들과도 닮아있지 않았는지. 숙성되지 못한 로비라는 맥아를 해리 아저씨라는 좋은 오크통이 만나 천사의 몫을 남긴 영화 <엔젤스 셰어 : 천사를 위한 위스키>였다.



(광화문 씨네큐브 2013.06.30.)





덧글

  • 2013/07/02 22: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7/02 22: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7/02 22: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7/02 22:3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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